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최초의 기억은 세 살 혹은 네 살 때의 일이다.

엄마의 품 안이었고 이불속에서 엄마가 나를 꼭 안고 느끼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

답답하고 더웠지만 어쩐지 참아야 할 것 같아 가만히 있었던 기억.

거기가 백마장이었을 거다.(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그다음 기억나는 곳은 문학이다.

아버지가 문학 국민학교에 근무하셨겠지.

근무지 따라 집을 옮겼을 테니.

거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툇마루에서 울며 아픈 불파마를 하던 짧은 기억, 웃는 할머니들 얼굴이 싫어

더 울던 기억, 뒷마당 모습.

 

 여섯 일곱 살이 되도록 나는 유아기에 있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 그저 엄마 뱃속에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다시 숭의동으로 이사를 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모양새만 잡은 급히 지은

양옥집이었다 

흙투성이 다듬지 않은 마당이 있었고, 뜬금없이 포도나무가 있었다 

집에서 내려가 오른쪽으로 가면 철로가 있었고, 그 언덕엔 아주 짙은 주황색 황토가 있어 늘 주무르고 놀았다.

 

친구들이랑 철로에서 지금 생각하면 실로 위험한 장난을 매일 했다 

못을 구해서 철로에 놓고 귀를 철로에 대고 있다가 기차가 오는 울림이 들리면  

막 언덕으로 뛰어가 기다렸다가 납작해진 못칼을 들고 칼싸움을 하며 오곤 했다 


거기서 숭의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그때 5학년이었던 언니가 나를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학교가 끝나면 언니가 뒤에 있다가 데리고 왔다고 하는데 내가 옷이 어깨로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멍하니 앉아 있어서 애가 탔다고 한다.

 

백지처럼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찍은 몇 장의 사진을 보면 그래도 또랑또랑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찍은 게 있던데 이상할 정도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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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동으로 이사 갔을 때부터 나의 기억은 시작된다.

외부로 향한 뇌의 움직임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1학년 2학기였을 땐데 이사하던 날 혼자 나왔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골목도 아니고 저 골목도 아니고...

그 막막했던 두려움을 지금도 잘 기억한다.

천신만고 끝에 울지도 않고! 집으로 가는 골목을 찾아 들어갔다.

길을 잃어버렸었다는 말을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엄마를 비롯한 모든 식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가족이 있음에도 느낄 수 있는 외로움이나,

나만이 해야 하는 일이나 세상이 있다는 걸 막연히 생각하며 두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나를 둘러싼 주위가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불꽃이 터지듯 내 어린

시절 기억이 시작된다.

   

그렇게 내 재밌기만 하고 따스했던 유년의 고향은 송림 347번지가 된다.

온종일 소꿉놀이, 자치기를 하고 뛰놀던 나의 마당과 늘 만만한 학교 운동장이 가까이 있던 곳, 계절에 따라 수많은 꽃과 풀이 있는 뒷산이 있고, 물총 삼각 주스를 사 먹던 가게가 있던 곳.

정신없이 앉아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 수 있었던 만화 가게가 있던 곳.

쌀을 배달하러 리어카가 오면 돌아가는 리어카에 친구들이랑 올라타 배다리까지 갔다가 걸어 돌아오던 곳.

여름날엔 돌아오면서 아스팔트 타이루(?) 찐득거리는 걸 돌에다 묻혀 신발에 붙이고 뾰족구두라고 찔뚝쨀뚝 서로 보고 키득거리며 걸어 오던 곳.

콩콩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던 나의 친구들이 있던 곳,

모든 아이들이 친구가 되던 곳.


경인고속도로에서 송림동으로 들어오는 곳에는 아파트 옹벽이 쳐 있다.

건너편 송림동 8번지도 마찬가지다.

전차 군단처럼 아파트 대군이 사위를 조여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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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 4동 대헌학교 올라가는 길, 그 위 내 친구가 살던 동네도 다 없어지고

하늘을 가린 아파트가 팔을 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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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 4동에서 송림 3동으로 넘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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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항상 콜드크림을 바르고 있던 셋째 고모네 넘어가는 서림학교 뒷길.

어릴 때 도시로 나온 오빠를 따라 혼자 기차 탈 나이만 되면 무조건 따라 와

가까이 살던 고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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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림학교 뒷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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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

저 집 아래 작은 집에서 구멍가게 하시던 큰고모.

유복자를 키우며 의지할 사람이 오빠뿐이라 항상 우리집 근처에 사시던 분.

감자를 기가 막히게 잘 삶아주시던 눈이 커다란 큰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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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에 그렇게 넓어보이던 골목 입구.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렇게 작은 골목을 들어서며 그렇게 크게 노래를 부르셨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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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징그러운 말을 하고 실실 웃으며 우리를 놀려 어린 눈에도 무척 싫었던

동네 오빠가 살던 집

엄마 아버지 없이 할머니와 살던 정가 성을 가졌던 친구네 집.

정말 맛있었던 그 할머니 된장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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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달고 예쁜 사루비아, 키 작은 채송화, 봉숭아가 있었는데

이런 이상한 모양의 사루비아만 남아있고,

뜬금없이 무화과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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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럽게 우리집을 알아 볼 수 없었다. 여기 같기도 하고 저기 같기도 하고.

당시 집집마다 우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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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끝 동산학교 담 안에는 커다란 미루나무가 있어서, 그게 그렇게 높고 멋있어서 놀다가 쳐다보고 쳐다보고 했는데..... 자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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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서 두 번째로 부자였던 영순이네 집.

뭐가 기준이었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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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서 첫 번째로 부자였던 광수네 집.

광수 엄마가 늘 몸이 아파 노상 며칠씩 굿을 하던 집.

텔레비젼을 처음으로 들여놓고 요일 정해 보게 해 주던 집.

생각만 해도 가슴이 싸르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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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자라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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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아파트가 보인다. 부처산 대신에/     동산학교 가는 길, 저 천변 건너편 물오징어 삶아 파는 리어카가 있었다. 미영이랑 사 먹었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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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공원 만들자. 대찬성!!!          서림구역 주택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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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청마루라고 읽고 만화가게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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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그네가 있던 곳, 그네에 매달려 몸을 뒤로 누이고 하늘을 보던 곳.

                           운동회 전날이면 동네 친구들이랑 가서 한없이 돌던 운동장.IMG_7415.JPG   IMG_741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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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송림동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우리 작은언니가 아주 싫어하면서  "얘도 이제 늙었나 봐, 맨날 옛날이야기만 하고.... 아우 난 지나간 얘기 하는 거  너무 싫더라" 이렇게 말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큰언니는 등록금 줄 때까지 학교 안 간다고 마당에 울고 서 있고, 작은언니는 등록금 나왔다는 말도 안 하고 학교 가고, 나는 등록금 나왔다는 말은 하고 학교에 갔다고.


등록금 나왔다는 말도 안 하던 아이, 수학여행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학교에서

혼자 공부했다는 아이, 고 3 때 말도 없이 실업반으로 가서 나를 학교 다니게 해 주었던 아이. 팔꿈치가 늘어난 빛바랜 스웨터를 입고 나한테 소리지르던 아이.


나는 언니의 말처럼 이제 충분히 나이가 들었고, 지나간 이야기 하는 거 너무 싫은

일흔 살의 그러나  아직도 서성이는 열여섯 살 언니의 마음을 아주 잘 받아들일 수 있다.


골목과 하늘, 나무, 웃음소리, 뜀박질 소리, 계절마다 바뀌던 냄새.....

곧 사라질.


골목을 떠나는데 이상하게 눈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