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은 둘쨋날 하루 정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을 엄선(?)해 보니 아무래도 키요미즈 데라 일대가 좋겠다.


호텔 안내에 버스 타는 곳을 물었더니 주변의 약도가 그려진 종이 한 장을 준다.

그런데 이 종이에 그려진 약도는 남쪽이 위로 가게 그려져 있어 보는 사람을 상당히 헷갈리게 만든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은 아주 한적한데 재활용품 수거를 위해 내어놓은 물건들을 어찌나 깔끔하고 정갈하게 정리해 놓았는지 입이 딱 벌어진다.

길가의 작은 가게들 중 하나가 묘지를 장식하는 석물가게 였는데 도라에몽이나 헬로키티 같은 캐릭터들까지도 묘지 앞에 세워놓는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도 있었다.


1일 관광 교통카드가 있으니 하루 돌아다니기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

버스고 전철이고 횟수 제한 없이 마음대로 탈 수 있다.

단정한 옷차림의 버스기사는 출발합니다,어느어느 정류장입니다,길이 휘니까 잘 잡으세요...지나치다 할 만치 세세한 안내를 해준다.

휠체어를 탄 승객에겐 타고 내리는 걸 도와주는 건 물론이고 불안해 할까봐서인지 휠체어의 앞바퀴를 고정해주는 서비스까지 일사천리,물 흐르듯 매끄러운 동작으로 보는 입장에선 일련의 퍼포먼스 같다.

방송으로 정류장 안내가 나오는 데도 불구하고 일일이 알려주는 건 과잉 서비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인데 어쨌든 만약의 사고를 미연에 막으려는 것으로 보여 참 인상적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정말 아날로그적인 풍경이 펼쳐지는데 수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간판이며 동네 분위기가 타임머신을 타고 5,60년 대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고즈넉하기까지 하다.

언덕을 오르다 보면 작은 가게들이 줄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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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요미즈 데라에 도달하니 붉은 색으로 날렵하게 높이 솟은 문 앞에서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있다.

요즘 유행하는 셀카봉을 들고 웃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기도 하며 아주 부산스럽다.

들리는 말은 거의 중국어.


젊은 백인 커플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여자 하나가 두 사람 사이를 휙 지나간다.

백인 여자가 하는 말, 저 여자 분명히 중국사람이야.

남자가 어떻게 알아?

하는 짓을 보면 알아...짜증이 묻어난다.

어쩌겠냐,문화가 다르고 여행의 이력이 다른 걸...

그런 일로 기분 잡치지 말고 많이 돌아다닌 것 같은 네가 이해해라.


수학여행 온 중학생들 한 떼가 우물 같은 곳을 둘러싸고 연신 까르륵 거린다.

남자애들이 무거운 봉을 들어 올리며 힘자랑을 하니 여자애들은 화답하듯 소리높여 웃는다.

낙엽만 굴러도 웃을 나이...

귀여운 것들.

좋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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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에선 무슨 행사가 있는 듯 하다.

일본 절에 가면 답답한 것 하나가 불상을 제대로 볼 수 없게 겹겹이 칸막이도 해놓고 아주 어둡게 해놓은 것이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감출 일인가 의아했다.

시주함에 돈을 넣은 남자 하나가 몸을 낮추고 본당 안을 우러른다.

같은 높이에서 보니 비로소 불상의 얼굴이 보인다.

키요미즈 데라에 세번째 와서야 일본 절의 수수께끼 하나를 풀었다.

몸을 낮추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 우러러 보아야만 비로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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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으로 만들어 놓은 길로 가다보면 왼편 언덕에 엔무스비 진쟈가 있다.

절 안에 신사...

아무튼 묘한 구조,이해하기 어려운 사고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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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스노토 쪽으로 가 주홍색으로 칠해진 탑을 둘러보고 돌아나오다 세이한지 5분 거리라는 표지판에 호기심 발동.

걸어가다 보니 좁은 길가에 오래된 집들이 몇 채 있고 작은 절도 하나.

큰 절 경내 같지만 엄연히 사유지다.


세이한지 입구에는 6대 천황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문이 잠겨있는데 생각보다 조촐하다.

세이한지는 절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수행처 같은데 여기도 옛 이야기가 남아있다. 

좁은 마당이지만 그곳에서 보이는 경치는 객들을 한참 머물게 한다.

조용히 둘러보고 나오다 문 기둥에 달려있는 헌금통에 동전을 넣었다.

가고오는 길에 표지판이 눈에 띄어 들여다보니 이 일대가 교토 둘레길의 일부구간이다. 

흥미는 있으나 걸어볼 만큼의 시간은 없으니 아쉬운 발길을 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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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와노 타키.

폭포 아래에는 길게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버글버글하다.

치유의 효과가 있는 물로 알려져 있지만 몰려든 관광객들에게야 재미쪽의 의미가 더 클 것이다.

