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면 꼭 베르겐에서 왔다고 대답을 한단다.
노르웨이 사람이라는 사실보다 베르겐 사람이라는 것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이다.
그만큼 베르겐 사람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단다.
그래서 나도 그곳을 다녀온 이야기는 노르웨이 여행기가 아닌 베르겐 여행기라고 하겠다.
베르겐 여행은 노르웨이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그리그의 기념관을 찾아 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기념관은 그리그가 결혼 18주년 되는 해에 장만을 한 여름별장인데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있었다.
그가 살던 집은 박물관으로 만들어 당시에 쓰던 물건을 고스란히 보관하여 전시하였고
나중에 지은 작은 콘서트 홀은 연주자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을 했을 때는 마침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이어서 홀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그리그가 음악을 구상하였던 작은 방이 따로 있었는데
그 방에서 내다 보는 경치가 정말 좋았다.
예술가의 창작혼을 깨우는 것은 자연 경관인 모양이다
톨스토이가 살던 집에도 집필을 하는 방은 따로 구별이 되어 있었는데 그리그도 그런 것을 보니.....
그들의 삶이 부럽다.
그리그는 무척이나 작고 왜소한 사람이었다.
그가 살던 집 마당에 실물크기의 동상이 있는데 마치 어린 아이처럼 작다.
그 옆에서 동상을 끼고 사진을 찍어보니 나보다도 훨씬 작았다.
이렇게 작은 남자가 그렇게 커다란 음악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리그는 지금도 그집에 있었다.
육신은 다 벗어버리고 한줌의 재가 되어
피요로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집 앞 양지바른 절벽에 부인과 함께 묻혀 있었다.
(계속)
( 그리그와 그의 아내가 합장된 납골당이 있는 절벽. 그는 자기가 살던 집에서 영면하고 있었다 )
그리그 생가 가는 길은 綠雨가 내리고 있었지.
초가 지붕위에 덮힌 이름모를 풀들
그렇게 아름다운 콘서트 홀은 본 적이 없었어.
그곳에서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었으면 확실한 우생순이었겠지.
눈에 선~하~다.
20대에 그리그의 생애를 그린 `Song of Norway` 란 영화를 보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경건함 마저 느꼈었지.
세월은 흘러 흘러 그곳을 찾아 가다니... 감회가 물밀듯 밀려오더라.
춘선이는 과연 프로야.
리바운드 시키는 능력 놀라워
이제 기행문 대미의 순간 얼마 안남았네
건필을.......!
정말 오랫만이네.
네 이름을 보니 우찌 이리 반가운지...
너도 북유럽에 다녀왔구나.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어. 그치?
자주 홈피에서 만나자.
정말 반가워.
연주곡이 정말 좋네요.
힘이 있어요.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면 그리그네 집 앞 절벽과 피요르드와 이끼가 파랗게 덮인 나무가 떠오르네요.
아담하면서도 예쁜 콘서트홀도 손에 잡힐듯이 보이고 이슬비에 젖어 있던 지붕위의 야생화랑 촉촉히 젖어있던 오솔길도 떠올라요.
누군가와 공유하고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것은 참 중요한것 같아요.
언니가 칭찬해 주시니 힘이 불끈 ~
앞으로 남은 여정은 자연 경관과의 만남이 많아요.
그 웅장한 자연 앞에 내 모습을 비추어 보며
그동안 작은 생각의 틀에 갇혀 살았던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지요.
암튼.....
이렇게 여행기를 쓸 수 있는 것은 다 격려해 주시는 분들 덕분이에요.
저 혼자 골방에서 썼다면 애진작에 포기하고 말았을거에요.
그리이그의 음악은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이렇게 다시 듣고 보니 새롭구려.
인천집 컴은 고물딸딸이라 한 번 켜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야.
지난 번에는 켜는데 실패해서 아예 못썼는데 이번에는 신기하게도 한번에 잘 켜졌어.
