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글 
 

               <번개팅 스케치에 붙여...>

                                                                             2008.08.06 17:34:15
                                                                                                         경기63.용상욱

 

하루 한번은 기어코 부슬비라도 뿌려야 성에 차 하던 날씨가 오늘따라
구름만 살짝 드리웠을 뿐 비는 저만치 물러나 있다.

비록 대면은 처음이지만 홈피 상에서 간혹 본 얼굴들이라 낯이 익다.
복도에서 처음 마주 친 분이 가볍게 인사를 한다.
나중 보니 9기 구창임 후배님이다.

 

청바지를 입든 신사복을 입든 바탕이 미남인 권오인 동기가
예의 카메라를 메고 들어서니 비로소 덜 쑥스럽다.

한선민 선배님이 차분히 퀴즈문제를 낸다.
두 문제밖에 맞추지 못 하겠다.

 

공연히 노래품바 시리즈를 쓴 죄업으로 노래를 하라는 부탁을 받고
대단치도 않은 실력에 빼는 것도 남세스러워 씩씩하게 나선다.

그런데 단상에 올라간 것이 실수였다.
갑자기 앞에 앉아 있는 분들이 보이지 않고 눈앞이 하예진다.
아니 이 나이에도 부끄럼을 탈 간(肝)이 남았나?
청중이 보이지 않으니 노래는 애시 당초 틀린 것이다.
4기 황금이 님의 손녀 강리라도 쳐다보며 부를 걸...

 

축하곡이라는 멘트가 무색하게 <이별의 노래>를 부른다.
가사를 완전히 외우는 게 몇 곡 없다보니...

그리고 예의상 외쳐주신 앙코르에 또 한 번 실수를 한다.
고맙다고 사래질을 했어야 하는데 앙코르곡까지 불러댔으니...
벨리니의 <불 꺼진 창>을 부르는 데 불이 꺼지려던 것을 가까스로 넘겼다.

“앙코르 받았다고 앙코르 곡까지 부르시다니...ㅉㅉㅉ”
김순호 사회자의 멘트다.

 

 잘 먹고 잘 놀고 2차 노래방이다.
생전 처음 본 신발 벗는 로마의 원형계단처럼 생긴 노래방이다.

김순호 님이 철버덕 주저앉아 <봄날은 간다.>를
리얼하게 연기하며 노래하니 좌중에선 즐거운 폭소가 터진다.

 

노래방 목록에 이흥복 후배회사에서 제작한 노래가 2곡이나 있다.
효(孝)라는 바람직한 주제를 사업테마로 하는 참 재주꾼인 후배이다.

그런데 모두들 노래는 정말 한 가락씩 하는 솜씨다.
최진희의 <우리는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라는 곡을
초등학생 손짓하며 지도하듯이
편하고 멋지게 불러 제치는 김영주 위원장!

“똑똑하니께 노래는 못 할 줄 알았는데 노래도 너무 잘 부르더라.” 는
한 선배님의 멘트가 정답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선민 선배께서는 슬그머니 먼저 발걸음 하신다.
 
벽에 기대어 선 채 심수봉의 <비나리>를 부르는 도산학 님의 모습은
그대로 한 떨기 피아프였고 곡조가 심금을 울린다.

아! 눈물이 솟구친다. 나는 또 한 번의 실수를 깨닫는다.
땀으로 젖은 쉰내 나는 손수건으로 그 눈물을 닦아야 했을 때,
여름에는 손수건을 두 장은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피아노 열쇠구멍의 KEY가 낮은 도 음이라는
어려운 상식을 알려 준 정순호 후배는
처음에 좀 빼다가 그야말로 신나는 팝송들을 계속 터트린다.

김영주 님의 어깨와 발끝이 어우러진
예쁘고 사랑스런 춤동작과 김자미 님의 멋들어진 춤사위가
정후배의 흥겨운 노래 리듬이 터질 때마다 힘찬 날개 짓을 한다.

 

<요해랑사> 스타일의 엔카와 중국노래를 부르는 권오인 동기,
그는 그것 말고도 분위기 잡는 노래를 불렀고...

 

그런데 인일의 가수왕은 따로 있었다.
2기 김은희 님이 심수봉의 노래 두어 곡을 부를 때 가수왕은 결론이 났다.
음정, 박자가 어찌 그리 완벽한지...

나는 눈을 지긋이 감고 쫑긋 귀를 기울인다.
음정, 박자가 저리 완벽하게 부르는 노래는 대체로
초등학생 동요처럼 감정이 없는 흐름일 것이다 하고...

그러나 슬쩍 음조를 바꾸며 꺾어지는 바로 그 부분에서
정말 멋들어지게 꺾으시는 게 아닌 가?

 

자 다시 3차 저녁 식사다. 마침 점심을 살짝 요기하길 잘 했다.
기왕에 엉덩이 무거운 놈 돼보자.

음식점 현판의 전서로 쓴 액자를  한 글자는 영 모르겠다.
연서회회장인 김영희 후배님이 있었으면 저 글자를 알 텐데...

한 여름 날의 저녁은 즐거운 담소와 함께 저물어간다.
객으로서도 그저 고맙고 즐거운 날이었다.

인일홈피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