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봄소식을 전해오네. 길가에 산수유는 벌써 노랑병아리무리처럼 올망졸망 꽃을 피웠다. 오늘이 경칩이라고 하는데 지난주 논가에서 이미 개구리들의 합창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우리 인일 12기들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으며 겨울에 한 장의 그림을 첨부해서 보내온 지인의 다음과 같은 소식으로 이야기를 해볼까 해.

 

가브리엘 뮌터의 <새들의 아침식사>라는 작품이에요.

이렇게 지내시고 계시겠죠? ^^ 요즘 이 작가의 작품이 마음이 많이 끌리네요.

저희 집이 1층이라서 실제 겨울에 저런 모습을 종종 본답니다.

감사한 일이죠^^”

 

아래 그림이 가브리엘 뮌터의 <새들의 아침식사> 이다.

컴퓨터에 문제가 있는지 사진이 영 첨부되지 않아서 얼쩔 수 없이 링크를 걸어놓았다. 

https://uploads8.wikiart.org/images/gabriele-munter/breakfast-of-the-birds-1934(1).jpg!Large.jpg 



 주택에 살지만 우리 집이 좀 답답한 구조라서 아쉽게도 실내에서는 그림처럼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한가로운 창밖풍경을 보기가 어렵다. 이 그림을 보면서 눈꽃이 핀 나뭇가지에서 생동감이 넘치는 새들의 지저귐이 들리는 듯 한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에서 고독감과 쓸쓸함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그림을 보며 작가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가브리엘 뮌터(1877~1962)는 독일 출신 표현주의 화가로 표현주의 화가들의 모임인 청기사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뮌터에게는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칸딘스키의 여인이었다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그녀는 20대에 미술학교에서 만난 칸딘스키에게 그림을 배우다가 이미 유부남이던 그와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상속받은 유산이 많아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그녀는 뮌헨에서 멀지 않은 슈타펠 호숫가 무르나우에 집을 마련하고 칸딘스키와 함께 살았다. 이 시절 뮌터와 칸딘스키는 작품에 대한 영감을 서로 주고받았다고 한다


  칸딘스키는 부인과 헤어졌지만 뮌터와 10년 넘게 연인관계로만 지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러시아인인 칸딘스키는 독일을 떠나 러시아로 돌아가야만 했다. 다시 만날 때 결혼하자는 칸딘스키의 약속을 굳게 믿고 뮌터는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내며 그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이 변한 칸딘스키는 러시아로 돌아가 바로 다른 여성과 재혼을 한다. 몇 년이 지나 그 소식을 들은 뮌터는 깊은 상처를 받고 정신적으로 붕괴되어 한동안 그림을 그릴 수 없을 정도로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그녀 심경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 있다.

 

나는 경험들을 .... 형상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여기에 쏟은 이 노력과 작업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제 경험들은 지하창고에 처박혀... 녹이 슬어간다... 인생에서 버림받은 사람이 미술로부터 버림받았다.” 홍진경 번역, 칸딘스키와 청기사파, 예경 59~60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바우하우스에서 회화와 미술이론을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칸딘스키는 독일로 다시 돌아와 왔다. 독일에서 부와 명성을 얻고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칸딘스키를 보며 뮌터의 심정은 어땠을까? 칸딘스키가 독일로 돌아와 뮌터에게 자신의 그림과 소지품을 돌려달라고 법정소송을 하자 일부는 돌려주었지만 정신적 피해 보상금이라고 주장하며 뮌터는 무르나우 시절에 그린 칸딘스키의 주요 대작들은 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뮌터는 스웨덴, 덴마크, 독일의 몇 몇 도시를 옮겨 다니며 살다가 칸딘스키와 젊은 날을 함께 보냈던 무르나우 집으로 돌아왔다. 1933년 바우하우스가 나치의 탄압으로 폐쇄되자 칸딘스키는 파리로 망명해서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나치치하에서 칸딘스키가 퇴폐예술가로 지목되며 그의 작품이 몰수당하기도 했는데 뮌터는 자신이 소장했던 칸딘스키의 작품을 위험을 무릅쓰고 지켜냈다고 한다.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고 추상화는 더더욱 난해해서 모르겠다. 다만 칸딘스키가 흥미로운 점은 미술을 음악의 세계로 풀어낸 창의적인 해석이다. 그는 색채로 표현된 음악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칸딘스키는 추상미술을 음악에 비유하여

 

색채는 건반이요, 눈은 hammers(망치?), 영혼은 여러 개의 선율을 가진 피아노이다. 예술가는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automatically(자동으로? 무의식적으로? 부지불식간에?) 건반 하나하나를 누르는 손이다.”(Color is the keyboard, the eyes are the hammers, the soul is the piano with its many chords. The artist is the hand that, by touching this or that key, sets the soul vibrating automatically.)

 

라고 했다. hammer? 웬 망치인가 했더니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면 올라와 현을 치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부분이 해머라고 하네. 악기를 몰라서 난 못을 박는 망치인 줄 알았다. ㅎㅎㅎ 칸딘스키의 작품 자체에서 음악적 표현을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칸딘스키 작품에 음악이 첨부된 동영상을 보며 나는 생동감을 느꼈다

그대들도 한번쯤 감상해 보시기를

 

"https://www.youtube.com/embed/3hLMs3kPFIg

 

 

 뮌터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보자. <새들의 아침식사>는 뮌터가 50대 후반인 1934년 무르나우 집에서 그린 그림이다. 나의 지인은 이 그림에서 눈꽃이 핀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생동감이 넘치는 새들을 바라보는 여인에게서 여유로운 아침을 본 것 같고, 나는 그 여인의 고독감과 쓸쓸함이 느껴지는 뒷모습에 눈길이 더 간 것 같다. 문득 인간은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침없이 성취해 가며 살아가는 지인에게서 나는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을 느끼곤 했다. 지구상 6대주(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유럽,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에서 한번 씩 살아볼 생각으로 인생을 설계하고 준비한다는 그녀의 눈빛에는 미래의 꿈으로 반짝이곤 한다이제 잠잘 때말고는 별로 꾸는 꿈이 없는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람이다. 그나마 내가 꾸는 꿈은 개꿈이다. 나의 늙은 개들과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개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