바위 틈에는 사람들이 물을 받아 마신 뒤,길다란 손잡이가 달린 알루미늄 국자를 넣어 살균소독하는

장비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면 그렇지..사람들 뒤를 따라 올라가며 잠깐 떠올랐던 찝찝함이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차고 잡맛 없는 물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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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을 거슬러 올라 엔무스비 진쟈에 가보았다.

이곳의 신들은 좋은 인연 맺어주기 담당이다.

크고작은 당 앞에 각자 기원을 올리도록 해놓았다.

 

TV 여행프로그램에 많이 등장했던 돌덩이 두 개는 바로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돌 사이의 간격은 10 미터 정도나 될까...

눈을 감고 한쪽 돌에서 출발,반대쪽 돌에 닿으면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단다.

솔깃한 스토리텔링이 수많은 젊은이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다.


니넨자카로 내려오다 커피와 케잌으로 요기를 하고 어묵맛도 보았다.

이것도 저것도 다 교토의 명물이라니 남들이 하는대로 해보는 것도 재미다.

먹을 것, 볼 것이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지며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주머니를 열게 만든다.

오래 묵은 것을 잘 보존해놓은 것만으로도 관광객이 몰린다.


키모노를 입고 머리장식도 화려하게 한 젊은 여자들이 둘씩 셋씩 몰려 다닌다.

대개는 중국 관광객들의 키모노 체험이다.

제법 정성들여 머리부터 장신구까지 제대로 갖췄다.

두고두고 되새길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옷차림이 간편해 보이는 젊은이들이 인력거 앞에서 사람들을 부른다.

검게 탄 근육에 건강미가 넘친다.

전에도 느꼈지만 참 열심이다.

뭐든 잇쇼켄메이...


고다이지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부인 네네의 사연이 있다.

입장료를 내며 바로 옆에 보이는 거대한 관음보살상도 포함되어 있냐고 물었더니 표를 내주던 중년의 여자가

상당히 단호한 표정으로 아니다,저 곳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라고 대답한다.

이상도 하네.뭐 그렇게까지...


고다이지는 정원이 유명한 곳이다.

단풍철에 오면 정말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리큐와의 사연이 얽힌 다실 두 채를 거쳐 길을 따라 내려오다 계단에 잠깐 멈추면 우거진 대나무

사이로 옆집의 커다란 관음상이 보인다.

고다이지의 명성에 기대 거대한 불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곳인가.

그래서 안내인의 표정이 굳었었나...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굳이 표까지 사서 들어갈 일은 없으니 나무 사이로 흘낏 보는 걸로 족하고도 남는다.k220141005_12154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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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카 진쟈는 본당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신사마다 소원을 성취해주는 종목이 다르다.

기원대행 수퍼마켓이라고나 할까.

원하는 곳을 골라 그 앞에서 소원을 빌면 된다.


운 좋게도 일본 전통 혼례복을 입은 신랑신부를 볼 수 있었다.

신랑 신부 사진을 촬영하느라 사진사와 가족들이 모여있었는데 신부만 흰옷이고 참석자들은 검은색으로 통일이다.

사람들의 시선에 긴장한 탓인지 신랑신부는 설레인다기 보다 경직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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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거쳐 지온인(지은원)으로 갔다. 

일본 정토종의 본산이라는데 여긴 무엇이든 다 크다.

건물도 크고 절 뒷쪽 숲속에 있는 범종도 무지막지하게 크고 두껍다.

72톤 무게의 종을 달아맨 기술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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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유가 조금 있어 은각사를 다녀오기로 했다.

지온인 밖으로 나오니 도무지 방향을 모르겠다.

택시들이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길래 조금은 충동적으로 택시를 탔다.

"긴카쿠지"로 가자고 말은 했지만 확인은 해야겠다.

역시나 택시기사는 "킨가쿠지"로 들었다.

골드 아닌 실버가 맞냐고 되묻는다.

지도로 보았을 때는 그리 멀지 않아 보였는데 꽤 멀다.

요즘 말로 촉이 맞았다.택시를 타길 잘 한 거였다.


은각사에 들어가자마자 들린 한국말은 어!여긴 은색이 아니네? 였다.

금각사가 금칠한 건물로 유명하니 이곳은 당연히 은색일 것이라 생각하고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건물이 호수로 둘러쌓여 있다.

물에 비친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사람들로 붐비는 와중에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오래 된 나무들과 이끼 덮힌 숲길이 좋다.

자연히 발걸음이 느려진다.

길을 따라 정원을 둘러보고 언덕 위에서 교토의 전경을 내려다 본다.

교토의 사계절 풍경이 어떨지 잠시 머릿속으로나마 그려본다.


교토역까지는 버스로 왔다.

한 곳에 밀집된 곳을 다니느라고 차 탈 일이 적어 결국 1200엔을 주고 산 1일 승차권은 충분히 활용을 못해 좀 아깝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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