그래서 이따가 갈 때까지 3일 째 계속 켜두고 아무도 손대지못하게 단속중이다. ㅎㅎㅎㅎ
우리가 불꺼뜨려서 휠이 날아갔나? 춘선작가님!
계속 써주세유~~~~~~~~~~~~~~~~~~~~~~~~~~~~~~
( 위 본문에서 계속 이어 씁니다. )
내가 그 집에서 만난 그리그는 다정한 남편이며 슬픈 아비였다.
아내와의 사이에서 딸을 하나 얻었지만 13개월 만에 뇌종양으로 잃고 만 그는
더 이상 자식을 두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친구 딸의 초상화를 소중한 보물인양 거실에 걸어 두었다.
그림 속의 소녀는 여전히 맑고 투명했다.
그 소녀는 아마 그리그의 가슴에 묻힌 딸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껏 살면서 집에 대한 애착이 거의 없었다.
살다가 싫증이 나면 미련없이 새 집으로 이사를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리그가 살던 집에 와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후에도 머무를 수 있는 집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 집은 그리 크지 않은 집이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잘 갖춰져 있는 보금자리였다.
신작로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는 진입로는 걷기에 알맞은 운치있는 길이었다.
촉촉한 이끼가 나무를 잘 감싸고 있어 더 울창한 느낌의 진입로 오솔길이 서곡이라면
지붕 가득히 들꽃을 얹은 야트막한 집에서 내다 보는 피요로드는 클라이막스,
좁은 계단으로 이어지는 숨겨둔 길을 따라 내려가면 보이는 절벽은 그 집 풍경의 대단원이었다.
그리그도 나처럼 그 집의 흐름을 느끼고 있었는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지점에다 자신의 유택을 정하고 영면했다.
돈으로는 그 가치를 따져 볼 수 없는 집.
그 집은 자연과 어우러진 한 편의 교향곡 같았다.
거기에 머무르는 내내 뜬금없이 나도 그런 집을 하나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로 그리그가 부러워 죽을뻔했다. (계속)
( 지붕에 야생화를 잔뜩 얹고 있는 집의 외형 ) (살짝 보이는 호수같은 피요로드와 마당에 있는 실물 크기의 그리그 동상 )
그리그 기념관을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뜻밖에도 한식이었다.
그것도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하는 식당 밥이 아닌 집에서 하는 밥이었다.
베르겐에 사는 교민들 몇 명이 휴가를 떠나느라 임시로 문을 닫은 고급 식당을 빌려서
여름 휴가철 동안만 예약된 한국 손님들에게 밥을 해 주는 곳이었는데
무공해 청정지역에서 채취한 연한 취나물과 고사리 나물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해물이 풍부한 나라답게 생선 요리도 푸짐하고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 왔다는 이천 쌀밥은 찰지고 입에 착착 감겼다.
김치며 된장국이며 장아찌며....
머나먼 노르웨이가 아니라 마치 지인의 시골 집에 온 것 같은 밥상이었다.
돈 주고 사먹는 음식이 아니라 정으로 나눠 먹는 음식 같아서 배보다 마음이 먼저 불렀다.
이게 웬 축복이란 말인가.
감사가 저절로 나왔다. (계속)
맛있는 밥 한 끼의 행복이었다.
입에 맞는 음식을 먹고 난 후에 느끼는 행복은 모든 여행 피로을 다 잠재웠다.
북구에 가면 한국 음식은 구경도 못할 거라며 단단히 준비하라던 사람들의 말이 틀렸다.
그곳에 가도 한국 정취가 물씬 나는 밥이 있고 토속적인 한국사람들이 있었다.
그 점심밥 덕분에 우리는 원기가 충천해져서 산악기차를 타고 풀루엔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플루엔산 정상의 전망대에 서니 노르웨이를 상징하는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늘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이 고스란히 펼쳐져 있어 괜히 낯이 익었다.
바다와 그 한가운데 있는 만과 그림같은 집들, 그리고 산과 하늘이 정말로 사진과 똑같다.
