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호박이 보이면 "펌프킨"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트랙터 운전수는 귀가 조금 어두워서 우리가 크게 소리 지르지 않으면 듣지를 못한답니다."

 

버터필드 농장에서 견학을 지도하는 케네디언 남자가 이렇게 소리쳐 말하자 아이들은 "와아"하며 함성을 질러대었고

트랙터 운전수는 안들린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웃음을 자아내었다.

 

트랙터 위에는 여기저기 지푸라기들이 흩어져있었고 트랙터가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마다 털썩거리는 것도 아이들은 그저 재미있어한다. 이름 그대로 이 곳 버터필드 에이커 농장은 캘거리 북 쪽의 한 들판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그 들판이 몇 에이커가 되는 지 수 개념이 없는 나는 짐작할 수 없지만  나무들로 둘러싸여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넓었다.

 

오래 된 침엽수 나무와 전나무 사이에 만들어 진  나무상자 그네,

여기저기 마치 던져놓은 것 같은 커다란 타이어들...

캘거리 다운 타운에는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많은 공원들이 있지만  빨강. 파랑 원색의 플라스틱 놀잇감에 익숙해진 나의 눈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을 들판의 맑고 청량한 공기가 마치 한국 TV에서 선전하는 사이다의 뽀글뽀글한 그 소리처럼 들리어온다.

 

양떼를 몰고 다니는 듯한 커다란 개가 우리 주변을 돌며  "킁킁"거려 보는데 그 눈망울이 어찌나 순한지 나도 모르게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트랙터는 아주 느린 속도로 "펌프킨 헌팅"을 하기 위해 농장 한 바퀴를 돌아가고, 여기 저기 할로윈 데이를 위해 장식한 -누런 호박, 하얀 천으로 만든 귀신얼굴 - 같은 것들이 보인다.

버팔로의 뼈들은 빛바랜 모습으로 들판에 누워있고  청바지를 입은 카우보이 복장의 허수아비들이 길가에 서서 아이들을 맞고

있다.

 

얼마나" 털털"대며 갔을까?

 아이들은 나무 가지 사이와 수풀로 덮여진 곳에서 호박을 찾아내고 마치 튀어나가는 용수철처럼 달려가서 자그마한

호박을 안고 돌아온다.

자그마해도 호박이 무거운 지 두 팔로 움켜잡고 "낑낑"대며  "핼프, 핼프"를 외쳐대는 아이들도 있다.

그  밝고 환한 얼굴에서 달빛같은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마치  개선 장군들 같다. 

이 "펌프킨 헌팅" 게임은 부활절에 계란을 숨겨놓고 아이들에게 찾게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트랙터에 올라와서 내 옆에 앉아있던 케이티는

"애나, 애나,정말로 재미있어요" 하며 "베리 환"을 연발하였다.

 

교실에서는 늘 울기를 잘하던 그 아이가 그렇게 행복해하는 표정으로 말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이제는 호박에 장식을 해야한다.

 

농장 안에는 동물들을 위한 빨간 집들이 많이 있었다.

창문에는 하얀 페인트칠을 해서  동물들이 사는 집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예쁘다.

아이들 동화책에 보면 농장에 있는 집들이 모두 빨간 색으로 되어있어서 아이들 시각적인 효과를위해서 그렇게 하였나하고 미루어 짐작 했었는데 실제로 농장에 와보니 모두가 빨간색이었다.

 

우리는  쉘터처럼 생긴 자그마한 집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아이들이 호박을 장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재료들이 있었다.

문 입구에는 이름을 쓰도록 여러가지 색깔의 매직펜들이 줄에 매달아져있고 테이블 위에는 나비넥타이 모양을 한 파스타들과

검정물을 들인 쌀들이 있었다.

화이버 필이라고 불리는 마치 카시미론 이불솜 같은 것들도 있었다.

 

제이콥이라는 남자아이는 시력이 좋지않아서 늘 넘어지기를 잘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할 때는 잘 듣지를 못하는

아이이다.

그 아이가 오늘은 호박 장식을 거의 마치더니 그 이불솜을 뜯어다가 호박 양 옆으로 붙이는 것이었다.

"제이콥, 그거 참 멋잇네."하고 칭찬을 하였더니  그 아이 대답이

"이건 호박 귀에요."하며 환하게 웃는다.

 

아이들이 이런 놀이를 통해서 상상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이다.

 

아이들이 장식한 호박들이 하나둘 창가로 놓여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준비해간 핫초코렛을 한 잔 씩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약간은 쌀쌀한 날씨여서 따스한 것이 그립던 아이들은 코를 "훌쩍"거리며 맛있게들 먹는다.

창가에 놓여진 호박들이 마치 하나하나의 아이들 웃는 모습처럼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앉아있다.

 

이제는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농장 안에 있는 동물들을 보러가는 시간이다.

제일 먼저 양과 염소들이 있는 우리로 들어갔다.

갑자기 한 녀석이 내 잠바를 먹으려고 달려든다.

동화 책에서 염소가 종이를 씹어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었나?

 아무 것이나 다 먹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내 손을 잡고 들어오던 싸미나가  놀라서 갑자기 내 뒤로 몸을 숨긴다.

대이캐어에 온 지 얼마되지않는  싸미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늘 내게 말한다.

 

"애나, 엄마가 보고 싶어요."

그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겁먹은 표정으로 숨기만 하더니 닭 한마리가 지나가는 것을 보자 그제서야 웃음을 짓는다.

 

아이들은 말들에게 건초들을 던져주며 말소리를 흉내내보기도한다.

"네-이, 네-이."

 

우리가 한국에서  알고 있는 말의 소리는  "히잉히잉"  인데......

동물들의 울음소리도 문화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니  우리 사람들의 느낌이라는 것도 문화에 따라 얼마나 많이 다르게 받아들여질까?

 

우리 나라 토종닭처럼 생긴 검은 닭들이 놀고있다. 그런데 그 곁에 두 마리의 공작이 우아하게 앉아있다.

한 울타리 안에 공작 두 마리, 아기 양 한 마리, 그리고 여러 마리의 토종닭들......

이상한 가족구조도 다있네.

 

하긴 이 곳 캐나다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가족구조들이 많이 있긴하지만...

케네디언들은 우리 한국인들이 대가족구조로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니...

 

문화의 차이랄 수 밖에.

 

 

우리가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냄새가 진동하는 돼지 우리였다.

몸집이 유난히 큰 종돈 한 마리와 아기돼지들이 이웃집에 나란히 살고 있었다.

 

그 돼지우리 앞마당에는  여러가지 무늬의 토끼들이 놀고 있고....

토끼장에 갇혀서 잠을 자는 것들과 놀이터 안에서 뛰어노는 토끼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보기도한다.

 

 

돌아오는 길,

 캘거리의 북쪽 바람은 유난히도 쌀쌀했지만 우리 모두는 가슴 가득 한아름의 추억을 안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우리들은 "올드 맥도널드 농장"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올 맥도널 해드 어 팜,  이야이야호"

 

버터필드 농장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