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카펫을 밟는 폭신폭신한 감촉이 참 좋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가슴이 콩당콩당 뛴다.  
이제 저 문을 들어가면 보고싶던 그리운 친구들, 선배님과 후배님들이 방긋방긋 벙실벙실 웃으며 앉아 계시겠지.  
얼마나 이 시간을 애태우며 기다렸었나?
문 앞에선 예쁜 드레스를 입은 14기 후배님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친구들인데 어쩌면 이렇게 정겹고 편안할까?  
모두들 꽃봉오리를 벌려 막 피어난 장미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저 와인 좀 따라 주실래요?” 군살없이 조각같은, 예쁜 정영숙이 먼저 말을 꺼낸다.  
“우리의 만남과, 우리의 젊음과,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  
“위하여!”

김춘자 회장님의 인삿말은 점점 톤을 높이고 흥분된 밤은 점점 고조되어 간다.  
멀리서 오신 선배님과 후배님들의 소개가 이어지고 나의 이름도 부르신다.  
내 이름을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 계셨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멀리 앉아 계신 조영희 선배님이 손을 들어 인사하신다. 우린 아직 만나 인사도 못 나눈 사이인데…  선배님, 고맙습니다.  

차기 회장을 맡은 김영란이 천천히 인삿말을 한다.
입은 드레스가 잘 어울려 우아하다.
“제가  집안 잔치 때 부르려고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몇번이고 연습했어요.  
오빠가 그러셨어요.  ‘영란아, 너무 잘 하려고 하지마라!’  
오빠 말씀처럼, 물이 흐르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맡은 일을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퀴즈를 낸다.
“이 말이 재미있어요. 과년한 딸은 16살, 방년은 20살, 그러면 81세는 무엇인지 아세요?”
“여기!”  용감한 오신옥 언니다.
“노인네!”  “네, 틀렸습니다.”
“망구래요. 할망구가 여기서 나왔죠. 재미있죠?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라 해서 망구순, 망구라 한대요.”  
“우리들은 할망구가 되고 백세가 되도 아름답고 젊게 계속 만나요.”  
어쩌면 저렇게 예쁘게 자랐을까? 우리 인일이 자랑스럽다.  

2회 선배님들의 회갑연을 하고,  이어 7회 김용순 선배님의 사회로 흥겨운 시간은 계속된다.   캐나다에서 날아와 즐겁게 노래와 춤을 추시는 선배님이 “킹콩”의 여주인공 같다.  킹콩 앞에서 재주 부리는 깜찍한  “나오미 왓츠” 처럼 우리들을 신나게 파티로 끌어 들인다.  

한국에서 오신 8회 김자미 선배님의 볼륨있는 흥겨운 노래에 맞춰 이상옥이 춤을 춘다.  언제 저렇게 아름다운 춤을 추며 살아왔을까?    부럽다.  부드러운 손놀림과 허리가 유연하다.

김인숙은 조용하다. 동북부의 김인숙 처럼 조용조용하게 말한다.
누구에게 구태여 나타내려 하지않고 조용히 예쁘게 피어 그렇게 향기를 내고있다.  
시원시원한 이미향은 Golf를 즐기나 보다. 아마  미쉘 위처럼 장타를 잘 칠것 같다.  
전영희, 아! 전영희.  우린 처음 만난게 아니었다. 늘 내 앞에 있었다.  
나는 아름답고 능력있는 영희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시원 시원하게  말하며 다가오는 전영희를 바라보는 나의 남편 얼굴이 붉게 홍조를 띄는 것을 나는 보았다.  전영희는 그랬다.  

환갑 맞은 2회 선배님들을 위하여 남자분들이 냅킨을 들고 춤을 춘 뒤 김영란의 남편이 한마디 한다.  
넉살좋게 구수하게 하시는 이야기가 포근한 느낌을 준다.

“제가 인일 옆 학교 다녀서 잘 압니다. 인일 여고생들은 높은 언덕 위 학교로 걸어다녀 조선 무우다리지만  튼튼해요. 차갑고 짠 소금기 있는 바닷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학교에 다녀서 이민와서도 잘 견디고 살아 왔지요. 그래서 연애는 밑에 있는 학교의 하늘하늘한 여학생이랑 하고 결혼은 꼭 인일 여고생이랑 하지요.”    
“아니, 그럼 누구랑, 누구랑 연애했다는 얘기 아녜요?”  

찐한 키스를 멋있게 해서 금슬상을 타신 선배님 부부의 그 분은 “He Five” 멤버란다.  
매혹적인 목소리로 부르는 그의 노래가 모두들 추억에 잠기게 한다.  
이제 밤 12시가 넘었다.  
나는 떠나야 한다.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또 다음 만날 것을 기약하며 떠나야한다.  
선배님,  즐거웠어요. 또 뵈요.
친구들아 행복하게 다시 만나자. 후배님들 반가웠어요.

“자기는 무엇이 제일 좋았어요?”
“음, 너무 흥분해서 정신없었어. 우리집 장미 하나만 예쁜 줄 알았는데 향기롭고 색색이  예쁜 장미가 가득하니 눈을 똑바로 뜰 수가 없더군. 처음에,  복도에서 우아하게 드레스 입은 여인이 걸어 오길래 쳐다 보지도 못했는데, 나직하게 고운 목소리가 들리더군.  ‘산호세에서 오셨지요?  저, 성매예요.’   아,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성, 정말 못 잊을거야.”  

그래, 오늘 이 밤, 함께했던 이 시간을 우리는 영영 잊지 못할거야.  
친구들아,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어.
우리 자주 자주 만나, 행복한 시간 많이 많이 갖자.
사랑해.
사랑해 친구들아.




                                                                                              1월 24일 200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김 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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