환호성이 저절로 나왔다. (계속)
베르겐은 <비의 도시>라고 하더니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
잠깐 해가 났다가도 금새 비가 억수로 오고, 그러다가 뚝 그치고 해가 반짝...
그래서 우리는 선글라스와 우산을 양 손에 들고 다녀야 했다.
떠나오기 전에 한국에서는 찜통더위, 불볕더위로 더워 죽을뻔 했는데
이 곳은 완전히 한국의 가을 날씨 같다.
산 아래는 초가을처럼 선선했고 산 꼭대기는 늦가을처럼 쌀쌀하다 못해 약간 추웠다.
나는 산 아래서 입었던 얇은 자켓을 벗고 거위털이 든 도톰한 외투를 꺼내 입었다.
여행짐에 넣기는 해도 더워서 어떻게 이걸 입을까 했던 옷인데 여기 날씨에 딱 맞았다.
방수가 되는 소재라서 비를 맞아도 잘 젖지 않고,
바람도 막아 주는데다가 가볍고,
눌러 접으면 부피도 작으면서 구겨지지 않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다음에 또 가게 될 때 참고하려고 기록해 둔다.
여행지에 알맞는 옷을 준비하면 다니면서 고생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계속)
청중이 없는 빈 홀에서도 자기집 응접실같은 느낌으로 연주하겠다.
여사모님들은 정말 복이 많은 분들인가보다.
여행중의 돌발 상황도 축복으로 가득 찾으니!
저 무대 뒤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참 근사하죠?
암튼...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랍니다.
기왕 시작한 글이니 마무리는 지어야 하니까요.
산에서 내려와 브뤼겐 거리와 어시장을 돌아보려는데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배가 정박해 있는 부두에 생선과 꽃, 과일 등을 파는 어시장 건물이 있고
그 앞에는 샌드위치와 소시지, 차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포장마차를 벌여 놓고 있었다.
시장 구경을 나온 사람들이 모두 비를 피해 노점상의 차일 밑으로 뛰어 들었다.
어찌나 빗줄기가 거센지 앞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미친듯이 퍼붓는 비에 차일 밑에 숨은 사람도 다 젖었다.
덕분에 노점상 쇼케이스에 진열된 음식들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종류의 샌드위치에 연어와 새우가 들어간 것이 눈에 띄었다.
싱싱한 해산물이 흔한 나라임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비는 금새 그쳤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해가 반짝 났다.
아직 가이드와 약속한 시간을 다 채우지 않았기에 나는 얼른 그곳을 빠져 나와 브뤼겐 거리로 갔다.
브뤼겐 거리는 어시장 바로 맞은 편에 있었다.
마치 벽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목조 건물이 베르겐을 상징하는 조형물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그 곳은 유네스코에서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해 놓은 곳이기도 했다.
도로를 가운데 두고 한쪽은 배가 정박을 해 있는 부두고
다른쪽은 목조 건물 여러채가 마치 한 건물인양 붙어 있는 브뤼겐 거리는
장난감 크기의 내 디카로는 그 풍광을 잘 찍을 수가 없었다.
도로가 너무 좁아서 정면으로 찍으면 집 한두 채 밖에 찍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쉬운 대로 몇 장 카메라에 담고는 부랴부랴 버스로 돌아왔다.
오늘 우리는 베르겐에서 보스까지 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 계속 )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 유산인 브뤼겐 거리.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들이 베르겐 명물이다. )
일부러 소설읽듯이 단숨에 읽어 내려가려고
아껴두었다가 이제 냉큼 다읽었다.
음악과 함께 북 까페에 앉아있는 느낌은 왜일까?
우리가 즐거움과 기쁨을 공유하면서
지나온 세월들과 함께
쨘~함이 밀려온다.
시간이 많이 지나 힘들었을텐데 우리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주어 고맙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나무 하나만 보고 숲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아 씁쓰름하다.
암튼 너무 재미있어 계속하세요.
버스가 출발을 했다.
