코로나 19덕에 알게 된 또 다른 세상!!


줌으로 친구들을 만나 독서모임을 하니 재미있네.

면대면이 아니다보니 좀 어색한 면도 없진 않지만 그래도 영상으로 얼굴보며 이야기할 수 있으니 참 좋구나.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해 바쁘지만 잠깐이라도 짬내어 들어왔다는 명이, 

계속되는 바쁜 일정에 며칠 째 잠을 못잤는데, 내일 온라인 시험이 있어 공부도 해야 한다고 연신 하품을 참지 못하던 춘희, 

밤인데 할머니는 왜 입술에 색칠을 하냐고 궁금해 하는 손주를 따돌리고 입장한 인주,

자야 할 시간인데 손주가 안 잔다고 계속 손주와 속삭이던 정화,

일찌감치 입장해 기다리던 정숙이와 윤순이와 두 경애(김 경애, 이 경애)

이름은 뜨는데 얼굴이 안 보이고, 얼굴은 나왔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던 혜숙이

제 시간에 딱 맞춰 등장한 은화까지 12명의 독서모임이 시작되었단다.


우린 작가가 우리와 같은 나이인데 너무 일찍 세상을 뜬 것에 안타까워했어.

어쩌면 이리 박식한지, 뛰어난 관찰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그의 글이 지닌 문학적 향기에 대해 서도 깊은 공감을 나누었단다.


작품을 설명하는 사이사이에 곁들인 옛 그림 감상법은 지식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옛 그림에서는 원근법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 여백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옛 그림을 볼 때의 감상 요령에 대한 설명이 유익했다며 이제 그림을 볼 때 전과는 다르게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어.


작품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작품을 내 손으로 직접 있는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이란 설명에서 늘 책 내용을 요약하는 정숙이가 생각났다며, 앞으로는 책을 읽으며 적는 습관을 가져야겠다고 해서 다들 웃었어. 사실 우리 나이는 돌아서면 다 잊어버려 적자생존이란 말도 하잖아.


그림을 보는게 아니라 읽는다는 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어.


서양의 그림과 달리 우리 그림은 형이나 색이 표현하려는 사물의 외양이 아니라 그린 이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의미심장 하더라.

문인화를 잘 그리기 위해서는 천리의 먼 길을 다녀보고 만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잖아.

수묵화의 감상은 감각되는 형상에 수동적으로 지배되고 압도되는 과정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이가 사전에 풍부한 시각 경험을 쌓고 다양한 인생의 체험을 겪은 후에 그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은근하게 작품이 암시하는 격조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란다.


그런 세계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도록 안내를 잘 해준 오주석이란 분에게 감사해.


마음이 끌린 작품이 다 다른 것도 흥미로웠어.

<고사관수도>가 가장 좋았다는 친구, <매화쌍조도>에 마음이 가더라는 친구, <세한도>가 역시 친숙해 좋더라는 친구, 김홍도를 풍속화가로만 생각했는데 시서화뿐 아니라 음악까지 4절에 능한 화가로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친구...


난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먹먹했어.

정선이 76세에 그렸다는 이 그림을 나는 자기 세계의 절정에 이른 화가가 그린 거작 정도로 알았는데 사실은 사연이 있더라구.

이 작품을 그리던 달엔 오랜 장마가 있었고 그의 60년 지기였던 친구 이병연이 병석에서 마지막 사투를 벌리고 있었단다.

25일 비가 개인 오후 그는 붓을 휘둘러 작품을 완성했는데, 

궂은 날씨에 사경을 헤매는 벗을 생각하며 정선은 쫓기는 사람처럼 조급한 마음으로 이제 막 물안개가 개어가는 인왕산처럼 이병연이 하루빨리 병석을 털고 일어날 것을 빌면서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는 거야. 본래 이병연은 키가 크고 용모가 둥실하고 위엄이 있어 그런 친구의 모습을 인왕산의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표현한 것이라네.

이병연은 29일 끝내 숨을 거둔단다.


설명을 읽고 작품을 다시 보니 검은 먹물로 거침없이 그려낸 인왕산이나 그 밑자락에 깔린 옅은 물안개도 다르게 보이는거야. 나이들어 내 분신같은 친구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심정일지, 혼자 남겨진다는 외로움이 뭔지 아니까......


난 이 책이 참 좋았고 그래서 이 책을 친구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서 기뻤어.


혜숙이가 그러는데 오주석이 쓴 <한국의 미>도 재미있단다. 이 책도 빌려 읽어야겠어.


자기는 책을 읽지 못해다며 우리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인주가 친구들 말을 듣다보니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며 집에도 있는 책이라고 줌 끝나자마자 책장부터 찾아볼 거라더군. 

ㅎㅎ 난 영화 볼 때 이런 적 많아.

한참 보다보니 나 이거 예전에 본 영화야 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친구가 사랑스럽다.


다음 달에 읽을 책은 두 권이야. 둘 중 하나만 읽어도 돼. 다 읽어도 좋고...

하나는 <포노 사피엔스> 스마트 폰이 뇌이고 손인 사람을 포노 사피엔스라고 한대.

또 한 권은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묻고 세계의 지성 100인이 답한 글이야. 답변이 궁금하잖아.


썩 재미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읽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


늘 말이 길어진다.

11월엔 더 많은 친구들과 영상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