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산에 진달래가 붉게 물든 4월 어느 초봄
나의  대학시절이 막 시작되던 입학식 끝나고 몇 일 지나지 않아
2학년 선배언니로 부터
파트너가 부족하니 와서 땜빵 해야된다는 주문에
어리 버리 신입 초년생은 얼떨결에 차출 되었다.
아마 2회 선배 송도화원집 언니가 잘나가는 S 대생이랑 미팅을 주선한 모양인데
서오능에서 하는 야외 미팅이라
누군가가 빵꾸를 낸 모양이었다.
우리과 4명은 2학녕 언니들 틈에 끼어
말로만 들어보던 미팅을 난생 처음
누구보다 먼저 하게 된 셈이 되고 말았다.

인천 촌내기가
엄마가 맞춰준 살구빛 투피스에
하얀 레스 브라우스 받쳐입고
리본 달린 빨간 단화 신고
한껏 멋낸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고 촌스럽게 느껴지지만
아마 그때 당시엔
2학년 언니들 보다
풋풋하고 싱그러움이 더했을 듯 싶은데
그래서인지
나의 파트너는 매우 흡족해 하며
온정성을 나에게 다 했던것으로 기억된다.

단체로 게임도하고 여흥 시간을 보낸뒤
2시간 자유시간을 주고
버스 종점에서 모두 모이기로하고 뿔뿔이 헤어졌었는데
나와 파트너는 진달래 꽃그늘에 앉아
이야기로 꽃을 피웠는데
아마 고등학교이야기 가족이야기로 대부분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나 싶다.
그 와중 진달래를 한아름 꺾어 내 가슴에 안겨준
낭만도 누려보았는데
약속된 장소에 시간 맞춰 가보니
모범생 4커풀 빼놓곤 20여 커플은 행방이 묘연한게
아마 일찌감치 시내로 나가 각자 즐겼으리라.

누리 4커플은 단체로 광화문으로 나와 모 중국음식점으로 들어가
거나하게 청요리 시키고 후속 미팅을 노래를 곁들여
아주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늦은시간 헤어졌는데
그중 문리대에서 이름난 기인인 학생이 관상을 보아 주었는데
내 인상이 그런대로 괜챦았는지
꽤 좋게 현모양처감이라 평하여 나의 파트너도 덩달아 좋아하던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그 때나 저때나 분위기에 취하다 보면
이것 저것 생각 깊이할 겨를이 없음은 마찬가지인지
너무 과하게 나온 요금에
내 파트너가 시계풀고 학생증 맡기고 나온 기억도 생생하다.

마지막 기차 시간에 대서 서울역 까지 배웅 받고 인천으로 오는
내 가슴에는 그때까지 진달래꽃 한아름이 그대로 안겨 져 있었는데
마냥 순진했던 나는
그 꽃이 무슨 구애의 전령사로 느껴져
조용히 기차간에 두고내려 버렸는데
그래서인지
끈질긴 편지와 학교앞에서 기다려 어렵사리 2번인가 만난후
군대가버린 파트너와의 인연은 연결 되지 않았고
우리 옆지기와의 불붙는 기차간 연애로
나의 청춘의 화려함은 종지부를 찍었다.

결혼후에도 나의 결혼을 모르고 계속 일방적으로 온 편지는
우리 엄마가 없애 버리고
지금 쯤 서울하늘아래 잘 살고 있는
경상도 진영 출신의 그 사나이와
내가 엮어졌더라면
나는 또 어떤 인생의 길을 가고 있을까
때때로 생각남은
무슨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