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재작년이었나. 도보여행가 황안나님이 해안일주를 하실 때 하루 쯤 함께 걷고싶어

통영으로 갔다.

인천에서 통영으로 가는 버스가 드물기 때문에 궁리를 해보니 우선 진주로 가야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진주라 천리길, 약 다섯시간이 걸렸다.

기왕에 진주까지 갔으니 택시를 타고 가서 유명한 진주냉면 한 그릇을 먹고 다시 터미널로 가서는

통영행 버스를 타고 사십 여 분을 더 가야했다.


거북선 세척이 떠있는 바닷가로 가서 기다리니 저 멀리서 등산복 차림의 황안나님이 오시는데

이산가족인들 그만큼 반가울까...

70세가 넘으신 분이 동해안 고성에서 출발해 리아스식 해안길을 샅샅이 걸어서 통영까지 오셨으니

감동과 존경심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어딜 가던 숙소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게 그 동안의 경험이라...

조금 과장하면 코딱지만한 방을 아주 호된 값에 얻어서 들었는데 관광지에서는 접어주고 들어가야 하는 

점이긴 하지만 씁쓸한 기분을 어쩌지는 못 했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 충무김밥을 사서 바닷가에 앉아서 먹고 동피랑 마을을 둘러보았는데 내겐 서울 낙산의

이화마을에서 느꼈던,뭔지 모를 서글픈 느낌보다는 내리비치는 햇빛을 가장 먼저 받는 곳이구나--하는

기분 좋은 느낌이 더 컸다.

전에 주윗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달려갔다가 남의 남루를 재미삼아 들여다 보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하고

뒷맛이 썼던 이화마을에서의 느낌마저도 싹 사라지게 만들어주었다.


마을 꼭대기의 작은 수퍼에는 갓 귀향했다는 젊은 부부가 어린 아이들과 살고 있었는데 서너 살 먹은 딸이

가게 앞 시멘트 바닥에 그려놓은 고양이를 페인트로 덧칠해놓은 것에서 아빠의 마음이 엿보였다.

남편이 혼자 단장을 했다는 옥상에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니 속이 다 시원해졌다. 

특히 여기저기 솟아있는 목욕탕 굴뚝들이 옛날에 대한 그리움까지 불러일으키는 따뜻한 광경이었다.

 

요즘은 어딜 가나 담벼락에 그림들을 그려대다보니 지난 봄 매화를 보러 산청에 가서는 남명선생 기념관 담장마저

그림으로 도배질이 되어 있는 걸 보고 기가 찼는데 그나마 동피랑의 벽화에는 억지스러움이 적어 좋았다.

펼쳐진 날개 그림도 널찍한 공터를 앞에 둔 축대에 그려져 있어 젊은이들의 애교어린 포즈가 웃음을 자아내던 거였다.


세병관은 수군통제사의 호령이 들릴 듯한 아주 남성적인 건축이란 인상이었는데 반질반질 윤이 나는 마루에 앉아

땀을 식히며 내려다 보는 통영 앞바다의 경치는 가슴까지 툭 트이게 해주는 시원함이 있어 좋았다.


윤이상 기념관에서는 그 시대 사람들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생활을 영위했을 지식인의,한편으로는 부러운 삶과

그렇기 때문에 컸을 고뇌가 함께 엿보였다.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보고 싶은데 지리를 모르는 곳이니 택시를 탔다.

기사가 지금 가서는 사람들이 많아 차례가 안 올 거란다.

바로 차를 돌려 박경리 문학관까지 거금을 들여 갔는데 아뿔싸,월요일 휴관이었다!

미련이 남아 기념관을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택시를 불러 타고 나왔다.


황안나님이나 나나 걷는 건  겁내지 않는 터라 해저터널이며 산양도로를 몇 시간 걷고 다시 거북선 있는 곳으로 와

하루 더 계실 예정인 안나님과 헤어져 그 유명한 꿀빵을 사들고 진주로 되돌아왔다.


어느 곳을 가던 그날의 날씨는 두고두고 그곳에 대한 기억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날씨가 좋아서였는지는 몰라도 통영은 내게 참 따뜻하고 밝은 느낌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평소 "세상은 넓고 갈 곳은 쌨다"--라 여기고 있는데 이번에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니

또 다른 기대감이 생긴다.


혼자서는 남의 나라에 가서 수십일을 떠돌기도 하는 체질이니 단체로 움직이는 것은 낯선 경험이 될 것이다.

어쩌다 보니 여행을 준비하는 입장이 되어 흔한 말로 대략난감이었는데

28인승 버스의 성원이 안 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로 시작한 일이 친구들의 놀라운 호응에 힘입어 이젠

버스 두 대가 필요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놀랍기도 하고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차질없이 잘 돼야할텐데 하는 걱정도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뭘 하자고 들면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게 우리 친구들의 잠재력이라 뭐 크게 걱정은 안 하기로 했다.

60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움직여야 하니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가능한 한 계획대로 이루어져

졸업 40주년 기념여행이 모두에게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 되기를 바래본다.


그나저나 우리 친구들 참 "대다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