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고서


살아냈어야,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고


표절논란으로 오래 침묵하던 작가가 8년만에 내놓은 이 책은 우리들에게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아버지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앞서 말을 잇기 어려워했던 인숙이...

아버지는 인숙이 28살에 돌아가셨고 그보다 앞 서 5년 전에 이미 어머니를 여윈 상태였다.

아버진 16세에 황해도에서 혼자 인천으로 내려와 쌀 집 점원으로 일하시다 인숙이 엄마를 만나 결혼하여 딸을 내리 다섯을 낳고(인숙이가 다섯째) 그 밑으로 남동생 둘을 얻었는데 무척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 아버지가 크게 운 적이 두 번 있었는데, 남동생이 대학에 입학하던 그 해 갑자기 하반신 마비가 와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을 때다. 

나중에야 원인이 신경염인 것이 밝혀져 치료를 할 수 있었지만 처음에 아들이 갑자기 불구가 되었을 때 그 앞에서 펑펑 우시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또 한 번의 울음은 아버지 임종의 자리에서 공부도 마치지 못한 막내를 두고 큰 언니 집에서 삶을 마감하며 차마 눈을 감을 수 없었던 아버지!

그 자리에서 인숙은 아버지에게 동생들은 자신이 꼭 책임지고 잘 돌보겠다고 약속을 하자 눈물을 주루룩 흘리시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한다.

세월이 흐르고 각자 사는게 바빠 아버지 생각을 많이 잊고 살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옛 기억들이 떠오르며 그 시절 아버지는 사는게 얼마나 무섭고 막막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책 속의 아버지도 말한다.

무서웠다고...

그런데 무섭기만 했시믄 어찌 매일을 살겄냐? 무섭기도 하고 살아갈 힘이 되기도 했다고....


같은 월남가족이지만 가족 전부와 친척까지 함께 남하해 온 정숙이 아버지는 가족의 기둥같은 분으로 중심을 잘 잡아주셔서 가족들에겐 늘 영웅같은 존재였다.

강한 아버지와 달리 자기 주장이 없고 희생적이던 엄마를 젊은 날엔 답답해 하기도 했지만 나이 들어 생각하니 그런 엄마의 헌신이 있어 가정이 평화롭게 유지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큰 아들과 아버지가 주고 받은 편지글이었다. 또 여러 사람에게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부분이 부럽기도 했단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자신과 추억이 많지 않은 아버지에 대해 가족들에게 물으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옛날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아 아버지에 대해 알 수 없어 아쉽다.


경애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울음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첫 제사를 모셨을 때다. 

함흥에서 혼자 월남하여 부모 소식을 알 수 없어 하시던 아버지가 재미교포 친구를 통해 부모님 돌아가신 날을 알게 되어 제사를 모시게 되었는데 제사상 앞에서 그렇게 슬피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처음 봤다. 

남한엔 친척이 거의 없어 많이 외로우셨다.

그나마 의지하고 지내던 육촌형이 돌아가셨을 때 노인성 우울증이 와 한 달간 이상한 증세를 보이셨다. 새벽 2시에 정장을 차려 입고 결혼식에 가야 한다고 우기신다거나 엉뚱한 행동을 하셨는데 본인은 그 행동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시는게 책 속에서 아버지가 보이는 행동들과 많이 비슷했다.

- 헌이는 걱정할 것 없다.

- 헌이는 약속을 지킨다.

- 헌이가 그렇게 말했으면 맞는 말이다.

경애도 아버지에게 그런 딸이었다.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던 아버지.


책을 읽는 내내 울컥하는 마음을 느꼈는데 결국 눈물이 터진 곳이 마지막 장 유언장에서 였다는 의순이


헌이 엄마 정다래에게는 내 통장을 남기네.

잔고가 많지 않아 미안하네. 정다래 당신은 나한티 열매만 보여줬네. 일생을 내게 열매만 갖게 하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았는가, 미안하고 감사했네.


의순이 아버지가 돌아가신건 46세 의순이 고2때였다고 한다.

월남가족이었던 의순이네는 친척이 없었고 오직 가족이 전부였단다.

기억나는 추억 중의 하나는 일요일 아침이면 온 자매들이 부모님이 주무시는 안방으로 몰려가 이불 속에 옹기종기 누워 열던 즉흥 가족회의!

딸 여섯은 나중에 크면 빌딩을 지어 다 같이 살자며 누가 어느 층에 살 것인가를 가지고 다투기도 했다.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참 많은 추억을 남기셨다. 

삶에는 기습이 있다더니 아버지의 죽음은 의순이 맞닥뜨린 첫 기습이었다.


- 매일 죽을 것 같아도 다른 시간이 오더라.

-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 너무 오래 붙들고 있으면 그 아도 갈 길을 못가고 헤맬 것잉게...붙들고 있지 말어라. 어디에도 고이지 않게 흘러가게 둬라. 


투병중인 동생을 지켜보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의순에게 위로가 되었던 말들이다.


의순이는 자녀들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고도 했다. 

