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른다.  
이제 일곱촛대에 촛불점화를 위해 입장해야한다.
선민이 엄마와 눈길을 마주치고 걸어나간다. 큰 아들이 옆에서 잡아주니 든든하다.
우리 목사님과 교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친구들의 모습이 보인다. 오신옥 언니도…

고맙다.  나는 잘 하지도 못했는데 옛우정을 잊지않고 이렇게 찾아와 축하해 주다니… 정말 고맙다. 친구야.  
친구들이 한복입은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겠지?  한복입은 내가 우아해 보일거야.
갖가지 빨갛고 하얀꽃으로 장식한  웨딩아치가  신랑신부를 기다리며 예쁘게 서있다.  

첫째 촛불을 붙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 이시간 이곳까지 사랑으로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둘째 촛불을 붙인다.  오늘 결혼하는 선민이와  태문이로, 하나님 큰 영광 받으소서.  
복을 베푸사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하시고 이 애들로 인해 세상 모두 행복하게 하소서.

찬송에 맞춰 목사님과 태문이, 잘 생긴 남자 들러리 네명이 씩씩하게 들어온다.  넙적한 얼굴에 흡족한 웃음을 함빡 띄우고 태문이가  꽃으로 장식한 아치 옆에 서있다.   잘 생긴 내 아들 드디어 해냈구나. 복도 많은 놈…
예쁘게 드레스 입은 여자들러리 넷이 들어오고 이어 깜찍하게  차려입은 Flower girl 과 Ring boy 가 들어온다.  
목사님네  어린 손자  Ring boy 는 들어와  들러리가 주는 사탕을 받아쥔다.  

피아노를 치며 부르는 찬송소리가  조용히 들려온다.   신부입장이다.    
“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 하시니…”  느리게  아주 느리게 부르는 노래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머리에 화관을 쓰고 어깨를 드러낸 하얀 드레스 입은 선민이가 예쁘다.
태문이도 지금 처음으로 오늘을 위해 숨겨놓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아버님과 입장하는 선민이의 모습을 보고 있겠지.   신부가  가지런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살짝 웃는다.  검게 그을린  신부 아버님의 얼굴은 엄숙하게 굳어있다.  
예행연습 때 누군가가, 우실 것 같다고 얘기하니 벌써 많이 울어 괜찮다고 하셨지.  
영혼 깊숙이에서 흘러 나오는, 느리게 부르는 찬송이 감동을 준다.  
왜 이렇게 슬프게 들릴까?

“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신부의 눈동자가 반짝 빛난다.  눈물이 나나보다. 신부 아버님은 예쁘게 예쁘게 딸하나 고이 키우시다  떠나보내니 얼마나  섭섭 하실까?   어젯밤엔 한잠도 못 주무셨다했지.  

함빡웃으며 서있던 태문이가 계단을 내려온다. 얼굴이 굳어진다.  울먹울먹거린다.   신부는 아직 저 멀리 있는데  태문이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 선민이를 깊이 사랑했나보다.   예쁘게 드레스 입고 입장하는, 사랑하는 선민이와의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사랑하는 선민이와 혹시라도 잘못될까 애태우기도 하며 곱게 곱게 사랑을 키웠겠지.
혼자 LA 로 내려와 공부하고 일하느라 힘들었겠지.  욕심많은 애가 용돈 없이 연애하느라 얼마나  답답했을까.  언젠가는 속상하고 힘들어 사귀는 것  그만둘까 생각도 했었겠지.  

어제 리허설 때, 딸 손잡고 입장한 아버님께 신랑이 머리숙여 인사하니 누군가가 그랬지.  
“제대로 크게 절하지 않으면 신부 도로 데리고 나가세요.”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며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입장하는 선민이를 보고 얼마나 감동했을까?  얼마나 감사했을까.   야곱이, 곱고 아리따운 라헬을 맞을 때도 그렇게 울었을까?  신부 아버님께 구십도로 머리숙여 절하는 태문이의 얼굴에 눈물이 줄줄흐른다.  
뜨거운 두 줄기 눈물이… ‘짜아식, 울긴…  이렇게 좋은 날에…’  

옆의  남편이 두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닦는다.  뒤에서 큰아들이 아버지께 냅킨을 건네준다.  목이 메인 내 눈에서도 결국 눈물이 쏟아지고…  
정말 감사합니다.  ‘조그만 더 조그만 더’ 하며 뒤로 미루고 미루며 잘 해 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잘 커서 결혼하는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신부 손을 붙잡고 계단을 올라가는 건장한 뒷모습이 듬직하다.  
“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기쁜 찬송 소리가 오늘은 왜 이렇게 눈물나게 만들까.  

한 가정을 위해 이곳 멀리까지 내려오셔서 함께 하시고 축하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우리 목사님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태문이의 눈물을 보셨나보다.   한없이 축복해 주시는  목사님께 감사하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사귀면서 즐겁기도하고 속상하게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내가 좋아하고 아끼던 그 무엇보다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겠노라고 신랑이, 신부가 다짐한다.  그렇다고 부모님 보다도 더 사랑하겠다고 내 앞에서 말하다니… 고얀놈… 그래 그래 용서하마.
목사님이 말씀하신다.
“이제, 세상에서 제일 멋진 신랑이 앞에 서 있고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신부가 앞에 서 있는데 둘이는 어떻게 할거야? ”  머뭇거리던 신랑 신부가 다가오고 둘이 키스를 나눈다.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이제 한몸을 이룬 신랑 신부가  부모님께 인사하러 계단을 내려온다.  

신부 부모님께 꽃다발을 드리고 인사하고 허그하고…  눈물을 흘리며 선민이와  태문이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꽃다발을 건네고 눈물을 흘리며 나와 허깅하는 선민이가 마냥 예쁘다.   막내아들은 큰 비디오 카메라를 메고 이장면을 찍고있다.  두고두고 보며 이 순간을 기억하려고...  
아버지와 허깅하는 태문이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쏟는다.   부자가 한데 엉겨 오래도록 꼭 껴안고 울고있다.  
“태문아, 우리 그만 울자.”  에구, 아버지가 한다는 말이…
선민이와  남편이 허깅하고 있다.  “선민아, 참 예쁘구다. 행복해라.”  
울며 태문이와 내가 허깅한다. “태문아, 울지마.” 이렇게 큰 놈이 울긴…  

정말 감사하다.  우리를 이렇게까지 도우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이렇게 잘 커준 태문이도, 선민이도, 곱게 키워주신 선민이 부모님께도 감사하다.  

하객들에게 인사하는 태문이의 얼굴엔 어느새 웃음이 함박만하게 피어났다.  
박수소리기 예배당 안에 터지도록 가득하다.
그래 마음껏 웃자. 오늘같이 즐겁고 기쁜날, 감사하며 마음껏 웃자.  




                                                                                6월 12일 200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김 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