지금부터는 버스를 타고 가는 여정이다.
이 버스는 베르겐에서 보스를 거쳐 브릭스달, 그로틀리, 게이랑에르, 릴레함메르를 지나 오슬로까지
3박 4일 동안 이름도 생소한 노르웨이의 여러 곳을 들를 것이다.
차가 시내를 벗어나자 가이드가 오늘 일정을 대충 설명해 주었다.
베르겐에서 보스까지 가는 길에는 바위산을 뚫어 만든 터널이 많은데
제일 긴 터널은 터널 통과 시간이 30분이 넘는다고 했다.
유난히 단단한 바위산이어서 터널 공사를 하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이 터널이 완공을 한 덕분에 이동 시간은 아주 많이 단축이 되었다고.....
이번 여행의 핵심은 노르웨이의 피요르드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피요르드란 빙하가 녹으면서 자연적으로 생긴 협만으로 바다와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바다가 산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인 셈이다.
노르웨이에는 지형적 특성으로 생긴 많은 피요르드가 있는데
가장 크고 멋진 3대 피요르드를 꼽으라면 <하랑에르 피요르드>, <쏭네 피요르드>, <게이랑에르 피요르드>란다.
우리는 그 중에서 2개의 피요르드를 구경할 예정이라고 했다.
베르겐에서 보스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를 타기 때문에 하랑에르 피요르드는 아쉽지만 못 보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피요르드 관광에 나서 유람선도 타고 산악 기차도 탈 것이라 했다.
그랬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어느 갈림길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오른쪽 길을 잡았다.
알고 보니 왼쪽은 터널로 연결되는 빠른 길이고 오른쪽은 산을 돌아서 가는 길인데
이번이 초행길인 기사가 그만 아차 하는 순간에 오른쪽 길로 들어선 것이다.
큰 버스를 돌리기에는 너무 좁은 길인데다 경사도 심한 언덕이어서 어찌할까 잠시 망서리다가
이왕 들어선 길이니 그대로 가기로 했다.
그 바람에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길다던 그 터널은 못 지나가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가이드는 얼굴 가득 회심의 미소를 띄고 일어서서 큰소리로 말했다.
- 여러분은 정말로 복이 많으신 분들이세요.
이번 여정에 노르웨이 3대 피요르드를 다 보게 되셨네요.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하랑에르 피요르드에요.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피요르드를 구경하실 거라 오늘은 빠른 길로 가서 일찍 쉬려고 했는데....
아무튼 저도 가이드 일을 많이 했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요.
우리 기사님이 스웨덴에서 오셨는데 이번이 초행길이라 길을 잘 모르세요.
그 덕에 예정에 없던 구경까지 보너스로 하시게 되었네요.
지금부터 음악을 들으시며 하랑에르 피요르드를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그 길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가 받은 보너스였다.
구비진 길을 따라 조금 가니까 그 깊고 웅장한 산 속에 바다가 거짓말처럼 들어와 있었다.
호수 같기도 하고 강 같기도 한 물빛 고운 피요르드가 나타나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먼 산 중턱에는 만년설이 하얗게 쌓여 있고
백야로 인해 해가 지지 않는 산 허리에는 구름이 걸려 있다.
모든 풍광이 내 상상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게 그 규모가 너무도 크고 웅장하고 멋있다.
게다가 차 안에 가득한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보는 것과 듣는 것,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그의 음악에 가장 잘 어울리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과 산과 하늘과 구름과 음악.
거기에 점점이 박혀 있는 인형집처럼 예쁜 형형색색의 집들.
내 짧은 언어로 설명을 하기에는 너무도 벅차게 아름답다.
이곳은 유난히 체리 나무가 잘 되는 동네라고 했다.
7월말 수확을 앞두고 나무는 모두 비닐로 덮어 놓아서 체리가 달린 모양은 볼 수가 없었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이 끝나자 하모니카 연주곡으로 음악이 바뀌었다.
즐거운 나의 집, 보리수, 애니로리 등....
