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회 - 게시판담당 : 김성자
지난 일요일 꿀꿀해있는 남편의 기분을 풀어주려고(잉~~내가 이러고 산다.)
공원에 가자고 졸랐다.
남편은 마지못해 추리닝 바람에 따라 나선다.
나는 급하게 사과 한 개를 칼집을 내어 비닐 봉지에 넣고 맘 변할세라 서둘렀다.
자유공원이 코 앞인데도 이사 오고 처음 행차다.
제법 단풍도 예쁘고 맥아더 동상 아래 정원도 아기자기하다.
때아닌 웬 장미가 그리 많던지.
남편은 어느새 얼굴이 어린애처럼 환해져 있다.
"거봐요, 마누라 말만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니까. 잘 왔지. 그치?"
없는 애교를 떨며 팔짱을 슬쩍 끼고 여기저기 돌다가 제물포 구락부에 들렀다.
200원짜리 율무차를 한 잔 빼서 뜨거운 물을 듬뿍 부어 둘이서 나눠 마셨다.
눈물 난다구?
그게 아니고 그곳 율무차가 너무 달아서 그래야 간이 딱 맞더라구.
오솔길을 돌아가는데 어디서 음악 소리가 들리는 거야.
소리를 따라가니 중년의 한 연주자가 섹스폰으로 '마이웨이'를 연주하고 있지 뭐니?
계속해서 올드 팝을 연주하는데 이게 뭔 횡재인가 싶더라.
내가 박수를 크게 치니까 그 사람이 나를 향해 깊이 머리를 숙이더라.
남편은 쑥스러워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며
"왜 혼자서 박수를 치고 그래?" 하더라.
"어때, 예의지. 기쁨을 주었는데 보답이 이거 밖에 더 있어?"
내가 더 크게 박수를 치니까 하나 둘 모여든 청중들도 따라서 치는 거 있지?
장장 1시간을 선채로 추운 줄도 모르고 듣고 있다가
추리닝 바람에 나온 남편이 걱정되어 가자고 하니 글쎄 더 있다 가자고 하는 거 있지?
원래 아침에도 흘러간 팝송을 틀어 놓아야 밥을 먹는 위인이거든.
할 수 없이 사과 반 쪽을 쭉 쪼개 주니 히죽 웃으며 받아든다.
난 연주자에게 미안해서 손으로 살짝 가리고 게 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꿀 맛이다.
급히 나오느라 따끈한 차 한 잔 준비 못한 게 연주자에게 왜 그리 미안하던지.
기침도 맘 놓고 할 수 없는 거창한 음악회보다
아는 곡 나오면 흥얼흥얼 따라 부를 수도 있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푸른 하늘과, 콧등이 쨍하도록 기분 좋을 만큼의 찬 공기,
그리고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며
난 잠시 행복이란 별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떠나기 싫어하는 남편등을 떠밀다 싶이하여 우린 공원 길을 내려왔다.
등 뒤에선 여전히 감미로운 섹스폰 소리가 들리고.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한 기분이었지.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이 공짜였으므로
가난한 우리 부부의 발걸음이 더 가벼웠을 것이다. ㅎㅎ
오늘 동치미 담글 준비를 하는데 그이가 옆에서 자꾸 걸리적거린다.
"뭐 필요해요?"
"아니."
"그런데 왜 자꾸 왔다 갔다 그래요?"
"응~, 공원 안가냐구."
에구구.
그러나 어쩌랴. 내가 내 발등 찍은 것을. ㅋㅋ
번개불에 콩 궈 먹듯 김치를 담궈 놓고
이번엔 그를 따라 내가 마지못해 따라 나섰다.
지루할테니 이하 생략입니다.
놀이방이 너무 조용해 이상타 했더니 모두 힐 하우스에....
배가 너무아파 은숙에게ㅡ 전화. 회장님도 통화했구....그런데 밤새 배가 왜 아플가????
옥순아!! 너 정말 붓 던저 버리구 펜을 잡아라.
