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 나는 공부도 시원찮았고,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뒤늦은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도 내 머리는 신통칠 않다는  것을 매번 깨닫는 상황이 많았다.

그러면서 남들처럼 나이를 먹고 첫 손자도 얻었다.

아이를 한명 낳을 때마다 뇌세포가 1억개가 소멸된다고 주어들은 소리가 있는데

3명의 아이를 낳았으니 나의 뇌는 기하급수적으로 뇌세포가 소멸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스스로 내렸다.

이유는 최근들어 집중력과 기억력이 급속히  떨어졌고

의학적으로 혈관성치매가 아주 조금  시작되었다고 건강검진결과서에 나타난

색깔있는 막대그래프를 보자

급기야 나는 이제부터 소설이나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이 될 확률이 아주 높다는 허망함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강명희와의 통화에서
가까운 친구들이 축하모임을 갖게 되었다고 함께 하자는  말을 전해듣고

백운호수 근방의 모임터로 찾아가 실로 몇년만의 해후를 했는지 모르겠다.

가기 전에 책이 도착하면 모두 읽고 가야 예의라 생각했지만 책이 도착하지 않아 그냥 갔던 것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후에도 책이 이제나 오나 저제나 오나 기다렸으나

손바닥보다 더 작은 땅덩어리 나라에서 미국으로 보내는 시간보다 더 걸려 1주일만에 도착하였다.

 

책을 빨리 받아  뛰어나게 비평? 평론? (잘 모르겠다) 을 쓴 유지인의 글을 보며

내 머리에선 저런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것이고 문장구성도 안 될 것을 어찌 이 친구는

머리가 이리도 뛰어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눅드는 방법도 가지가지이다.

 

내 돈 주고 책을 사는 것은 주로 컴퓨터 서적이었었다.

시중에 뜨는 작품은 서점에서 의자에 걸터 앉아 속독으로 읽어내려간 기억들은 있지만

소설이나 시집은 돈을 주고 산 기억이 별로 없다.

 

온라인 시대의 부산물로 모니터를 통한 글 읽기가 바람직하지 못한 습관이 되어

책 뚜껑 열기도 성스러웠다.

친구의 작품집이라 더욱 경건히 표지를 열고 목록을 보곤

첫번째 단편 " 노을"을 읽기 시작했다.

한글자 한글자 음미하며 읽고자 했다.

친구가 창작을  위해 뱉어낸 고통들을 대리경험하고 싶었다.

 

헌데 눈이 아물거려 도저히 진도가 안나갔다.

거실에 비스듬히 소파에 앉아 있으니 TV에서 나는 소리가 뇌세포의 반은 집어삼키고

한줄 끝머리에서 다음 줄 앞 머리로 시선이 가야하나

같은 줄 읽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몇년 전 석사논문을 쓸때도 이러한 현상 때문에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난다.

소설도 아니고 딱딱한 내용을 쓰자니 그건 진정 고통이었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혈관성치매가 시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노을"에서는 제주도 방언이 많이 나왔고

그것을 인지하고 읽기엔 아~ ! 나 어떻게해 하는 자괴감이 엄습했다.

유지인은 3시간 만에 책 한권을 모두 읽었다고 했는데

1쪽에서 그만 책 읽기를 일단 포기하였다.

그리곤

하루에 하나 또는 두편만 읽기로 생각했다

여러편을 읽으면 내용이 뒤엉켜 나중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것같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나는 맨 끝작품 " 솔밭사이로"를 펼쳐들었다.

TV도 껐고 식구들도 모두 나갔고 아주 쾌적한 상태에서 독서를 시작하였다.
요란한 독서환경조성을 한 셈이다.

첫줄 둘째줄을 읽어가면서 노을보다는 읽기가 수월했다.

단어 하나하나도 읽고 지나가기 아까워

한줄 읽을 때 작은 직사각형 책받침을 대고 그 줄을 마치 고3 때 공부하듯

국어시간에 문법공부하며 앞뒤관계 분석하며 읽듯

그야말로 소설읽기 기행이 시작되었다.

 

읽기는 읽는데 집중력이 떨어져 읽어내려가는 도중 앞 부분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앞문장과 뒷문장은 연결이 안되어

읽다가 앞으로 다시 가서 읽고난 후 원위치로 오기를 반복했다.

다음 쪽으로 넘어가서야 몰입이 되어 머리 회전이 되는지 쑥쑥 읽어내려가는데 문제가 없었다.

남자주인공의 사이코패스, 엽기적 행위는 탐정소설처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제대로 소설읽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손가락 인육에 대한 내용을 마지막 문장으로 보고선

사이코패스를 주제로 한
제목은 기억 안나지만 미국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자기 집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살해 후 뒷마당 연통에 집어넣고 불태우던 장면에

영화이지만 나는 무척 충격을 받아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명희의 소설 솔밭사이로에서 파스타집은 운영하던 남자주인공이

요리의 재료로 인육을 사용했다는 사실에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부유한 환경에 자란 남주인공이 파멸되어가는 과정과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스토리에서

역시 소설가는 만들어지는게 아니고 탁월한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구나 싶었다.

 

하루에 한편씩 읽기로 했기에

" 마지막 인사" " 어느 일몰" " 그해 겨울 내리던 눈" " 묵티가 온다"

그리고 " 히말아야 바위치" 까지 읽었고 아직도 읽는 중이다.

 

각 소설마다 배경이 별나라 달나라처럼 나와 동떨어진 곳이 아니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고 장소였고 인물이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어렵게 성장하여  교대를 들어간 양정이를 비롯, 교대, 선생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다.

인천중학교, 배다리, 월미도, 경동사거리,초지대교,
이런 단어를 보면 나도 소설 속의 한 인물이 되어 위의 장소를 오가고 있는 것으로 착각이 들었다.

문장마다 내가 알고 있는 강명희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소설로 녹아있었다.


어느 유명 등단작가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어  가까이 하다보면
우리가 너무 미화를 하여 보아서인지 소설밖에서의 작가는 영~ 아니올시다 실망하는 경우들 많지만
강명희는 느끼는 그대로 소박하고 순박? 하고 거짓이 없기에

그런 그녀와 공통분모를 내가 함께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은근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누구나 알고 있고 이해가 가능한 내용이지만

소설가란 직업은 바로 누구나 알고만 있는 내용을 문자로 엮어내는 재능이 있다는 것이

우리네와 다른 점일 것이다.

영화감독은 그러한 것을 영화로 만들었기에 우리네와 다른 것이고.

 

오늘도 나는 밑줄 긋기를 해가며 강화에서만 재배되는  " 순무" 를 읽는  중이며

앞으로도 소설읽기는 당분간 계속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