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아직도 씨를 뿌리기 전인데 우리집 농사는 몇 주 전부터 시작되었다.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고 부터 빠른 회복을 보이던 아버지는
병원에서 나가면 가장 해 보고 싶었던 일, 즉 농사 일을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심는 것은 장마철에 따 먹는 외콩이다.
그 밭은 한강 가까이 있는 부드러운 개흙밭이라 삽으로 일구어 씨를 뿌렸다.
삽으로 땅을 파는 일은 얼마나 힘이드는지 그 주는 집으로 돌아와 내내 몸살을 앓았다.

그 다음 주는 밭에 나가 마른 고추대를 뽑아 불태우고 밭을 말끔히 정리했다.
고추대를 뽑고 비닐을 걷는 일은 쉬워 보이지만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하는 단순하고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다.
그 밭은 지난 해 까지 몇날 며칠을 삽으로 땅을 파 일구었는데
올 해는 기계가 있는 이웃의 도움으로  담배 한 까치 피우는 사이에
기계가 삽시간에 너른 밭을 갈아 놓았다.

제일 먼저 심은 것은 상추와 쑥갓과 시금치와 완두콩이었다.
남들은 씨 뿌리기 전이라 너무 이르다며
엄마가 씨가 얼어 죽을 것을 우려하자 아버지는 그 위에 비닐을 덮었다.
일 주일 후 감자를 심는 날 가서 보니 땅 속에서 떡잎 두 장을 벌리고
그것들은 호기심 가득한 아기처럼 세상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작년에 한 바가지를 심어 다섯 박스를 캔 감자는
요령도 생기고 자신도 있어 한박스의 감자씨를 준비했다.
아버지와 동생과 내가 밭을 고르고 거름을 하는 동안 엄마는 나무 밑에서 씨감자를 쪼갰다.
감자는 세고랑을 심고 역시 비닐을 덮어 주었다.

어제는 가문 상추밭과 외콩 밭에 샘에서 물을 퍼 날라다 뿌렸다.
외콩들이 손가락만하게 올라오고 상추들이 와글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아버지의 농사짓는 일은 필사적이다.
그것은 곧 아버지 생의 의미다.
한 번 농사를 짓고 오면 며칠을 온 몸을 못 쓰고 힘들지만
그것이 포기했던 아버지 생의 의미를 되찾는 일이라 생각하면
그 어떤 일 보다 소중하다.
한참 기운을 쓰는 남동생조차 아버지 따라 밭에서 세시간 일을 했더니
다음 주는 온 몸이 쑤셔 죽을 뻔 했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그 일을 매일처럼 하고 있다.
그렇게 병원에서조차 포기하려고 했던 아버지의 몸은
만물의 생동하는 봄의 들판처럼 정상으로 점점 회복되고 있다.
이것은 기적이기도 하고 또 인간 승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