김 수현씨는 혼자 글을 쓸지 모르지만 너는 선 후배까지도 도와 준다면,
몰라도 대한민국 최고의.....
아부가 너무 심했나?
어쨋든 잠을 못자서인지....... 아직 배가 아파.^^ㅋㅋ
얘들아~~~~~~
어제 별루 재미 없었지????
여기애들 너무 배아파 하니까........
그래두 어제 있었던일 하나도 빼먹지말고 올려 줄것을 부탁한다.
순옥아,
넌, 배 아프면 아부하냐? ㅋㅋ
내 글이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네 말마따나
선후배, 친구들이 찾아와 이어지는 정담이 즐거운 거지.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니까 그렇지,
모르는 이들이 보면 뭔 주책인가 싶겠지.
그리고 순옥아,
걔들, 뭔 재미가 있었겠냐.
순옥이와 옥순이가 빠졌는데.ㅋㅋ
순옥이와 옥순이!
아무리 생각해도 촌스런 이름인데
그 이름 갖고 미국까지 가서 사니 출세했다. 순옥아!
영주위원장님,
이 늦은 시간까지...아니 새벽시간까지...
정말 인일홈페이지를 위해 불철주야 수고 많으십니다.
그렇게 고생하시더니 이제 보람을 느끼시겠어요.
홈페이지가 활성화되어 객들인 우리도 흐뭇할정도니 위원장님은 말할나위도 없겠지요.
활성화에 기여하셨던...한몫하셨던 용상욱선배님이 요즘 뜸하시네요.
상욱선배님도 홈페이지를 보고계시면 틀림없이 남다른 감회를 느끼실거에요.
이야기의 포인트가 다른데로 흘러갔네요.
각설하고...
위원장님, 올해가 가기전에 한번 뵈야지요?
늘 건강하세요...
이제 올 손님 다 온 것 같은데
이흥복님이 새 방 열고 음악을 쾅쾅 틀어 놓으시니
영주씨가 잠을 못자자나요. ㅎㅎ
맞아요.
영주씨 몸은 혼자만의 몸이 아닌데
저도 항시 걱정됩니다.
날씨가 매서워졌습니다.
두 분 모두 감기 조심 하십시요.
색소폰 이야기가 나온김에 한국 섹소폰의 大家 이신 故 길옥윤 선생님과 故 이봉조선생님에 대해 잠깐 알고 넘어갈까요?
* 吉屋潤(길옥윤) : 본명 최치정(崔致楨).
1927 평북 영변~1995. 3. 17 서울. 색소폰 연주가, 대중음악 작곡가.
서양의 대중음악이 무차별적으로 밀려 들어올 때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한국적 정서를 가진 음악으로 발전시킨 대중음악 작곡가로서 국민들에게서 폭넓은 사랑을 받은 〈서울의 찬가〉·〈이별〉 등 3,000여 곡을 작곡했다.
길옥윤은 경성치과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재즈에 심취해 1950년 경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의 음악 클럽을 전전하다가 8.15해방직후 박춘석·노명석과 그룹 '핫팝'을 만들어 미군부대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다. 1962년에는 데뷔 곡 〈내 사랑아〉를 현인이 불러 히트시켰는데 그 해 가수 패티김을 만나면서 그의 음악 인생은 轉機를 맞았다.
〈4월이 가면〉·〈사랑하는 마리아〉·〈서울의 찬가〉 등 그가 작곡한 수많은 곡을 패티김이 불렀고, 패티김과 결혼(1966)함으로써 그들의 로맨스도 유명세를 탔다. 1973년 이혼한 뒤 길옥윤의 음악활동은 침체되었으나, 1976년 신인가수 혜은이를 발굴해 〈당신을 모르실 거야〉로 재기했다. 혜은이를 통해 〈제3한강교〉·〈감수광〉 등의 히트 곡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후 그는 서울 올림픽 대회 폐회식 음악을 작곡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펼쳤다. 음악 카페 '창고'를 운영하다가(1988) 빚을 지고 달아나듯 떠났던 일본에서도 재즈와 가요의 작곡가로서, 색소폰 연주가로서 활동을 계속했다.
