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기가 최초로 경험한 어떤 기억을 줄곧 간직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부모에 대한 잠재의식이, 훗날 배우자를 택할 때
아들은 엄마같은 여자를, 딸은 아빠와 비슷한 남자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익숙한 얼굴에 대한 기억이 낳은 결과이다.

나에게도 그런 기억을 계속 간직하려는 내 나름대로의 추억이 하나 있다.
바로 "발"에 관한 이야기 하나.....

여고 시절까지만 해도 남학생을 사귀면 퇴학 당하는 줄 알고 살았는데
대학을 들어가니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더 더군다나 기숙사 생활이 주는 묘미가 남달랐다.
그 중의 하나가 "미팅"으로 한달이 멀다하고 남자들을 만나는 재미로 해가 뜨고 해가 졌다.
그러던 중, 눈에 딱 맞는 팀과 클럽을 만들고 수시로 만남을 가졌다.
비율은 엄선된 4대 4.
우리는 서울과 춘천을 안방 드나들 듯 헤메며 함께 했다.
그리고 1학년이 끝나니까 남자들이 군대를 가기 시작했다
K가 가는데 환송회를 몇번씩 하고, 연천으로 자대 배치 받았을 때는 우루루 몰려가 위로도 했다.
그 당시 "연천"은 얼마나 멀던지...

그러다 2학년 여름이 시작 되었다.
다들 이 여름을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여행을 가기로 의견이 통일 되었다.
그런데 자꾸 망설이는 나에게, K가 군에 입대하기 전, 특별히 친구들에게 "산학이 심심하지 않게 꼭 챙겨라"했으니 가야만 한다고.....
아마  집이 인천이라 종종 모임에서 빠지는 나를 마음 착한 K가 신경이 쓰여 한 말인 모양이다.
결국 의기가 투합이 되어서 7명이 "동백장"으로 향했다.

"동백장"...

그때 그 곳은 군인들의 휴양시설이 있고 그 근처 "비인"에는 이대 별장이 있는 아름답고 한적한 바닷가였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민박을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만원이다.
우리는 겨우 제일 큰방을 돈을 두배나 주고 얻고는 한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물론 주인 아저씨가 양 족에 큰 못을 탕탕 박고는 군용 담요로 방을 갈라 주기는 했지만
담요를 사이에 두고 4박 5일을 함께 동거를 한 셈이다.
그런데 그것이 의외로 재미가 있다.
낮에는 둘둘 걷어 놓고는 같이 놀다가 밤이 되면 담요로 가리고 잠을 잤으니 말이다.
그 때는 샤워 시설도 없어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는 후딱 몸을 씼고는 했다.
물론 그 때도 두명이서 담요를 들고 서서 사방을 감시하고는 했다.

바닷가에서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 부르고, 밤하늘의 별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끝없이 모래사장을 걷기도 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싸움도 해서 토라지기도 하고 또 금방 해해거리며 그 여름이 가고 있었다
그 때는 정말 별이 우수수 쏟아질 것만 같은 바닷가의 여름밤이었다.

드디어 마즈막 밤, 우리는 아쉬운 술잔을 함께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잠결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잠이 깼다.
분명히 누군가가 나의 발을 만지고 있었다.
담요로 가려져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 코를 심하게 고는 소리도 요란하다.
아마도 잠버릇이 고약한 내가 잠결에 발가락이 저쪽 경계를 넘어간 모양이다.
꼼짝할 수가 없다.
다들 곤히 자고 있는데 일어나서 불을 켤수도 없었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더 더욱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한없이 흘렀다.
그리고 아침이 되고, 우리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밥 먹고 짐을 싸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때 라디오에서 이수미의 "내 곁에 있어주"라는 노래가 흘러 나왔다.
마침 내 옆에 앉아 있던 B가 그 노래를 가르쳐 준다며 한소절 한소절 따라하게 했다.
원래 B는 남자인데도 이수미의 노래를 기타를 치며 멋지게 부르곤 했다.
그러더니 수첩에다 가사를 적어 내게 건네주며 툭 던지는 말이 "너 발 정말 예쁘더라"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면 어젯밤 범인은 이 친구란 말인가?
그런데 그 당시 나의 머리 어디에서 그런 앙큼함이 숨어 있었을까?
짐짓 모르는 척 하며 "그래 손은 미운데 발은 애기발 같이 예쁘지" 했다.

                                                                                                   후편은 다음에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