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두 초상화


  프랑스의 식민지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 : 1769-1821)는 1793년, 루이16세가 처형된 해에 포병사령관이 되었다. 절대왕정을 타도한 프랑스 대혁명의 급진 공화파는 공포정치로 몰아가고, 또 다른 시민혁명이 일어나자 군의 힘에 의해 이를 진압하였다. 이 때 발탁된 인물이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그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과의 전쟁을 연속 승리로 이끌어 십 여 년 동안 불안과 혼란 속에 있었던 프랑스 시민에게 애국의 희망을 안겨주었다. 1802년의 국민투표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종신통령에 이르고, 1804년엔 황제에 올랐다. 제3신분의 출신이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친 공화정의 혁명으로 권력의 중심에 서자 왕보다 더 높은 황제라는 체제로 역사를 되돌린 모순을 드러낸 것이다. 이를 보노라면 혁명의 논리는 구호일 뿐 조건이 충족되면 탐욕의 이빨을 드러내는 인간의 욕망을 보는 듯하다. 

   역사와 인문학에 밝았음은 물론 전쟁터에서도 괴에테의 소설을 읽었다는 나폴레옹은 시각 이미지에 대한 조예도 깊고 또 이를 최대한 활용하였다. 자신이 장교일 때는 용감하고 배려 깊은 군인으로, 황제가 되었을 때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 권력자의 모습으로 포장하였다.

   1796년 이탈리아 원정에 동반했던 화가 그로(Antoine-Jean Gros : 1771-1835)는 나폴레옹을 패기 넘치는 젊은 장교로 묘사하고 있다.<아르콜레 다리 위의 보나파르트>(그림 1) 는 그 제목부터 단순히 얼굴을 보여주는 초상화이기 보다 아르콜레의 다리를 공격함으로써 전투를 3일 만에 승리로 이끌었음을 선전하는 초상화이다.

   초상화는 장교로서 갖추어야 할 여러 미덕을 복합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멀리 포화의 연기가 가득한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돌진하려는 듯 몸을 앞으로 향하고, 반면 머리는 뒤로 돌려 뒤따르는 부하들을 잠시 독려하는 자세이다. 오른 손엔 군도를, 왼 손엔 삼색기를 들고 있는 포즈와 흩날리는 머리카락은 용맹함을 자아내고, 미간을 좁히고 한 곳을 응시하는 눈은 열정을, 꼭 다문 입은 단호하고 자제력 있는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검은 장교복에 하얀 얼굴은 군인이기보다 귀족 같은 풍모를 풍기니 용맹과 결단, 부하들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귀족적이기 까지 한 모습이다. 그러나 모든 초상화가 그렇듯이 실제의 대상을 그대로 그리기보다 특정한 목적에 맞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소위 이미지 메이킹의 요소가 지대함을 상기한다면 이 초상화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체격이 작고, 몸에 비해 머리가 컷던 실제의 나폴레옹에 비하면 이 초상화의 나폴레옹은 준수한 유럽인으로 미화되어 있으며 용맹함과 배려심, 열정과 자제력을 함께 나타내기 위한 세심한 조형선택이 있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전쟁을 이끌었던 사령관 시절 자신이 치룬 수많은 전투장면을 유화 뿐 아니라 삽화와 판화로 유포하였으며, 황제가 된 이후엔 자신의 대형 초상화를 관공서마다 걸게 하였다. 초상화가 지로데 트리오종(Anne Louis Girodet-Trioson)은 1812년 한 해 동안 36점의 황제 초상화를 주문받았고, 그 중 26점을 다음 해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많은 화가들이 그려낸 나폴레옹의 수많은 초상화 중에도 앵그르의 <옥좌의 나폴레옹>(그림2)이 자주 거론되는 것은 황제 초상화의 목적을 가장 잘 충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인간을 위대하게 나타내는 것은 얼만큼 가능한 걸까. 아무리 커도 실내에 들어가야 하는 캔버스의 크기에서 극대한 권력을 나타내기 위하여는 어떤 방법을 써야할까. 이 초상은 신격화의 최대한을 보여주고 있다. 위압적인 정면 자세와 양 손의 긴 지물은 제우스를 떠올리며, 가슴의 흰 모피가 이루는 반원형과 배경의 원형장식은 후광의 효과를 나타내어서 중세의 절대적인 하느님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연상 작용 속에 실제 나폴레옹이 들고 있는 것은 카알 대제의 검과 ‘정의의 손’이니 이는 나폴레옹이 프랑스 왕의 정통성을 계승한다고 암시하는 것이다. 제우스와 하느님, 프랑스 왕 등 가장 높은 상징의 모든 도상을 동원함으로써 나폴레옹을 초월적인 절대자로 군림하게 하는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왕과 수많은 귀족, 시민의 피를 바친 프랑스혁명이 어찌 이러한 절대자를 허용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역사는 심판한다.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나폴레옹이건만 1812년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면서 그의 인생은 곤두박질친다. 1814년 엘바섬으로 유배되고, 1815년 3월에 탈출하여 다시 황제에 취임하였으나 100일 천하로 끝나고 다시 유배된다. 끝 모르는 욕망은 파멸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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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앙트안느 장 그로, <아르콜 다리 위의 보나파르트> 129.5x94cm, 1796년경, 베르사이유,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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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도미니크 앵그르, <옥좌 위의 나폴레옹>, 260x163cm, 1806, 파리, 무기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