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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둣빛 3월이다.

  3월이 완전한 봄인 것을, L.A에서 처음으로 3월을 맞이하면서 알게 되었다.

  여리고 고운 연둣빛 산과 잎사귀와 노란 유채꽃과 피어나는 갖가지의 꽃들로

  바람에 취하고, 하늘색에 취하고, 꽃에 취한다.


  집 앞길의 가로수 하얀 벚꽃이 바람에 눈송이처럼 흩날린다.

  드문드문 분홍색 꽃도....꽃잎을 주워본다.

  떨어진 작은 벗 꽃 송이는, 꼭 다섯 잎에 저마다 꽃술을 달고 있다.

  더 작은 풀꽃도 하나같이 완전하다.

  창조주 하나님의 완전하고 세심한 작품에 새삼 놀란다.


  혜옥이 집으로 가는 길은, 프리웨이로 가면, 조금 더 빨리 갈 수 있지만

  나는 산길 바닷길을 택하여 간다.

  말리부 캐년의 초록으로 물든 산과 바위를 곁눈질하며 간다.

  이 길은, 설악산으로 가는 기분이 들게 한다.

  구불구불, 길 위로 바위가 굴러 떨어질 것도 같다.

  C.D에서 요즈음 자주 듣는 곡, 라 캄파넬라가 흐른다.


  PCH( Pacific Coast Highway), 1번 도로에 닿기 전에,

  언덕 아래에 은빛 바다가 그윽하게 눈앞에 차오른다.

  아~ 바다, 내 그리운 바다여, 내가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아니?

  그러면서도  곁눈질로 흘끔흘끔 볼 수 밖에 없다.

  복잡한 도로에서, 눈은 자꾸 바다로, 언덕으로

  길가의 꽃으로 쏠리는 걸 어떡하랴.


  해변에는 파도가 밀려들며 하얀 포말을 만들어 내고,

  바다를 마주한 언덕에는 근사한 집들과 노란 유채꽃과 다른 들꽃들로

  물결치는 환상의 1번 도로!

  그러나 중간 중간, 부자들이 바닷가에 큰 집을 지어서,

  바다가 잠시 보이지 않기도 한다.


  3주째, 금요일마다 이 길을 달려 혜옥이 집으로 갔다.

  오늘은 둘이 만나, 산타모니카의 어느 작은 영화관에서

  이쁘지도 않은, 우리 나이 또래의 늙어가는 여자가 주인공인 
   영국  발음의 소박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끝나고 나오니, 거리에는 사람들의 물결이다.

  미국에서는 뉴욕을 빼놓고, 거리에 사람이 붐비는 건 흔하지 않다.

  이곳은 관광객들도 많이 모인다.

  곳곳에선 악사들이 기타, 첼로, 드럼을 치며 노래 부르고 사람들은 즐긴다.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듣기도 하려고

  아마 모두 이런 걸 즐기러 나온 듯하다.

  라이브로 들으니 재즈도 과히 싫지 않다.


  우리는 사람들 틈에서 걷기도 하고, 상점을 기웃거리기도 하면서,

  웃고 얘기하며, 밥도 사 먹으며,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곳, L.A에 와서 맘에 맞는 친구 하나 만난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도록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여건에 감사하면서,

  석양의 바다를 바라보며, 해를 안고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