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과 찬양 집회하고 있는 이 시간에 어머니께서 이를 위하여 한국에서 기도로 함께 하고 계십니다.”
어머니 김귀순 권사님은 87세 이신데 어릴 때 세살부터 윤형주씨에게 찬송을 가르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음악 속에 살았다.

노래를 잘 해  “누가 누가 잘 하나”에 나가 “조그만 주먹이라 너희들은 흉보지만…”  
멋지게 잘 불렀는데 그만 너무 긴장 했는지  “든든하다, 단단하다.”를 바꿔 불렀다.  
딩동댕 치던 심사위원과 사회자가 너무 아까워 300명의 방청객 어린이에게
“다 마친걸로 할까요?”  물으니  “아니요, 안돼요!”
이 일로 기가 팍 죽어, 소풍 가서도 노래  시킬까봐 숲에 숨어 지냈다.  
아, 불쌍해라. 아, 안타깝다. 냉혹한 세상이다. 남의 일 같지 않다.

그 후 동신교회 성가대에서 찬송하면서 담대해졌고 성격이 바뀌었다.
송창식과 함께 쎄시봉에서 통기타 치며 노래 하는데 여학생들이 모두들 괴성을 지르고  자지러져 난리난리 났다.
“야, 국산도 잘 나온다.”
한국에서는 아직 소리 지르며 환호하는 예가 없을 때 였다.
가수는 박수소리에 산다.  5주 연속 가요 톱에 일등했을 때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쩔 수 없었다.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송대관은 늦게, 일등 했을 때 네번의 앵콜을 받고 주저 앉아 한없이 울었단다.  지나간 어려웠던 무명시절을 생각하며…

75년도 12월 연예인 대마초 사건으로 서울 구치소의 추운 감방 속에서 죽고만 싶었던 그때,  내동댕이 쳤던 어머니가 넣어 주신  성경책을 펴들고 읽기 시작했다.
양파 껍질 벗기듯 자신의 허물을 그는 하나 하나  벗어 버린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   호두껍질을 망치로 깨치듯 깨치고 나온 윤형주씨는 하나님께서 주신 감미롭고 청아한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을 하기 시작한다.

윤동주시인의 6촌이기도 한 윤형주씨는 타고난 아름다운 시어로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노래하는 전도사가 되었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 되고…..”
기타를 치며 눈으로 싸인을 보내는  얼굴이 빛난다.  
내 가슴에 짜릿한 전율이 흐른다.  그 분의 마음이 나에게 와 닿는다.
조용히 건반을 누르며 호흡을 맞추는 나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낸다.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물 밀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침은…”
5절 가사를 다 부르고도 또 다시 되풀이 하는 윤형주 장로님과  반주하는 나.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어 밤이 늦도록 오래 오래  함께 찬양했다.

          
                                                                                        2월 11일 2005년   김 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