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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여고를 지나 교문까지를 한 걸음 한 걸음 다시 걸어갑니다.
내겐 늘 가파르게 느껴지던 교실까지의 길
교실의 하얀 커튼을 주름잡아 묶던 일
비가 내리면 창밖으로 동인천역 쪽을 무심히 바라보던 일
어쩌다 일찍 집을 나선 날,
먼저 온 몇몇 아이들과 교실 뒤에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 하던 일
운동장 조회가 끝나고 우르르 몰려 교실로 들어가던 소리들, 소리들
가을 아침 공기 같은 냄새가 나던 장미꽃
운동장에 쭈그리고 앉아 만지던 흙
그리고
선생님들
친구들
몇몇 기억나는 수업시간
기억을 더듬다보니
스치는 따뜻한 기억들 밑에서 함께 떠오르는 어떤 감정이 다시 느껴집니다.
지금도 흐릿하게는 남아서
밝게 글쓰기를 시작한 첫 마음을 시큰둥하게 만드는 것...
그건 어색함 같은 건데
가난한 줄도 모르며 행복했던 내가
그게 등록금이건 준비물이건
없어서 매번 느끼던 곤혹스러움
못하구 잘하구 구별도 모르고
그냥 게으르게 재미있게 지내던 어린아이가
그게 공부건 무엇이건
등수로 매겨지는 하루하루 때문에 툭툭 주눅 들던 일
왠지 자꾸 아프고 몸도 뚱뚱해져
아이들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따로 떨어져 있는 듯 했던 묘한 기분
아무튼 뭉뚱그려 그 때 들던 그 느낌은 어색함 같은 거였습니다.
나 아닌 나로 대접받는 어색함, 또는 부끄러움.
그러나 그때 아무리 했다 한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대단한 슬픈 고백인가요.
그저
그 따뜻한 추억 그리고 밑에 흐르던 그 감정, 또 무엇 무엇이
섞이고 함께 녹아지고
내게 색깔을 주고 언어도 주고
그랬으니 된 거 아닌가요.
아무튼 내 인생의 귀중한 한 부분이 되었고
내 마음 속에 한줄기 강을 내었으니 된 거 아닌가요.
난 조그마한 신학대학을 다녔어요.
공부하는 게 처음으로 즐거웠습니다.
사랑으로 가슴앓이도 몇 번 하고
결혼도 일찍 했어요.
그 후로 지금까지
어려움도 징그럽게 많이 겪었고
이젠 우는 것도 귀찮아질 만큼 많이 울었고
그러면서 차츰 철도 들었고
역설적이게도
그러면서 차츰
산다는 것의, 살아있다는 것의 기쁨도 알았습니다.
나와는 다르기도 하고 비슷하기도 했을
친구들의 지나온 얘기들이
안 들어도 들은 듯 마음에 그려집니다.
우리가 흩어져
누구는 행복했고, 누구는 슬펐어도
얻었어도, 잃었어도
중심에 있었어도, 주변에 있었어도
옳았어도, 혹시 틀린 적이 있었어도
사실 우리 모두는
그 때 이미
한 뿌리 된 한 그루 나무가 되었던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낭낭히 읽어 내려갈 때 분명히 울었겠다.
그것도 소리내어 엉엉
너무도 진솔하여서
혜숙아 나는 네가 아닌데 어찌 나의 삶을 그리 정확히 알고 썼는가?
우리네 삶이 거기서 거기라서 그런가
암튼 네 심성이 그대로 보이는구나
청아하고 파란 ,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우리 마을 BEAR MOUNTAIN LAKE같다
어째 한국 걱정으로 여유들이 없나 타지에 있는 우리만 댓글을 다네....
인옥아~ 규야~
그랬지.
우리 모두 서로 얼굴을 피하며 눈시울을 적셨지.
나도 눈물이 핑 돌면서 코가 찡해져 얼굴을 들었는데
민망해 슬쩍 고개 들려 보니
아이들 눈시울이 전부 붉더라.
이혜숙이는 노래를 한 자락 해도 애들이 쿵!
글 한자락을 올려도 쿵!
대단한 친구야.
친구들이 홈피는 잘 안 들어와.
단체카톡도 있고 또 중요한 일을 공지하는 밴드가 있기 때문에
거의 거기서 이야기를 나누더라.
오래 들어오지 않다 보면 아이디도 잊어버리고 비번도 잊어버리고 해서
어려운 것 같더라.
아이디 다시 찾고 비번 다시 찾는 과정도 쉽지는 않은가 봐.
너희들도 전화번호만 알면 밴드에서 초대해 같이 활동할 수 있단다.
춘선이한테 전화번호 보내 봐.
하지만 근본은 우리 홈피니 홈피에 글 올려줘!
조금 있으면 전순복이가 만든 동영상 올라갈 거야.
그거 보면서 또 쪼매 웃고 울어 보셔^^
반가워~~
??세번째 맞는 스무살 파티에서 혜숙이가 이 글을 읽었을때
친구들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지 않았을까?
추억의 아련함과 삶의 감격, 기쁨이 혼합되어 가슴이 먹먹했겠지.
멋있는 파티에 예쁜 모습들, 환갑의 여인들이여.
앞으로의 남은 생애도 아름답게 이어가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