아이들의 아버지인 곁지기가 짊어졌던 삶의 무게와 책임감을 아이들이 느끼길 바라면서...


윤순의 아버지도 월남하셨단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진 다정하고 따뜻한 분이셨고 뭐든 말할 수 있는 분이셨다.

윤순이 초임시절 준비물을 미처 챙기지 못하고 출근하면 가까운 곳에 근무하던 아버지에게 전화해 집에서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곤 했단다. 

한 번도 잔소리없이 한달음에 준비물을 가져다 주시는 아버지를 보고 오히려 동료 교사들이 어처구니 없어했던 기억들!

그 아버지에게 후회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한 것.

그 말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쑥스럽고 어색한지 그저 손과 발을 맛사지만 해드렸다.

또 하나는 아버지 살아계실 적에 운전이 서툴러 한 번도 차에 태워드리지 못한 일. 나중에 운전이 익숙해 어디든 모시고 갈 수 있을 때 더 이상 아버지가 곁에 계시지 않다는게 참 서러웠다고 한다.

윤순이는 나이가 들면서 우리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해야하는데 늙어서 조심할 것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노욕을 버리자. (넌 이미 실천하고 사는걸)

자존심을 지키며 살자 - 서야 할 자리를 지키는 것


이 책 말미에도 죽음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덤덤하게 나누는 대화들이 나오는데 묘하게 뭉클하다.

- 먹고 싶으거 있으믄 해 먹고 가야제

- 내가 언제 죽겄는가?

- 그것을 내가 어찌 안다요?

- 인자 살기 싫은디 안 데려가네

- 늘 깨깟하게 하고 있으시오. 언지라도 갈 수 있게

- 그리야제

- 어쩌든가 인사는 하고 가시오. 월성 양반처럼 말도 없이 가지 말고

- 오래 슬퍼하지는 말어라 잉

- 모두들 각자 그르케 헤매다가 가는 것이 이 세상잉게


효숙의 아버지는 올 2월 95세의 나이로 사망하셨다.

아직 유품 정리도 다 안된 상태인데 이 책을 읽으며 기억에 붙잡혀 책 읽는 속도가 더뎠다고 한다. 

아버진 차갑고 자신만 아는 깍쟁이였다. 

아들 딸에 대한 차별이 노골적인 분으로 서운한 기억 속엔 자전거가 있다.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 곧잘 자전거 뒤에 자신을 태워주셔던 아버지가 동생이 자전거를 탈 만큼 자라자 자신은 더 이상 자전거를 태워주지 않으셔던 아버지!

(우린 이 대목에서 크게 웃었다)

아버지 살아계실 적에 병수발을 거의 전담해 자신은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자신의 생각이 되돌아봐 진단다. (너 도리 다 한 것 맞아)


인주에겐 친정 아버지보다 더 살가운 시아버지가 계셨다.

시아버지는 부친을 일찍 여의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셨던 분이다. 

퇴근하는 며느리에게 오늘 보낸 하루가 어떤 날이었는지를 늘 물어보고 다독이고 위로를 주던 분. 시아버지가 계셨기에 시어머니를 견뎌낼 수 있었다는 것을 그 분 돌아가신 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는데, 돌아가신 후에 보니 자신의 물건을 깨끗이 정리하여 남은 사람이 할 일이 없었단다. 우리도 이젠 짐을 정리하며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는다.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난 그 중에도 4장과 5장이 뭉클했다.

특히 4장에 등장하는 박무릉이라는 사람이 인상깊었다.


전쟁 중에 두 다리를 잃고 불구로 살아가는 그가 헌에게 들려주던 말이 있다.


책을 읽는 시간에 대체로 마음이 안정되곤 했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하면 이해하겠나?

책을 통해 인간을 알게 되었지.

얼마나 나약하고 또 얼마나 강한지를 말이야 한없이 선하고 끝간 데 없이 폭력적이지.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고 불행과 대치하며 한생을 살다간 사람들은 자취를 남기네 

모진 상황을 견뎌낸 흔적 말이야. 내가 책을 읽는 일은 그 흔적찾기였는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책을 읽으며 조금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느끼는 마음도 그런 것 아닐까?


또 고르와 도린이 살았다는 프랑스 보농이라는 지방에도 흥미가 생겼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는 헌에게 묻는다.

- 니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하고 있냐?

헌이는 나중에 혼자 말로 아버지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 아버지,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하고 싶어서 쓰는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쓰는 것 같아요.

  다시 시작할 수 조차 없다는 두려움에 눈꺼풀이 떨렸다

  아버지 나는 부서지고 깨졌어요. 당신 말처럼 나는 별것이나 쓰는 사람이예요. 아무 것도 아니예요. 그런데 나는 그 별 것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해요.


표절에 대한 작가의 변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경숙 작가가 좋은 작품으로 독자에게 속죄하길 바란다.


6월 독서는 이미 예고한 강명희 선배님의 <65세>

6월엔 선배와 함께하는 독서모임을 계획중이야.  

시간내어 함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