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캐년을 흐르는 푸르른 콜로라도 강물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강 건너편 높은 산봉우리들이 우뚝우뚝 솟아 위용을 뽐내고 있다.  아리조나 특유의 성같은 돌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1시간 일찍 입장권이 매진되어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Walk the sky!  그랜드캐년 웨스트의 유리로 만든 다리 Skywalk 를 경험하러 멀리 사막을 달리고 달려 왔는데, 먼저 온 사람이 많아 헛탕을 쳤나보다.  
언젠가 기회가 또 있겠지.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사진 찍는 일만 즐기고 있다.  

이제 돌아가야지.  그 멀고 황량한 광야, 사막길을 다시 달려 가야지.
멀리 병풍을 친듯 붉은 산이 만리장성 마냥 뻗쳐있다.  후알라파이 인디언과 자슈아 트리, 둥근 기둥에 돔같은 붉은 선인장만 사는 땅을 내리 쬐던 태양은 서산으로 넘어가고 붉은 산 위로 하얀 보름달이 떠오른다.  

그 둥근달은 돌아가는 사막길 50마일을 한시간이나 옆에서 지켜보며 따라온다.  모습은 더 또렸하게 빛나고 밝아  혼자 달리고 있는 우리를 외롭지 않고 즐겁게 해준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주님께서 지켜 주셨듯, 그렇게 우리를 지켜 주는 것 같다.  


LA로 와 신혼초인 둘째네와 막내네 아파트에서 하룻밤씩 자기로 했다.  
새벽 2시에 막내네 아파트에 도착하니 기다리다 지친 막내는 잠이 금방 들었는지 일어 나지도 못한다. 시애틀 부모님께 간, 룸메이트도 없이 혼자 문 열어 놓고 자고 있다.  
냉장고를 열어본다.  아무것도 없이 텅비어 있다. 반찬거리도 간식거리도 없다.  소다도 없다.  오래된 얼음 조각뿐.  찬장을 열어본다.  먹을게 없다.  뜯지 않은 오래된 시리얼만 하나 달랑 높이 얹혀있다.  빈그릇들만 엎어져 있고… 마이크로 웨이브 옆엔 뜯지 않은 쌀 한포가 그대로 있고…  

함께 있던 작은 형이 결혼하여 떠나가니 외롭게 되었구나.  혼자 음식 제때 못해먹고 불쌍하게 되었구나.  큰 언니네는 한달에 한번 꼬박꼬박 LA 내려와 막내 아들 냉장고에 음식을 가득가득 사 넣어주고 맛있는 것 함께 먹고 온다고 했는데…  

부모 떠나 공부하고 일한다고 LA 와서 혼자 이사하고 혼자 밥 먹으며 얼마나 답답했을까.  얼마나 외롭고 살길이 막막 했을까.  함께있던 작은 형까지 떠났으니, 불쌍한 내 자식…    


한시간을 우리와 나란히 따라오며 비춰주는 보름달이 고맙고 정답다.  
막내는 운전하는 큰형과 앞자리에 앉아 요즘 본 영화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다.  
우리는 편안하게 뒷자리에 앉아 의자를 눕히고 누어 있다.  

“이런 사막에 오면 ‘마라의 쓴물’ 생각이 나요.”
“그래? 대견하네. 성경말씀도 생각하고…”  

“하나님께선 400년간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 내셔서 곧장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으로 인도하시지 않으셨지.  그들 앞엔 엄청난 홍해가 가로막고 뒤쫒는 애굽 전차대 병사들, 두렵고 떨며 통곡할 때 하나님께선 큰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시며 바다의 주관자 이심을 보여 주셨지.  그 다음은 풀한포기 없는 불모지대 신광야였지.  굶어 죽을수 밖에 없는 그 곳에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며 하늘의 주관자 이심을 알게 하시고,  그 다음엔 물 한방울도 없는 불볕의 광야 르비딤이였지. 원망하는 그들에게 반석에서 생수를 주시며 땅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심을 믿게 하신거야.  우리는 힘들고 고통스런 광야를 지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깨닫고 복을 얻게 되는거야.”  

“우리 어디서 저녁먹고 가야잖아요.”  
“그래. 큰애가 알아서 할거야.  잠시 이곳에 서서 밤하늘의 달과 별, 그리고 어둠 속의 사막 좀 구경할까?”  

어두운 자슈아트리 숲에 서서 하늘을 쳐다본다.  
달이 밝다.  오리온좌, 북두칠성, 북극성…
음, 이 내음.  숨을 크게 들이마셔본다.




                                                      
                                                                                                         2007년 추수감사절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김 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