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아침.  모처럼 느긋하게 일어났다.
창밖에는 새소리가 들리고  낮게 드리운 구름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다.  

구수한 누른 밥 냄새가 나를 유혹한다.
시어머니께서 나보다 일찍 일어나  끓여 놓고 기다리신다.
요사이 시어머니께서는 가게 일을 도와 주고 계신다.
“이 나이에 일을 시켜주니 얼마나 고마우냐?”  하시며 정말로 좋아하신다.  
오늘은 어머니가 할 일이 없으시다 하면 여간 섭섭해 하시는게 아니다.
어머니는 나의 좋은 Helper 이시다. 나란히 앉아 함께 도란도란, 이런 저런 이야기 하는 것을 즐거워 하신다.
오늘은 보라색 스웨터에, 안경과 모자를 쓰시고 앉아 일을 도우며 지난 주일에 Soup Kitchen한 사진을 배경으로 내 글을 읽은 동생 애숙이의 이야기를 하신다.  
비는 주룩주룩 억수로 내리는데 찢어진 우산을 쓰고 주차장 차 옆에 비스듬히 쭈그리고 앉아있는 거지가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 없었다고…   옆의 분들도 쯔쯔 혀를 차시더라며……  
“어머니, 오늘은 급한 이 일만 끝내고 호박 구경 하러가요.”  

92번 도로를 타고  Half  Moon Bay로 넘어 가는 길은 항상 즐겁다.
혹 몸이 피곤하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에도 이 길은 언제나 나를 반기며 실망 시키지 않는다.
호수를 지나 산 길로 접어들면  벌써 울창한 나무 숲 속을 요리조리 꼬불꼬불 달린다.  흰구름이 둥실둥실 떠있는 하늘 아래 능선에 있는 공원 묘지 앞에는 꽃을 파는 총각이 손을 흔들고 있다. 산 아래 보이는 풍경이 시원하다.  
“속리산 가는 열두 고개 같다.”며  어머니가 소풍 나온 아이 마냥  기뻐 하신다.

산을 내려 오니 양 옆으로 장미 화원과 크리스마스 트리 농장이 있고 크고 작은 붉은 호박이 밭에 즐비하다.
온통 호박으로 장식한 농원에는 즐겁게 Pony를 타는 아이들, 할로윈 장식 앞에서 사진 찍는 가족들, 놀이 기차 타는 사람들,  동물을 안고 노는 아이들, 호박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흥겨운 축제장 같다. 
이번 추수 감사절에도 이렇게 흥겨웠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도, 내 마음 속에도 이보다 더 좋은 천국이 왔으면 좋겠다.  

먼저 해안도로를 따라 파도를 보며 부두로 달려갔다.  배에서 펄떡펄떡 뛰며 살아 있는 큰 Lingcod를 횟감으로 샀다.
“아버지가 요새 가을을 무척 타시는 것 같아요.” 하며…
아버님을 기쁘시게 하고픈 아들의 마음인가 보다.

다시 되돌아 오다  무게가  937 파운드 나가는 펌킨이 있다는 팻말을 보고 농장으로 들어갔다. 정말 큰 호박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와, 내 몸의  6배가 넘네……”  
호박 위에 앉아 웃으며 사진 찍는 계집애가 귀엽다.  
“진짜 크구나. 내 70평생 처음 본다.  어떻게 이렇게 크게 키울까?  미국 종자는 무엇이든지 다 크구나.축복 받은 땅이구나.”  
사진으로만 보던 큰 호박을 만져 보았다. 생각보다 딴딴하다.
무게에 못이겨 밑은 둥글지 않고 판판하게 된게 조금 아쉽다.
증명 사진을 찍고 싶다.  ‘보여줘야지, 보여줘야지…’  
이 풍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누구에겐가 보여주고 싶다.
집에다 장식도 하려고 길쭉한 호박을 하나 샀다.

새끼돼지, 염소, 닭, 오리들이 있는 곳에 들어가 어린애 같이 포즈도 취해본다.  
어머니는 여러가지 신기하게 생긴 호박을 보시며 한국에 있는 시동생네를 생각하시나 보다.
“이 놈 찍어서 한국 보내자꾸나. 그리고 내일 주일 예배후에 사돈 어른이랑 감 따러 가자.”  
즐거워 하시는 시어머니를 보며, 어린애들 있는 동생과 친정 어머니랑 함께 못 온게 아쉽다.  Lingcod로 회를 뜨고 생선찌개 를 보글 보글 끓여 식구들과 함께 먹을 생각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참으로 감사한, 좋은 가을 날이다.



                                              10월 31일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김 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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