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시내버스 안
출연자: 묘령의 40~50대여인, 청바지 사나이 1,2,3, 그외 탑승객 다수>

송도 부근서 한 여인이 버스에 오른다.
몇 없는 승객들로 차 안엔 빈 자리가 많이 눈에 띈다.
운전기사의 뒷쪽으로 다섯번째의 혼자 앉는 좌석에 착석한 여인.
움직이는 차의 시동소리를 들으며 외로 고개를 돌려 무심히 창밖을 내다본다.

다음 정거장 소개 멘트가 들리며.. 차가 정차를 하는 순간
차에 오르는 왁자지껄 남자들의 소리가 들린다.
얼핏 본 그 들은 어디서 이미 두어잔의 술을 걸친듯 몸 놀림이 무척 더디다.
그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청바지를 입었다.
여인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우우~~웁~!
이게 무슨 냄새인가?
하필 청바지의 무리들은 그녀를 포진하듯 자리를 앉았다.
그녀 뒤의 두자리 좌석에 두명, 바로 앞자리 혼자 좌석에 한명.
그들은 그녀를 사이에 두고 그날 생긴일에 대해 웃었다가 화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를 얘기들로 바쁘다.

이윽고 여인의 앞에 앉았던 남자, 흘깃 여인을 본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인의 뒷자리의 두 남자에게 가서 무언가 얘기를 한다.
여인은 술냄새와 온갖 해괴한 냄새에서 일단 살아나서 저 앞에 보이는 기사 아저씨를
백미러 속으로 흘낏 쳐다본뒤 다시 창밖에 시선을 고정.

앞에 앉아 있었던 청바지1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몸을 완전히 뒤로 돌려 거의 여인과 얼굴이 채 20cm도 안 떨어지게 얼굴을 다가와서,

"아가씨"
........

"아가씨"
........

"어디까지 가세요?"
.......

"누구 만나러 가시나요?"

여인, 이 경우 어찌해야 하나? 그의 집요한 물음에,
"주안이요."
"아, 이런 인연이.. 저도 주안까지 가는데, 우리 한번 잘해 봅시다."
뒤의 청바지 2,3 이 낄낄 거리며 웃는다.
'이 작자들이 지금 날 두고 내기를 하는거여 뭐여.'
"아가씨, 제가 술을 좀 덜 마셨걸랑요, 우리 주안에서 내려서 시원한 맥주 한잔 어떠세요?"

'아~,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일이 드문 요즘 이런 일이 몇년 만에 있는 일인가?
예전엔 '차 한잔 하실래요? 했던 그 말이 이젠 맥주한잔? 게다가
상큼치 못한 상태의 모습과 냄새라...에그..박복하기도 하지'

여인은 열심히 이 상황을 어찌 극복해야 할지 미간의 주름이 펴졌다 찌그러진다.
손에는 핸펀을 굳게 쥐고,
두어 정거장을 더 가면 대학교 정문인데, 조카녀석에게 S.O.S를 쳐서 정류장에 나와있으라 할까?
아니면 목적지까지 가서 만나기로 한 고모에게 차 문이 열리는대로 나를 부르라 할까?
단 몇초 사이에 그녀의 머리는 비상하게 돌아가는데.

청바지2 가 내린다. "내일 꼭 출근들해."

얼떨결에 대학의 정문이 지났다.
주안은 좀 더 가야한다.

"아가씨, 어떡하실래요?"
"제가 거하게 쏠께요. 오늘 오후 시간을 저에게 주세요."
와~, 미치겠다. 차 문 옆의 두어사람이 키득거린다. 창피하다.
왜 오늘따라 머리 곱게 드라이하고 향수 냄새를 풍겼을까?
눈은 다 똑같다고 역시 이 남자의 눈에도 그녀가 예외없이 고와보였겠지.
그거야 누굴 탓하랴. 내 탓이지.ㅎㅎ

이 경우.. 김수호선배는 어찌 대처했을까? 송미순선배는 어찌 말했을까?
쪈숙이는 또 뭐라 대꾸했을까?
1. 에잇! 민증을 까보여줘? 아니야... 나이 많은게 자랑은 아니지.
2. 그렇다면, '이게 어디 자유당때 써먹던 행위를.. 때가 어느땐데!!' ...
아니야, 아예 시도도 못 할 거면 생각도 말자. 나한텐 너무 무리야,너무 강해.
3. 아니면, 슬그머니 다른 자리로 옮겨 앉을까? 근데 다리를 뺄 곳이 없네.
그저 대꾸하지 말고 아예 상대를 말자.

