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풍경

 

80년 대에, 어느 무명화가가 그린 ‘한가위’란 그림을 본적이 있습니다.

한 소녀가 한 손에는 선물 보따리를 들고 다른 손에는 조심스레 술 한 병을 들고 시골길을 걸어서 멀리 보이는 산 밑의 외딴 집을 향하여 걸어가는 그림입니다.

옷차림새를 보면 날씨가 약간 쌀쌀한 듯 한데 소녀의 뺨은 오히려 밝그레 상기 되어 있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소녀의 머리 위에는 둥근 달이 소녀가 안쓰러운 듯 환하게 비추고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이 5~60대라면 누구라도 그 소녀가 시골에서 상경해서 공장에 다니는 처녀이고 추석을 맞아서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이제 막 차에서 내려서 그리운 가족에게로 가는 모습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 손에는 아버지나 할아버지께 드릴 정종 한 병, 그리고 한 손에는 생각만 해도 가슴 저린, 서울 간 언니 오기만을 눈빠지게 기다리는 동생들에게 줄, 자기는 써보지도 못했던 학용품과 과자봉지, 그리고 어머니께 갖다 줄 설탕이나 미원선물세트라는 것도 단박에 알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연히 소녀와 소녀를 기다리고 있을 동생이나 병든 아버지가 마치 우리 가족이나 되는 듯 가슴이 뭉클해질 것입니다.

‘태극기 휘날리던’ 시대에 가족은 많은 희생을 치르고라도 지켜야할 최고의 가치였고 동생을 위한 형님의 희생은 남자의 자부심이었습니다. 또 형은 동생에게 선망의 대상이요 무서운 개를 만날 때나 동네의 짖궂은 친구들 앞에 태산 같은 방패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명절은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고 가족이란 가난하고 신산[ ]한 삶이라도 억척스럽게 살아내야 하는 자신의 존재이유이고 또한 가장 큰 삶의 위로였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현관에 떨어진 신문에 “명절을 맞아 가족 간의 불화를 극복하는 법”이란 글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작년 추석에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이 재산 싸움하다가 칼부림하여 동생이 누나를 죽인 사건, 친척들이 돈내기화투하다 싸움 나서 골절당하여 병원 간 집안 이야기, 모처럼 모인 손자녀들과 너무 큰 생각차이로 화내고 가버린 노인들이야기 등 미성숙한 사람들이 모여서 일어날 불화를 예방하자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점점 악하고 절조 없어지는 세태에 가슴이 아립니다.

주일에 추석이나 설이 겹치면 작은 교회, 특히 젊은이들이 모이는 교회는 참 허전합니다.

금요일 밤, 명절을 맞이해서 고향으로 간 성도들이 많이 빠진 허전한 초야기도회 후에 모처럼 교회에서 온밤을 지새우며 나의 주변인들을 위한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연로한 시어머니에게 더 따뜻하게 대하지 못한 아쉬움, 아직 앞길이 정해지지 않은 조카들 생각과 미국의 언니가족, 어릴 때 이후 거의 만나지 못하고 생사도 모르는 친척들, 그리고 대부분의 나의 감정과 의지와 사랑이 집결되는 친척보다 훨씬 친근한 우리 교회 성도들... 고향에 간 성도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길은 막히지 않는지, 가는 길에 길 막힌다고 언쟁은 없는지...어느새 외지에 자식 보낸 어미가 되어 성도들 한 명 한 명이 염려되고 속히 와서 함께 해야 저의 영혼도 일상의 평안을 되찾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