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C03641.JPG




 

봄 내내, 문 밖에만 나서면, 그토록 나를 취하게 했던,

노랑과 연두의 물감을 푼 캔버스 같았던, 유채꽃 천지가

이제, 들판은 잘 익은 밀밭

산은 갈색으로, 모두 바삭 말라 덤불이 되었습니다.

그 잘 마른 덤불에 더운 바람이 불어오면,

산불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난 7월에도 말리부 캐년에 불이 났습니다.

집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거슬린 산과 붉은 색으로 변한 나뭇잎이 철 이른 단풍을 보는 듯한데

어제 또 이 동네에 산불이 났다고, 밖에서 집으로 들어오면서

몇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뉴스를 보라고, 칼라바사스에 불이 났다고,

헬리콥터도 떴다고 합니다.


불은, 그리 멀지 않은 로스트 힐이란 곳에서 났고

무사히, 별 피해 없이 속히 불을 잘 진압했습니다.


로스앤젤리스 근교는 다 그렇게

비가 잘 오지 않는데다 캘리포니아의 태양은 또 얼마나 뜨거운지,

게다가 우리 동네는 사면이 산으로 빙 둘러싸여 있습니다.

살랑살랑, 낮에는 따뜻한 바람이 수상쩍게 불어오구

밤이 되면 서늘한 바람이 늘 붑니다.


시작을 알 수 없는 바람도 신비입니다.

성경 전도서에는.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그 불던 곳, 시작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밤, 바깥에 나가면

바람 속에는 섞여오는 냄새가 있습니다.

텍사스에서 잠시 살 때에도

새벽 기도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오면

이 냄새 섞인 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람에 섞여오는 낯선, 냄새!

싸아한, 싫지 않은 냄새, 향기라고 할까요?


14년 전에도, 작년에도.

나는 그 바람에 섞인 향기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새벽이나 밤에 그 향기가 더 분명하게 날아옵니다.


무한한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향기!

광야나, 사막의 외로운 곳에서, 꼭 이런 향기가 날 것 같은데,

가슴 한 편을 훑고 지나가는, 잘디잔 전율을 일으키게 하는 이 향내는,

바로 산과 들이 메말라가는, 마른 덤불 냄새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먼 곳에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 향내 속에는,

막연한 기대와 설렘,

또 어떤 불안과도 같은 스산함과 외로움,

고갱 그림의, 그 강열한 색채 속에서 느껴지는 고독감 같은

형용하기 어려운 신산함이 담겨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리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향수, 또 고독이 아닐 런지요....


흙냄새와 마른 덤불 냄새가 섞여서 불어오는 바람,

낯설어 하면서도 기다리게 되는

미망 의 그 바람이,

검푸른 밤, 별이 총총한 오늘 밤에도 불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