"저.... 아가씨 아닌데요?" 헉? 뜬금없이 이게 웬 망발?  이미 터져나온 말 어쩌겠나.
잘났다, 잘났어. 아가씨란 말이 그리도 좋았나?
"아? 알고있습니다. 저도 아저씨인데요. 낼 모레면 쉰이 되는데, 아가씨는 그래봐야
마흔? 마흔 둘? 많아야 마흔 다섯?"

'깔깔깔~ 그래, 그렇게 보이겠지. 그래. 그러나..... 넌 아니다. 절대 내 상대 아니다.
1분만 얘기해 보면  넌 바로  out 깜이다'

주안 어디서 내리냐, 주안이 집이냐, 누구 만나러 가냐... 혼자서 계속 뒤를 돌아 앉아서
떠들어 대던 청바지1.
중간중간에 승객들이 올라타자 조금씩 주춤거린다.
한마디도 말 않고 창문만 바라보는 여인과 대화를 하려니 자존심이 상했나보다.
게다가 여인을 보느라고 뒤돌아 앉은 뒷쪽의 승객들이 처음보다 몇배나 더 많아지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꽂혀있었다.
"뭘봐요?"

이자가 뭘 믿고...
만약 이자가 엉뚱한 행동을 했는데도 저 사람들이 못본척 하면 어떡하나?
그래도 대학생 몇이 보이니 쟤들은 아마 날 구해줄꺼야. 그래 맞아. 학생들을 믿자.
휴~ 중간에 내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야, 귀찮게 차를 두번씩.... 에잇, 액땜했다 치자.'

이 남자 계속 중얼거리더니,
"남의 이목도 있고 그러니  내리실때 까지 돌아 앉겠습니다, 아셨죠?"
.
.
.
.
그가 앞으로 돌아 앉는 순간 차는 서고,
어? 하는 뒤에 앉아있던 청바지3의 한마디 소리만 귓등으로 들은채
날렵한 그녀 몇 사람이 내리는 틈을 타서 같이 잽싸게 묻어 내리는데 성공.
와하하하하.... 살았다.
며칠간 감기 몸살로 구석구석 안쑤시는데 없는 그녀, 절룩거리며 10여미터를 차의 반대 방향으로
냅다 튀어 달렸다.

어라?
근데 여기는 어디야?

그녀는 혹시 눈치를 채고 금방 내릴지도 모를 청바지를 따돌리기 위해
큰길을 벗어나 중간 동네 길로 들어서서 목적지 까지의 세 정거장을 끄덕끄덕 걸어가며 중얼거린다.
줸장, 난 왜 이리 어벙하지? 그냥 모질게 대꾸해 버리고 세게 나갔으면 이런 고생은 안할텐데.
왜 맨날 나는 이러지?

아아아~~~ 나도 술냄새 안나는 그럴듯한 로맨스꺼리가 안생기나.
시내버스여서 그런가?
그녀는 목적지까지 걸어가며 30여분의 이 해프닝을 이미 머릿속에서 글로 꾸며가고 있었다.

<제목: KTX에서의 첫만남>

플랫홈에 서서 강희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이번 부산에서 여고동창을 만나기로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녀의 오빠와 동행을 하게 된것이다.
어렸을적의 그녀 오빠는 우리들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었다.
훤칠한 키에 섬세한 느낌의 손가락으로 기타를 튕기며 우리에게 로망스를 들려주었던 대학생 오빠.
<다음은 생략, 집에가서 다시 생각해야지. 더 멋지게>

뒤에서 들리는 소리.
혹시 강희아니니?
뒤돌아선 강희의 시야에는 아직도 그렇게 커보이는 그녀 오빠가 서있었다.
그런데, 다시보니 한사람이 더 있었다.
낯이 익다. 누굴까? 누굴까?  
빙그레 웃고 있는 그,
이제 몰라보겠네? 강희지?
어머, 어머,, 맞아,맞아, 바로 그 사람이었어.. 어머나.
갑자기 머릿속으로 내 의복이 눈에 밟힌다.
여성스런 스커트와 좀더 굽이 높은 구두를 신을껄.. 청바지가 웬일이래...(앗! 예의 그 청바지>
그랬다. 그는 바로 그녀 오빠의 친구로서 우리에게 고3시절 입시공부를 가르쳤던,
꿈에도 잊지 못했던...<이름을 뭐로하지? 민수? 준? 건? 재수? 읔~! ㅋㅋ 창준? 에라 모르겠다.
집에가서 다시 생각하자. 그래, 멋진걸루다. 그나저나 KTX를 타본 적이 없으니.. 다음에 한번 타봐?>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