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교토여행을 가려고 준비를 하다보니 연휴의 성수기라 10월 4일에나 자리가 있다고 한다.

남편은 출장으로 여러 번 다녀온 곳이고 나도 어쩌다 보니 오사카 쪽으로만 세번째였다.

이번에는 교토만 다녀오면 되는데 복잡하게 할 일은 아니라 여행사 에어텔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로

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자료를 받아 나름의 계획을 더해 대강의 일정을 구상해놓았다.


4일날 아침 공항철도를 이용해 공항으로 나갔다.

국제선은 보통 2시간 전까지만 도착하면 되니 여유있게 간 셈인데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 건 처음 보았다.

아시안 게임 폐막일인데다 연휴가 겹치고 중국의 요우커들도 몰려오는 시기라는 걸 전혀 생각 못 했는데 부칠 짐이 없는데도 게이트 앞까지 가는데 거의 2시간이 걸렸다.

큰 행사 끝머리라 보안검색을 강화했다고는 하나 출국장 들어가는 것 부터도 줄이 어찌나 길던지 비행기를 놓칠까 걱정을 해야 할 정도였다.

내 앞에 선 백인 여자애가 안절부절 못하고 시계를 자꾸 들여다 보길래 몇 시 비행기냐,어딜 가냐 물었더니 캐나다를 가야 한단다.

시간을 보니 거기서 꾸물대다가는 비행기를 못 탈 것 같길래 줄 건너뛰고 앞으로 가서 사정을 애기해 봐라 하고 보냈다.

바로 앞에 서있던 미국여권 가진 한국인 노부부가 인상을 쓰길래 저 아가씨 비행기 놓칠 것 같아서 들어가라고 했다 하니 별로 편한 인상은 아닌 채로 더 이상은 아무 말 안 한다.

저만한 손녀가 있고도 남을 연세들인데 하도 붐비니 짜증이 날 만도 했다.

게이트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도 승객을 부르는 방송이 다급하다.


예정된 시간에 간사이공항에 도착했다.

안내 데스크로 가서 짧은 일본어로 교토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려는데..하니까 저 문으로 나가면 승차권 판매기가 있다고 알려준다.

발매기를 들여다 보며 연구한 결과 왕복으로 사면 우리돈 25000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고 오는 날도 아무때나 나 편한 시간에 타면 된다는 걸 알아냈다.

표를 사고 버스를 타는데 이 사람들 일하는 게 정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버스 앞쪽에 설명이 한국말로도 나오는데 주의사항이 어찌나 세세한지 나중엔 참 별걱정도 다 하시네..싶을 정도였다.

창밖을 내다보며 가다보니 안내방송대로 86~88분 만에 교토역 앞에서 내려준다.

내리면서 버스기사에게 나중에 같은 자리에서 타면 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만사 미리 확인해두어야 나중에 당황하지 않게 된다.


지도를 보고 호텔까지 걸어갔다.

호텔은 교토역 남쪽에 위치해 있다.

방은 정말 작다.

욕실도 무척 작다.

지금까지 묵어본 호텔 중 가장 작은 방이다.

호텔 방에서 카톡이 되어 사진을 올렸더니 홍콩에 있는 조카녀석이 자기가 묵었던 방에 비하면

그 방 꽤 큰 편이라며 일본에 몇 번 다녀갔다고 아는 척을 해온다.

교토라니 부럽다고도 한다.

그래도 창 밖으로 도우지의 오층탑이 보이는 게 교토에 와있다는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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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역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장어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2층의 종합안내소로 갔다.

차표도 머리를 써서 사야 한다.

이미 오후 시간이기 때문에 2일권을 사는 건 좀 아까운 시점이다.

저녁 때 가려고 하는 곳은 지하철로 가면 되니까 600엔 짜리 지하철 1일권을 사고

다음날 버스와 지하철을 다 탈 수 있는 차표 1200엔 짜리 1일권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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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로 가라스마 오이케 역까지 갔다.

친구가 부탁한 게 있어 약국에 들러 물어보니 있다고 한다.

부탁 받은 건 얼른얼른 사두어야 신경이 덜 쓰인다.


산조 쇼텐가라고 물었으면 고생을 덜 했을텐데 무심히 산조도오리라고 했더니 영 방향을 잘못 잡게 되어 한참을 헤맸다.

가려고 하는 곳이 450년 된 바늘 만드는 집인데 물어물어 가다가 천으로 된 가방 등속을 파는 가게가 보이길래 들어가 물었더니 

자세히 가르쳐준다.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일본어를 배워둔 게 그렇게 흐믓할 수가 없다.


양쪽으로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를 걷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을 쳐다보며 휴대폰을 들이대고 있다.

시선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석양이 아름답게 드리우고 있었다.


어두워지는 거리는 휘황한 불빛 때문에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는 느낌이었다.

두리번거리며 살피다 고개를 딱 들었는데 미스야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가방가게에서 들었던 대로 좁은 골목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좁은 마당 안쪽의 집에서 가게의 역사가 느껴진다.

토요일이라 일찍 문을 닫았으면 어쩌나 했더니 다행히 불이 켜있고 미닫이 문을 여는 소리에 중년의 남자가 안쪽에서 나온다.

가게는 정말 작아서 두사람이 들어가니 꽉 차는 느낌이 들 정도다.

책에서 보고 이곳에 꼭 와보고 싶었다고 하니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취미삼아 하는 바느질이지만 바늘에는 꽤나 까다로운 편이라 정말 좋은 바늘을 사고 싶었다.

원하는 길이의 바늘을 굵기별로 세 종류를 샀다.

한쌈지에 25개씩이나 들었으니 앞으로 바늘 살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집의 명물인 손으로 만든 바늘(데즈꾸리)은 일본 자수 놓을 때 쓰는 거라 하고 길이도 내겐 너무 짧아서 보기만 했다.

바늘귀쪽을 납작한 모양으로 만들어 실을 꿰면 바늘 몸통의 굵기와 같아진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다.

황실에 납품하는 바늘을 만들며 행여 부정이라도 탈까봐 발을 치고 바늘을 만들었다 해서 미스야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한 가지 일에 정진하는 기질과 후손들이 대를 물려가며 같은 일을 하여 전통을 만들어 가는 것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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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로 나와 다니다 보니 듣던대로 화려한 색과 무늬의 기모노를 차려입은 젊은 여자들이 여럿 눈에 띄어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주말이라 마음 먹고 차려입은 듯 하다.

기모노에는 조리를 신고 천으로 된 주머니 형태의 가방을 들었다.

헤어스타일까지 맞춰 틀어올리고 예쁘게 치장을 했다.

젊은이들이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다니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고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토요일 명동에 젊은 여자가 한복을 차려입고 나오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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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엔 여자아이들에게 5월 5일엔 남자아이들에게 인형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는데 시조상점가의

앤틱 인형가게에는 비싼 것은 우리돈으로 몇 백만원이나 하는 인형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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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전철로 교토역 쪽으로 돌아와 교토타워에 올라갔다.

야경이 볼 만 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올라갔는데 역의 북쪽 번화한 곳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바깥 세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나가는 도시의 모습이라 느껴졌다.


교토까지 가서 바늘이나 몇 개 샀다고 하면 웃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에 집중해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만 만들어 온 사람들의 정신이 더 궁금했던 것이고 자신의 일을 대하는

,자존감과 고객을 대하는 공손함이 함께 느껴져 돌아오는 발길이 가볍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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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겹살,괜히 반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