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함께 읽은 책은 강명희 작가가 쓴 <65세>


독서모임에 함께 해 주십사는 부탁에 흥쾌히 응해주시며 책에 대한 여러 뒷 이야기들을 들려주신 선배님 덕분에 독서나눔이 한층 더 풍성해지고 유쾌한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책을 읽은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읽는 내내 재미와 공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책 읽는 속도가 더딘 편이라 말하던 친구들조차도 이 책은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이유가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내 이야기같았고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 같았다는 의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에 따르면 이 책에 실린 9편의 주인공들은 전부 실제 인물의 이야기란다.

'이게 실화예요?' 라는 소설 속 한 인물의 질문에

'실화라기 보다 그 사람들을 이렇게 저렇게 얽어 작품을 만드는 것이지요.

소설은 논픽션이 아닌 픽션이라지만 아예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탄생하지 않아요. 가족을 팔고 주위 사람을 팔아야 소설이 나오지요 (p 245)'라는 선배의 말이 나온다.


9편의 이야기가 다 좋았지만 친구들이 가장 큰 공감을 느낀 이야기는 <65세>

아들과 주인공인 나, 그리고 주인공이 모시는 아버지 3대의 이야기를 쓴 글에서 친구들은 자신의 모습을 많이 보았던 듯 싶다.

주간보호센터에 가기 위해 비칠비칠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 모습에서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뒷모습이 오버랩되었고, 세상 살아가는 방식이 자신과 너무도 다른 자식들에게서 느꼈던 낯설었던 경험들이 쏱아져 나왔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이제는 정말 지금처럼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평생을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할머니로 살았던 이 자리를 퇴직할 것이라는 말에 박수를 보냈다.

친구들 대부분이 아직은 퇴직을 선언할 입장이 못된다며 퇴근만이라도 제 시간에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웃었고 다음 생을 기약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이제부터는 사치하게 살기로 했다던 윤여정의 말을 떠올렸다. 사치하게 살겠다는 뜻은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겠다는 의미인데 나이 70을 넘었으니 그 정도 사치해도 되지 않냐고 반문하던 여배우의 말이 큰 울림을 주었다.

우린 이제 겨우 65세이니 조금만 더 이 자리를 지키면 곧 우리도 마음껏 사치할 수 있는 나이가 오지 않을까? 다만 그 때가 되었을 때 몸이 우리를 배신하지 않도록 건강을 잘 돌보자고 당부하고 싶다.


작가가 꼽은 가장 아끼는 작품은 <아픈 손가락>

부모에게 버림받고 갖은 고생을 하며 살던 주인공의 가슴 속 끓어오르던 분노와 두려움과 폭력에 대해 누군들 쉽게 비난만 할 수 있으랴? 그로인해 또 다른 상처를 만들고 자신마저 허물어지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나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새로운 진실을 확인하면서 (30여년 세월 자신을 하루도 잊지 않고 밥을 지을 때마다 한 주먹씩 덜어낸 쌀을 팔아 차곡차곡 모은 통장을 편지와 함께 아들에게 유산으로 남김) 어머니께 버림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의 분노를 사그러뜨리며 자신의 딸과 아내와 다시 시작하는 삶을 꿈꾸게 했던 결말이 참 좋았다. 그것도 소설이 아니라 실제이야기라니 고생 끝에 낙이 찾아와 얼마나 다행인가?


삶에서 누군가 한 사람만이라도 날 믿어주고 사랑해준다면 그 팍팍한 시간들도 견뎌낼 수 있는 것 아닐까? 힘들어 하는 이웃에게 우리도 기꺼이 그런 손을 내밀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긴 하루>도 친구들에게 많은 공감을 받은 이야기였다. 작가의 이모 이야기라는 이 작품은 아들의 결혼식날 아침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가 막 운명하셨다는 전화로 시작된다.

병환이 있는 부모를 둔 친구들은 집 안의 큰 행사를 앞두고 날을 잡으면 늘 이런 불안을 느꼈다고 했다.

