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꿀꿀해있는 남편의 기분을 풀어주려고(잉~~내가 이러고 산다.)
공원에 가자고 졸랐다.
남편은 마지못해 추리닝 바람에 따라 나선다.
나는 급하게 사과 한 개를 칼집을 내어 비닐 봉지에 넣고 맘 변할세라 서둘렀다.
자유공원이 코 앞인데도 이사 오고 처음 행차다.

제법 단풍도 예쁘고 맥아더 동상 아래 정원도 아기자기하다.
때아닌 웬 장미가 그리 많던지.

남편은 어느새 얼굴이 어린애처럼 환해져 있다.
"거봐요, 마누라 말만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니까. 잘 왔지. 그치?"
없는 애교를 떨며 팔짱을 슬쩍 끼고 여기저기 돌다가 제물포 구락부에 들렀다.
200원짜리 율무차를 한 잔 빼서 뜨거운 물을 듬뿍 부어 둘이서 나눠 마셨다.
눈물 난다구?
그게 아니고 그곳 율무차가 너무 달아서 그래야 간이 딱 맞더라구.

오솔길을 돌아가는데 어디서 음악 소리가 들리는 거야.
소리를 따라가니 중년의 한 연주자가 섹스폰으로 '마이웨이'를 연주하고 있지 뭐니?
계속해서 올드 팝을 연주하는데 이게 뭔 횡재인가 싶더라.

내가  박수를 크게 치니까 그 사람이 나를 향해 깊이 머리를 숙이더라.
남편은 쑥스러워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며
"왜 혼자서 박수를 치고 그래?" 하더라.
"어때, 예의지. 기쁨을 주었는데 보답이 이거 밖에 더 있어?"
내가 더 크게 박수를 치니까 하나 둘 모여든 청중들도 따라서 치는 거 있지?

장장 1시간을 선채로 추운 줄도 모르고 듣고 있다가
추리닝 바람에 나온 남편이 걱정되어 가자고 하니 글쎄 더 있다 가자고 하는 거 있지?
원래 아침에도 흘러간 팝송을 틀어 놓아야 밥을 먹는 위인이거든.

할 수 없이 사과 반 쪽을 쭉 쪼개 주니 히죽 웃으며 받아든다.
난 연주자에게 미안해서 손으로 살짝 가리고 게 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꿀 맛이다.
급히 나오느라 따끈한 차 한 잔 준비 못한 게 연주자에게 왜 그리 미안하던지.

기침도 맘 놓고 할 수 없는 거창한 음악회보다
아는 곡 나오면 흥얼흥얼 따라 부를 수도 있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푸른 하늘과, 콧등이 쨍하도록 기분 좋을 만큼의 찬 공기, 
그리고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며
난 잠시 행복이란 별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떠나기 싫어하는 남편등을 떠밀다 싶이하여 우린 공원 길을 내려왔다.
등 뒤에선 여전히 감미로운 섹스폰 소리가 들리고.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한 기분이었지.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이 공짜였으므로
가난한 우리 부부의 발걸음이 더 가벼웠을 것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