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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배에서


바다 위에서 바다를 정말 실컷 보았습니다.


바다위에서, 잠자고 먹고 쉬고 걷고 운동하고 책 읽는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둘이 사용하는 좁은 방에도 어느 듯 익숙해집니다.


항구를 떠난 배는,

30시간을 쉬지 않고 바다 위를 달릴 것입니다.

망망대해.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그 속에서 무념무상, 무위, 무연...이런 단어들만 생각납니다.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또 가보지 못한 지구의 여러 곳.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은 참 스케일이 크시고

자상하시고, 멋쟁이시다 하면, 너무 유치한 말인가요?


깊은 북청색의 바다는 침착하여 무엇이나 포용하려는 듯합니다.

꼼꼼히, 또 깊이 들여다봅니다.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듯이.

그러나 바다는 침묵합니다.

배는, 바닷물을 가르며 달리고

배는, 파도를 만들며 달립니다.


깊은 바다, 가끔씩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물새 떼가 보이면

곧 물위로 나온 고래의 V자 꼬리나,

펄쩍뛰는 고래의 몸통이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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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한가함을 나름대로 즐기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천천히’와 ‘느리게’ 속에

삶의 기품과 여운이 존재해 있다고도  하는데....

 

날씨가 흐려지면서, 안개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북 청색 물빛도 회색으로 변해갑니다.

온통, 뿌연 은빛의 세계.

배는 자주 뱃고동을 울립니다.

‘여기 배가 가고 있다’고 알리는 신호일까요?



 

* Formal 차림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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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의 만찬 중, 두 번은 정장(Formal)을 입어야 하는데

오늘 저녁은 그 두 번째로 정장을 입는 날입니다.

우리 일행은 평상복으로 입어, 조금 미안했지만

5층 다이닝 룸의 지정한 테이블에서

오늘은 주방장이 권한다는 랍스터를 주 메뉴로,

극진한 서비스를 받으며,

분위기에 어울리는 와인도 한 잔씩 했습니다.

여행을 위한 축배도 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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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에도 5층의 한 카페에 앉아 늦도록 담소하며

간간이 음악을 들었습니다.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의 트리오가 클래식 소품을 연주하고

다른 곳에는 한 남자가 피아노를 치며 올드 팝을 부르고 있고,

또 다른 곳은 키보드에 드럼까지 흥을 돋우는데,

그 옆에는 춤추는 쌍들이 있었고

열심히 카지노에 앉아 돈을 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짐을 싸고, 바삐 움직여야하는 번거로움이 없는,

안락하고 릴렉스한 여행.

그래서인지 노인 숫자가 단연 우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나이가 더 들어도 할 수 있는 여행인 것입니다.


 

* 여행 7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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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은빛의 하늘과 엷은 회색의 바다입니다.

아침 식사 후, 5층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립니다.

면세점, 보석가게, 화랑, 빈 극장의 의자에 가서 앉아보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잡지도 뒤적이며, 슬슬 무료함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조금 먹으려 결심을 해도, 너무도 많이 차려진 음식 앞에서

조금씩 집다보면 한 접시 그득하게 되곤 하여

이제 먹는 것에도 진력이 나서(참 배부른 소리만 하고 있지요?)

셀러드와 피자 한 조각, 디저트로 간단히 점심을 마치고

또 5층으로 내려 와, 망망대해를 바라봅니다.

배는 조용히 물 흐르듯, 흘러만 갑니다.


곧 방으로 가서, 그동안 풀어놓았던 짐을 챙길 것입니다.

오후 6시에 배는 캐나다의 빅토리아 섬에 닿을 것이며

한 밤에, 시애틀로 향해 떠납니다.


크루즈 여행은 내일 아침이면 끝이 납니다.

조금 아쉽기도 하고, 꿈꾸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처음으로 해 본, 크루즈 여행!

7박8일의 여행의 의미를 다시 곰곰이 새겨봅니다.


사람의 일생이 하나의 긴 여행이라면,

이 여행은, 그 여정 속에서 얻는

특별 보너스가 아닐까?


가슴에 한가득 얘기꺼리들을 채우고, 에너지를 채우고

다시 생의 여정을 계속하는 것이 아닐 런지,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수고했다고

하나님이 제게 특별 보너스를 자주 주시는가,

뭐, 이런 생각들을 해 보며 감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