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삐끔이 보이는
지세포 볕 바른 둔덕
지금이야 한 길씩이나 자라 서걱거리는 억새가 우거져 있지만
언젠가
이 사고무친 타관살이를 마치고 돌아가
참한 내터로 일궈 볼 꿈을  꾼다.

투박한 큰일이야 기계를 대고,
노련한 손놀림이 가야 할 일은 거기 걸맞는 품을 사겠지만
우리 내외도 뒷짐지고 구경만 하진 않을 작정이야.
숱한 날들을 한데서 뒹글다 보면 얼굴은 볕에 끄슬르고
손은 가랑잎 처럼 거칠어지겠지.
솜씨 좋대서 모셔 온 호락 호락하지 않는 기술자양반은 사흘돌이로 나를 천불나게 하리란 것도 짐작하고 있어.
아마 내 분수에 넘치게 횡덩그레 하지도 않고 그다지 옹색하지도 않은 허우대의 집 한채가 겨우 모양새를
갖춰갈 무렵이면 내 머리가 홀딱 셀지도 모른다.

그라고 나면
나무를 심지.   지금 있는 유자나무 서른그루 말고도  단감나무, 매화나무,  동백과  석류  키위와 머루포도.
그  갈피에  원두막과 토담집 하나쯤
오다 가다 걸터앉을 편편한 돌이 있으면 주워다 놓을까 하지만
내 힘에 부치는 것을 억지로 욕심내진 않으려고 한다.

키 작은 나무로 담을 두르고
비 오는 날을 기다려
꽃 모종을 심어 봐야지.
키가 크는 놈은 뒤켠에 심고
땅을 발발 기는 놈은 앞쪽에 심는 게 정한 이치건만
어린 새순만으로 그 키를 가늠할 재간이 읎으니
첫해엔 아마 들쑥 날쑥 할거야
내 솜씨가 그렇지. 뭐.

비록 입때까지는
뿌리 가진 생명을 잘 간수하지 못해 죽이기를 거듭했어도
물어 물어 가며 텃밭에 푸성귀를 심어 먹을 야무진 포부도 있어.
아욱도 심고, 호박도 심고, 토마토도 심어 거두고,
물론 옥수수도 심지.
고구마?   노란 참외 ?
제법 기술이 필요한 건 낭중에 심어 보기로 하고.

수확이 보잘 것 없어도
우리 두 양주가 무슨 수로 그걸 다 먹어 치운단 말인가?
난 바리 바리 싸서 내 동생네도 보내고
나의 볼품없는 농작물을 시시하게 여기지 않는 도시의 친구들에게도 인심쓰고 싶다.
한 겨울에도 바람찬 밭에 옹크리고 서 있는 배추의 노란 속고갱이가 얼마나 고소하고 달달한지
凍土의 아파트族은 아마 모를거야.

이런 찬란한  꿈을 꾸지만
걱정도 한두가지가 아니야.
지금 나의 형제 절반은 나 맹키로 제 나라에 제 집을 두고도
오랫동안 딴 나라에 살거나 모두 도시에 살고 있으면서
늙으막엔 좀 가까이 모여 어울려 살자고  구슬르고 있지.
뚜욱  떨어져서   너무 외롭지 않겠냐고 걱정하는 이도 있는데
그건 견딜 만 할 거야.    말이 안 통했던 딴 나라에서도 십년을 넘게 살았는데.   그거야 뭐.
다만 이 나라에 혼자 남겨 둘 우리 아이 생각에
해가 뉘엇 뉘엇 질 무렵이면 남녘 먼 하늘이 자주 봐질테니 그게 심란스럽지.
날이 갈수록 영락없는 村婦가 되어 가는 내 모습도 그렇고
일 태배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생활도 짜증이 나겠지.   사서 하는 고생 후회도 될거야.

노년엔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살고 싶은데
맨날 ' 욕심을 버려야지 ' 입버릇 처럼 말은 하면서도  돈 욕심이 나면 우짜지?
사람은 그리워 하면서도
그 먼 데까지 우릴 찾아 오는 손님이 구찮아지면 우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