이런 지나가는 경험들을 살려 글로 새롭게 탄생시키는 선배의 재능을 부러워하고 그 열정에 찬사를 보내니 선배가 답하길 30년 이상 늘 글쓰기를 생활하면 저절로 그런 것들이 보여지는 법이라며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젊은 날엔 조급한 마음이 들어 '10년 안에 뭔가 이루지 못하면 내려 놓으리라'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나이들어 돌아보니 10년도 잠깐이더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선배의 글이 편했던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의 숙성이 있었기에 담백한 문장 속에 인생에 대한 통찰과 함께 인간에 대해 연민과 예의까지 녹여내 쉬우면서도 감동적이고 깊이있는 글을 담아낼 수 있었다.


그걸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작품이 <그녀가 세상을 건너는 법>에 등장하는 그녀이다.

결혼하여 살던 그가 실수로 만난 반쪽 대신 진정으로 잃어버린 반쪽을 만났으니 헤어져달라며 딸과 아내를 그야말로 헌신짝 버리듯 버린다. 그런 그가 몇 년 후 진정한 반쪽과 쪽박이 나자 다시 돌아와 그녀와 재결합을 원한다. 

아내와 딸을 버릴 때의 비정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이게 과연 용서가 되는 일인가?

그러나 주인공 그녀는 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를 받아들인다. 

세상일이 시시하다는 것을, 영원한 것도 없고 대단한 것도 없지만 다 자기를 위로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며 견뎌야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에 그런 선택도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근데 너희라면 어떤 선택을 할래? 

그를 용서할까? 거절할까?

살아가면서 겪는 아픔, 어려움, 슬픔을 이겨내기도 하고 버티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몸으로 배워가는 것이란 친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여름의 환타지>에 등장하는 두 인물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살림이 좋아 진학도 포기하고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고 남편이 사업이 어려워졌을 때는 파출부를 하면서도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에 행복감을 느끼던 한 여자.

또 가족을 위해 몽골에서 한국으로 와 포장이사 업체에서 일하며 자신의 일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던 또 다른 여자.


살림을 하든 이사짐을 나르든지 소설을 쓰든지 그 속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며 그 진정성이 사람을 감동시키면 그 사람의 일은 성공한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끄덕인다.


소득도 없는 일이라며 차라리 놀러다니라는 말을 듣던 소설쓰기가 파출부 아주머니에 의해 귀한 일로 격상되었듯, 귀한 일을 해 준 덕에 글을 쓸 수 있었다며 살림의 가치를 귀하게 평가한 두 여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무슨 일을 하든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는 일인가를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선배의 말에 의하면 남자독자들은 주로 <목련꽃 필 무렵>을 가장 좋아다고 언급한단다.

독서에도 남자와 여자의 성향차가 존재하는가?


난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랑탕에서 너를 보내다>의 진희와 <갓 길에서 부르는 노래>의 K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특히 진희가 학생운동 때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앓다 사망한 장례식장에 모인 친구들이 그녀를 추모하며 각각 떠올렸던 이야기 속에 묘사된 진희가 너무 부럽고 아름다웠다.


이미 친구들을 먼저 보낸 경험이 있는 우리였기에 그 장면에서 또 다른 기억을 끄집어낸 친구도 있었다. 친구를 생각하며 울컥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순수한 그녀가 우리 친구라 참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내 죽음 뒤에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삶은 얼마나 오래 살았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냐로 평가됨을 가슴떨리게 받아들였다.


K에겐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내 모습이 겹쳐보여 애정이 갔다.

K의 서툼이 내겐 설명없이 그냥 이해된다. 

그냥 아는 것도 모르는 사람. 머리는 아는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

하지만 이젠 그런 나도 나는 나를 인정하고 사랑한다.


선배의 글엔 <치유의 힘>이 있다고 한 친구가 말했다.

65세를 읽고 위로를 받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런 까닭이겠지.

(쓰고 보니 친구들이 한 좋은 말들이 너무 많이 누락됐네. 에고 미안해서 어쩌지?)


혹 아직 책을 읽어보지 못한 친구가 있다면 쉽고 재미있으며 잔잔한 감동까지 느낄 수 있으니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선배의 다음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겠다.


7월에 우리가 함께 읽을 책은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우종영지음


나무의사로 30년 넘게 살면서 체험한 나무 이야기를 쓴 책인데 

이 책도 쉽게 읽히면서 감동이 있어.

이 책 읽고 나니 주변의 나무들을 다시 보게 되더라.

좋은 책을 추천할 수 있어 기뻤어. (그만큼 내겐 좋았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