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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었다.
내가 앙코르와트 사원을 돌아 본 시간은 아침 7시가 조금 지났으니까.
아직 관광객들이 많이 붐비지 않는 사원을 돌아보다가 저쪽 한 구석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서 보니 한 여인이 삭도를 가지고 아이의 머리를 밀고 있었다.
반 이상이나 밀어낸 것으로 보아 그들은 아주 일찍부터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곁에서 두 아이와 한 할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는 잡혀 온 짐승처럼 그저 머리를 대 주고 있었다.
면도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비누질을 한다거나 젤 같은 것을 바르지도 않고 마른 털을 조금씩 박박 밀어내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 아이의 머리털이 밀려 나왔다.
피는 나지 않았지만 머리 가죽이 벗겨지는 것처럼 아프게 느껴졌다.

그들은 모두 제사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처럼 아주 진지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서 한참을 바라 보아도 아무도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다만 머리를 밀고 있는 아이가 비스듬히 누운채로 나를 힐끗 쳐다 볼 뿐이었다.
나는 그들이 가난 때문에 아이를 승려로 만들려고 준비하는 것이리라 추측하고 
어쩌면 여기에서 관광객들에게 교묘한 구걸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들 손에 얼마를 쥐어 주면 아이를 놓아 줄까?

"아마 아이를 승려로 만들려는 모양인데 왜 하필 여기에 와서 머리를 깎을까?
혹시 돈을 벌려고 저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일행에게 돌아와서도 계속 내 시선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못하자  친절한 잇디씨가 얼른 그들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한참을 그들과 이야기를 하고 돌아와서 내게 말했다.

"저 아이는 승려가 되려는 것이 아니예요.
지금 머리를 깎고 있는 저 여자가 중한 병에 걸렸을 때 이렇게 기도를 했답니다.
자기의 병을 낫게 해 주면 이 사원에 와서 아이의 머리를 깎겠다고 말입니다.
다행히 여자의 병이 다 나았고 오늘 그 약속을 지키려고 저러고 있답니다"

아니, 뭐라고 ?
제 병을 낫게 해 주면 아들의 머리를 밀겠다고 서원을 했단 말씀 ?
이 무슨 염치 없는 경우란 말인가.
제 병이 나았으면 제 머리를 밀어서 감사의 표시를 할 것이지 왜 하필 자식이람.
제가 낳았으니 자식은 자기의 소유라고 착각하는 모정이 와락 미우면서도 가슴이 짠했다.
내 속 어딘가에도 저런 착각 심리가 아주 없다고는 장담을 못하겠고,
너나없이 에미라 이름붙은 족속들에게는 다 비슷비슷한 마음 구석이 있다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