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동료들을 아주 젊은 날에 만났다.

같이 애기도 낳고, 같은 어린이집에도 보내고, 카레라도 만들면 서로 냄비를 돌리고,

아이들의 생일에는 각 집의 아이들이 서로들 몰려다니며 재미나게 놀곤 했다.

엄마가 참석하지 못하는 아이들 소풍 때는 각 집의 이모들이나 할머니들이 맡아서

데리고 가기도 했다.

도우미가 갑자기 못 오는 날은 아이를 데려 와 과학실 같은 곳에 숨겨두면

우리가 돌아가며 아이를 보기도 했었다.

여러 아이들이 결혼을 했고, 내 동료 중 몇은 아직 싱글이다.

만나면 늘 웃지만 우리들은 젊은 날 학교와 집, 두 일을 병행하느라 피가 마르던 일을

서로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말없는 가운데 서로를 짠해 하고 대견해 한다.


나만 그 학교를 나와 이런 저런 학교를 돌다가 50이 넘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올해 나의 환갑을 기념한다며 아무튼 그걸 빙자해 대전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당치도 않은 일이었지만 대전이라면 하는 마음에 가기로 했다.


-씻고 나오니 벽에 이런 게 붙여 있었다. 아이고! 깜딱이야!사본 -IMG_1088.jpg




실은 대전에 가고 싶은 이유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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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좋아하는 옆 반 선생님의 아버님이 박용래 시인이다.

젊은 날 현대 시학 시간에 선생님이 그분의 시를 보여주셨다.

그 책이 <현대문학>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책을 펴 시를 읽고 난 후

소중한 시고 시인이다, 참 이런 어휘는 아무나 쓸 수 없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그분의 시를 읽으며 이분은 그냥 시인으로 태어났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을 어찌  살꼬.... 이런 생각.

작고 곱고 착하고 맑은 것을 만날 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던 분.

그래서 눈물의 시인이라 불리워지는 분.

그분의 고향은 강경인데 대전에 자리를 잡고 거기서 시를 쓰시다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대전에 있는 사정공원에 시비가 있고, 역시 대전에 문학관이 있다.

거길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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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 오른쪽에 붉은 옷을 입은 이가 셋째 딸 水明이다.

이름처럼 맑고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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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 공원에는 여러 시인의 시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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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문학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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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자고 오는 여행이었는데 갑자기 경숙이네 블루베리 농장이 생각이 났다.

작년에도 춘선이를 비롯한 대전 친구들이 많이 마음을 쓰던 생각이 났다.

그래서 춘선이에게 급작스럽게 연락을 했고 사람들 자는 다음날 새벽에 몰래 나와

가게 되었다.

해 뜨기 전 두 시간 여를 세 마리 개들이 노는 밭에서 아로니아를 땄다.

마치 강원도 심심산골에 와 있는 듯 깊은 산골의 농장이었다.

블루베리는 전부 수확이 끝났고 아로니아가 건강하게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몇 상자를 부탁하고 집에 와 잘 다듬어 씻어 말린 후 냉동해 두었다.

앞으로 계속 갈아서 마실 작정이다.

눈에 좋다니까 열심을 부려 봐야겠다.

오랜만에 경숙이 모습도 보고, 애써 가꾼 농장도 보니 마음이 참 좋았다.

부실한 도우미라 별 도움이 못 되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아로니아가 필요한 친구들이나 농장에 가서 아로니아를 따 주고 싶은 친구들은 경숙이에게 연락하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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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친구들이 갔던, 난 가 보지 못했던 계족산 14.5키로를 처음으로 걸었다.

와~~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솔찮이 길었다.

여기를 춘선이가 50번 정도 돌았다고?

아항! 그래서 그렇게 잘 걸었구나.

언젠가 대전에 가서 현충원 둘레길을 걷는데 춘선이 따라가느라 혼난 적이 있다!

맨발로는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지만 맨발로 걸은 사람이 두 사람이나 된다.

존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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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대청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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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에서 내려 와 들어간 보리밥집 앞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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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덥다.

저번에 3주 만에 밭에 갔더니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땅 한 평 정도 빌려 쓰는 주제에 게으름부리고 늦게 온 걸 앙갚음이라도 하듯 모기가

그야말로 모기떼같이 덤벼들어 아마 수백 대 정도 물린 것 같다.

약간 무서울 정도로 물렸는데 풀이 너무 자라 정신없이 뽑느라고 뜯을 때는 잘 몰랐다.

집에 와서 보고 너무나 놀랬고 며칠 좀 고생을 했다.

그리고 내 꿈을 살짝 수정했다.

농사는 안되겠구나... 하고.

모든 농사짓는 분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


거기에 심은 바질 5그루에서 잎이 어찌나 장하게 자랐던지 따 갖고 와서

전에 은혜가 가르쳐 준대로 바질 페스토를 만들어 봤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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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더운데 힘내시라고 별 것도 아닌 나의 작은 일상을 전한다. 

편하게 쉬면서 식사도 잘 하고 힘 많이 쌓고 또 즐거운 마음으로 모임에서 만나자.

만나면 다 반갑고 고맙다.

고맙게 생각하면 다 고마운 일 투성이.

함께 젊다가 함께 늙어가는 또 다른 가족인 동료들과의 여름 여행을 하며 

우리 친구들 생각을 했다.

뒤늦게 만난 우리 만남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