이후에도 길옥윤은 마셜 제도 국가 작곡(1991), 〈부산찬가〉를 작곡(1995)했으나 1994년초 폐암 선고를 받고 그 해 6월 일본에서 귀국, 서울방송(SBS)이 마련한 '이별의 콘서트'에서 마지막으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 〈사랑은 영원히〉를 휠체어에 앉은 채 발표했다. 폐암 말기에 척추암까지 겹쳤으나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쉬지 않고 작곡을 계속한 그는 1994년 10월 귀국해 여생을 한국에서 보냈다. 1995년 3월 사후에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고, 같은 해 4월 패티김이 노래한 그의 유작 앨범이 발표되었다. 10월에는 그를 추모해 서울 세종로공원에 길옥윤 노래비가 건립되었다.
* 길옥윤 작사 작곡 패티김 노래 - 서울의 찬가,이별
(키보드 좌측상단의 Esc키 누르고 감상要!)
* 길옥윤작사 작곡 혜은이노래 - 당신은 모르실거야
* 이봉조[李鳳祚]
1932. 5. 1 경남 남해~1987. 작곡가, 색소폰 연주자
이봉조는 한양대학교 건축과 3학년 때 아르바이트로 김광수 악단에서 색소폰을 불면서 대중음악계에 들어섰다. 졸업 후 서울시청 건설국에 취직했으나 2년 만에 그만두고 1959년 김광수 악단에 정식입단을 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62년 이봉조 악단을 결성했으며 그 해 문화방송(MBC) 전국경음악단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1966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중가요 작곡가로 나섰으며 팝송을 편곡한 〈밤안개〉를 가수 현미가 불러 크게 인기를 끌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후 영화주제가인 〈맨발의 청춘〉·〈떠날 때는 말없이〉 등을 연속 히트시키면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
1970년대부터 국내에서 처음으로 해외가요제에 참여했으며 1971년 도쿄[東京] 세계가요제에서 〈안개〉로 입상했다. 그 밖에 그리스 가요제, 칠레 가요제 등에서 〈너〉·〈나의 별〉·〈무인도〉·〈꽃밭에서〉 등을 입상시켜 국내 작곡가 중 가장 많은 국제가요제 입상경력을 쌓았다. 30여 년의 음악생활 동안 300여 곡의 대중가요를 작곡했다. 그는 트롯이 주류를 이루던 1960년대 가요계에 재즈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스타일을 개척한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다. 1972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받았다.
* 이봉조 작곡 현미 노래 - 밤안개
(키보드 좌측상단의 Esc키 누르고 감상要!)
* 이봉조 작곡 조관우 노래 - 꽃밭에서
휠체어에 앉아 패티김의 노래를 듣던 길옥윤님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는군요.
애처로운 모습으로 잔잔한 미소를 띠고 패티김을 보고 계셨죠.
그 모습을 보며 저들은 왜 헤어져야만 했을까 마음 아팠는데....
유화백의 글 중에서도
이게 제목이나 여타 내용이 사실 오래 남아 있습니다.
일부러 한바탕 회오리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지요.
지금 그 색소폰 부는 아저씨는 겨울이에 눌려 나오지 않겠지만
우리의 가슴에 그런 포근한 그림을 안겨준 재치부인께 감사드립니다.
인천자유공원, 제물포구락부,
공원을 끼고 둘러쳐 있는 꼬부랑 길들이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그어댄 것처럼
새삼 환하고 정감있게 그려질 듯싶습니다.
그러나 역시 좀 쓸쓸해요.
이제 허무개그의 배턴을 넘겨 드려야겠어요.
아니 원 주인이셨던가요?
그런다고 현모양처께서 서방님 진지를 거르시게 할 리 없으렸다.
연숙아, 요즘 바쁜가봐.
미국 친구들 단체로 바쁠 리는 없고,
혹시, 한국 친구들이 섭하게 했나?
그러지들 말고 자주 와서
푼수떠는 옥순네 숟가락이 몇 개인지 들여다 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