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푸르른 시절

 

1 5기 안 정 분

 

새벽 공기 가르며 오르는 등굣길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나를 반기던 신사임당

푸릇한 잔디와 다정히 마주한 분수대

반짝이는 마루 복도를 지나

묵직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반가운 얼굴들이 별처럼 빛나고

나의 일상이 시작된다.

 

두꺼운 책과 씨름하며

알듯 말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반가운 종소리에 교실은 일제히 축제가 된다.

잽싸게 매점으로 화장실로 날아가거나

밀린 수다로 입이 바쁘다.

 

무더운 날, 자장가로 시작되는 오수 시간

달콤한 꿈나라로 소풍갔다가

힘찬 행진곡에 맞춰 일제이 청소 시작

다함께 발맞추어 왁스칠 하다보면

마루 위로 반짝반짝 별이 뜬다.

 

힘겨운 시험 끝내고 먹던 쫄면은 어찌 그리 매운지

우리 앞에 펼쳐질 인생도 이리 매우려나

하굣길 헛헛한 배를 유혹하는 냄비 속 굵은 면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먹었던 노을빵

함께 했던 그리운 벗들

지금도 그 맛이 그립다.

 

때로는 충민한 자신감으로 세상에 주인공이 되었다가

밀려오는 무력감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천당과 지옥 사이를 벗과 함께 울다 웃다

이렇게 우리의 10대도 막을 내렸다.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살아낸 세월

주름진 얼굴에 더 깊어진 마음들

인생고락의 크기와 깊이를 비교할 수 있을까마는

굽이굽이 뒤안길을 헤쳐 오면서

웬만한 일에 끄떡하지 않는 도인이 되었건만

한없이 어리숙하고 천진했던 그 푸르렀던 시절을 회상하면

늘 설레고 안타깝고 그립다.

가을날 낙엽을 마주치면 마치 지나간 청춘을 본 듯

코끝이 찡하다.

 

아름다워서 더 슬프고

순수해서 더 애틋하고

짧아서 더 안타깝다.

 

한번뿐인 청춘이여!

부지불식간 의미도 모르고 놓쳐버린 세월이여!

 

그러나, 시간의 긴 터널을 함께 지나온 벗들이 있어

그들이 그때의 나를 기억하고

내가 그때의 그들을 기억하고

추억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한 오늘,

나의 내일을 꿈꾼다.

나의 세 번째, 네 번째 스무 살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