학교에서 음악시간에 배웠던 노래들이었다.
오랫동안 듣지도 부르지도 않았던 노래를 들으니 괜히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문득 그 사람 생각이 났다.
내 집이 되어 준 사람.
어느덧 내 고향이 되어버린 사람.
길 떠나온 후에 거의 잊어버리고 있던 아이들 생각도 났다.
보고싶다.
그냥 눈물이 난다.
하모니카 소리 때문이다. (계속)
여행간 사람들이 모두 특별한 인물들이었나보다.
터널이야 길어도 짧아도 뭐 볼거야 있었겠어?
제일 긴 터널을 경험해 볼 뿐이었겠지.
그리이그의 나라에 가서 그리이그의 음악을 들으며 관광을 했다니 정말 감동이 배였겠다.~~~~~~~~~~
멀미가 나도록 심하게 구부러지는 산길을 타고
깎아지른 절벽 밑에 바짝 붙어서 간신히 차가 산을 기어 올라갔다.
어제 내린 비로 물이 확 불어난 폭포가 미친듯이 하얀 포말을 뱉아내며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 쳤다.
운무가 뽀얗게 덮여 길 끝이 잘 안 보였다.
차는 걷는 것보다 더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한참을 가고 또 가도 바깥 풍경은 여전히 장엄하고 아름답고 신비롭고 아찔했다.
어느새 버스 안은 시크릿 가든의 음악으로 바뀌었다.
이번엔 감칠맛 나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내 영혼 깊숙히 들어와 박혔다.
늘 듣던 음악인데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와 가슴 한 구석을 저미어 내는 듯했다.
문득 가슴 저 밑바닥에 감추어 두었던 그리움과 서러움이 음악을 타고 올라왔다.
내 입은 좋다고 환호를 하는데 내 눈에서는 눈물이 나니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해서 눈물이 난다.>
내 메모장에 그 순간의 느낌을 표현한 것은 달랑 이 한 문장 뿐이었다.
효과 음악에 취해 완전히 넋이 나가 버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는지.....
바깥 경치와 완전히 동화된 우리 버스도 이미 현실을 이탈하여 영화 속 한 장면이 되어버렸다.
모두들 환호성조차 내지 못하고 침묵 속으로 숨어 들었다.
버스 안은 여전히 시크릿 가든이 장악을 하고 있었다.
음악에 가슴을 뭉턱 베인 탓이었을까?
갑자기 앞 산에 걸린 구름이 눈 앞에서 핑그르르 돌았다.
너무 어지러웠다.
내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차의 출렁임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파르르 뛰었다.
멀미였다.
아주 지독한 멀미였다. (계속 )
한번 속이 뒤집히니까 어떻게 해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어서 차에서 내리기만을 학수고대 하며 이를 악물고 견디었다.
마침내 차가 목적지 <보스>에 도착을 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 간신히 가방을 끌고는 호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버렸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저녁 밥도 생략하고 실신하듯이 그대로 까부룩 잠이 들었다.
그렇게 깜빡 자는 동안에 나는 멀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다행이었다.
( 끝 )
다음 여정은 새로 방을 열고 쓰겠습니다.
함께 동행하듯이 읽어주신 그대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안녕!! 춘선.gif)
북유럽 여행을 했나 보다 오랫만에들어와 봤는데 낯익은 동네이름이 있어 반가워서..
'노르웨이 베르겐' 꼭11년전에 연수 갔던 곳
언젠가 꼭 한번 더 또 다시 가고 싶은 곳.
너 처럼 분위기 있는 여행은 아니지만
오슬로에서 송네피요르드로 유람선 타고 베르겐으로 향했던 그 곳
만년설을.. 곳곳에 피요르드로 흘러내리던 폭포를..
맑고 깨끗했던.. 아득히 높은 산 양지에 그림처럼 펼쳐져 있던 마을 마을 들..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크지 않은 항구도시 베르겐에서의 추억 만들기도..
오랫만에 추억에 젖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