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인사동근처에서 모임이 있었다.

모임에 온 친구들은 한결같이 옛날 고향에 온 것 같아서 즐겨웠다고 했다.

자신이 나온 창덕여고가, 남편의 출신학교인 휘문이, 허다못해 친정 아버지가 나오신 재동국민학교가,

또 어떤 친구는 자신이 살던 집이 바로 그 근처에 있어 모두 고향동네에 온 듯 했다고 했다.

인천 촌놈인 나는 아직까지 그곳에 낯설다.

 

돌아오는 길에 인사동 구경을 하다가 집에서 편히 입고 있을 개량 한복 한벌을 샀다.

계산할 때 보니 옷 한벌에 5만원이었다.

집에 와서 패션쑈를 하며 자랑을 했다.

남편은 좋다! 라고 말하고는 금방 삐진다. 

자기도 그런 개량한복을 옷을 입고 싶었는데 자긴 안 사주고 내 것만 샀다는 것이다.

 

당장 인사동 가기로 했다.

남편은 진짜 그런 옷이 입고 싶었나 보다.

어딜 가자고 하면 언제나 날씨 탓을 하고 안가는데,

아니 나갔다가도 도로 들어오는 사람인데 비가 와도 가잔다.

이렇게 비오는 날, 인사동 첫 나들이는 시작되었다.

 

인사동에 가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시켰다.

주차요원이 1시간에 4000원이란다.

그래도 여기가 인사동인데 그쯤이야. 

다른 옷집에 가서 옷을 입어보고 내가 산 옷집 <베틀가>에 갔다.

내가 옷 산 집은 창고 쎄일이라 웬만하면 이만원 삼만원이다.

남편은 한벌을 사고 웃옷을 하나 더 사고 나도 편한 브라우스 하나를 더 샀다.

4개를 계산하는데 12만원이었다.

싸다. 싸. 이렇게 편하고 좋은 우리 옷이 싸기까지 하구나.

남편과 난 신나게 쇼핑을 하고 주차장으로 갔다.

 

그런데 남편의 얼굴이 별안간 사색이 되었다.

아무리 뒤져 보아도 자동차 키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주차요원에게 맡기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안 맡겼단다.

'아무래도 옷 입어 볼 때 떨어뜨렸나 봐.'

남편은 그렇게 말하곤 빗속을 뚫고 옷집으로 향했다. 

첫번 째 갔던 옷집도 두 번째 갔던 옷집도 가서 뒤졌지만 열쇠는 나오지 않았다..

30여년을 살아도 손수건 한장 지갑 한번 잃어 본 적이 없는 남편이

인사동 첫나들이에 흥분이 되어 큰 실수를 했다.

하이카에 전화를 해 키를 잃어버렸는데 어찌하냐고 물었다.

키를 잃어버렸을 경우에는 자동차 써비스 쎈터에 전화를 하면

긴급출동을 해서 열쇠꽂이와 함께 열쇠를 갈아준단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게다가 주차비는 계속 올라간다.

달리 방법이 없어 남편은 자동차 회사에게 전화를 해 열나게 우리가 있는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골이 지근지근 아프다. 허지만 어쩌냐. 일은 이미 벌어진 걸....

주차비가 더 올라가기 전에 계산을 하며 사정했다.

근데 우리가 열쇠를 잃어버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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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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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여기잖아요.

열쇠는 주차요원의 새끼손가락에 걸려 있었다.

주차를 시키고 주차요원이 키를 가져간 그 순간이 생각이 나지 않았던 거다.

 

열쇠를 보는 순간 빗속에 한 30분 정도 쑈한 것이 순식간에 싹 없어졌다.

꽉 막힌 남산 1호 터널길에 서 있는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ㅋㅋ 출장비며 열쇠 교환비까지 오늘 돈 많이 벌었다'며 키득거렸다.

 인사동 첫 나들이를 그렇게 기분 좋게 끝내고 꽉 막힌 도심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남편이 다음에는 전철을 타고 인사동에 가서

천천히 구경도 하고,차도 마시고, 민속주점에 가서 막걸리도 마시고, 밥도 먹고, 

쇼핑도 하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