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한선민
이동파 화가들 다섯번째
?
은희언니 원하시던 Nikrolay, Yaroshenko의 그림은 생각보다 찾기가
수월치 않았는데, 많지않기 때문에?너무 짧게 끝내고 싶지 않은 생각에
그림의 반경이 너른 Vasily Polenov의 그림을 함께?하려고 합니다
Polenov의 그림들은 색감도 화사하고 주제도 다양하고 다른 이동파들에
비해 유럽의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Nikrolay, Yaroshenkos.
이동파의 선두 멤버이며 사실파 화가인 Nikrolay, Yaroshenkos의?
특징있는 초상화 입니다.
그림 먼저 보시고 천천히 설명 들으세요.
Portrait of P.Strepetova, 1884??Oil on Canvas?
Life is Everywhere, 1888??Oil on Canvas
?
Course Attendant, 1883??Oil on Canvas?
Stoker, 1878??Oil on Canvas?
In Warmer Lands, 1890
The Prisoner, 1878
The Student, 1881
- yaroshenko_strepetova.jpg (36.4KB)(1)
- 443px-Nikolaj_Alexandrowitsch_Jaroschenko_004.jpg (34.8KB)(0)
- yaroshenko_life.jpg (64.2KB)(0)
- yaroshenko_stoker.jpg (47.6KB)(0)
- 389px-Nikolaj_Alexandrowitsch_Jaroschenko_002.jpg (18.1KB)(0)
- yaroshenko_kursistka.jpg (47.1KB)(0)
- 364px-Nikolaj_Alexandrowitsch_Jaroschenko_003.jpg (15.2KB)(1)


1. 하늘색 풍선 / 엘라나 깜부로바
-> 슬픔의 목소리를 지닌 여가수가 노래하는 슬픈 '여자의 일생'
2. 라라의 테마 / 모스크바 발랄라이카 사중주단
-> 광활하게 펼쳐진 순백의 설경과 지바고와 라라의 슬픈 사랑이 떠오르는 연주곡
3. 백만송이 장미 / 알라 뿌가쵸바
-> 심수봉이 노래해서 유명해진 곡으로 최근에는 엠씨스나이퍼가 힙합버전으로 부르기도 했다.
4. 황금빛 숲이 그만두게 했어요 / 트리오 렐릭트
-> 이사도라 던컨과 세기의 사랑을 나눴던 시인 예세닌의 서정시를 아름답게 노래한 곡
5. 백학 / 이오시프 꼬브존과 모스크바 국립 아카데미 합창단
->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비장하고 장엄하게 깔렸던 곡
6. 엄마 / 아니타 최
-> 한인 교포 3세 가수 아니타 최가 1997~1998년 러시아 전역을 감동시켰던 발라드
7. 모스크바의 밤 / 트리오 렐릭트
-> 고요하고 한가로운 모스크바의 여름밤의 정취를 그린 노래
8. 촛불이 타고 있었지요 / 알렉산드로 빠드블로또프
-> 눈내리는 겨울 밤,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소재로 한 빠스째르나끄의 시
9. 졸고 있는 수양버들 / 발렌찌나 빠나마료바
-> 사랑하는 여인과 이별 후 겪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노래한 러시아 로망스
10. 저의 잘못이군요 / 모스크바 발랄라이카 사중주단
-> 사랑과 이별, 그리고 추억의 스토리가 짐작되는 구슬픈 발랄라이카 연주곡
11. 스베뜰라나의 자장가 / 엘리나 깜부로바
-> 평화롭게 꿈나라에 갈 수 있도록 아기에게 불러주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자장가
12. 역마차가 달리고 있네 / 트리오 렐릭트
->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기는 마부의 안타까운 심정을 노래한 러시아 민요
13. 머나먼 길 / 가& #46625;째바 &모스크바 발랄라이카 사중주단
-> 메리 홉킨의 'Those Were The Days'로 더 유명한 곡으로 원래는 러시아 민요
14. 종소리는 단조롭게 울리고 / 돈 코사크 합창단
-> 검은 눈동자를 가진 여인에 대한 열정적 사랑을 노래한 대표적인 러시아 민요
15. 하얀 자작나무 / 알렉산드르 빠드볼로또프
-> 한겨울 자작나무를 보며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노래했다.
16. 스펜까 라진의 노래 / 아루뚜르 에이젠
-> 17세기 농민 봉기를 일으켰던 스펜까 라진을 소재로 한 러시아 노래
17. 국화 꽃은 시들고 / 발렌찌나 빠나마료바
-> 시들어 버린 국화 꽃을 보며 연인을 추억하는 로망스
18. 깔린까 / 그라보보꼬프 합창단
-> 귀에 익은 대표적인 러시아 민요로서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 연속듣기
내가 읽고 있는 러시아미술사를 집필한 이 젊은 여성은
참으로 일생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10년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을
방문하고 맞이한듯싶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나왔으며 문학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던 그녀가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아 러시아에서
미술사학부에서 말레비치론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지금 미술작품에서 느꼈던 감동을 다른이들에게 전하는 일을 삶의
과제로 생각하고 집필도하고 현장에서도 아트 디렉터로도 일하고있다고한다.
참으로 부럽기 그지없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여성이다.
사람은 누구나 몇번은 큰 기회가 온다고 한다.
단지 그걸 감지하지못하거나 용기가 없거나 게을러서 못본체 했거나.........
그러나 지금이라도 우리도 긍정적인 사고로 아름다운 꿈을 꾸면 어떨가
하는..... 실로 오랜만에 장마중에 잠깐 햇빛을 쐬여본 일요일의 밤이다.
야로센코의 작품들을 혜경이 보고 올려달라한것은 바로
이 '삶은 어디에나'란 그림을 접하곤 처음엔 이그림이 도대체 무얼
그린 것일까 잠시동안 생각을 해보지 않을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즈음 흔하게 보는 콘테이너박스를 개조해 주거공간을 만들어
간이 숙소로 쓰고있는 광경을 내가사는 이곳에서 보아와서 그런건지
잠깐 혼동이 왔었다.
아!.........참 여긴 러시아 그것도 1800년대이지..........그리고나서 책을 읽어보니 이렇다.
니콜라이 야로센코가 그린 이 '삶은 어디에나'는
죄수 호송열차에 타고있는 사람들이 쇠창살이 달린 차장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을 그린것이란다.
이 열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차르에 반대하고 개혁을
주장하던 정치범이다.
죄수 그것도 정치범들이 대부분이라는데 여기 보이는 여인과 아이때문에
언듯 유형길에 오르는 죄수들을 태운 호송열차라는걸 감지하지 못했지
싶기도하고...................
아기와 여인은 아기 아버지를 따라서 유형길에 같이 오른 것이다.
.........계속............
.....ㅎㅎㅎㅎㅎㅎㅎㅎ.......세살짜리가 아니라
일세대 이세대 삼세대하는....그 삼세 랍니다.
우리말 한참 떠나있으니 그럴거라 생각도 들고
덕분에 유쾌하개 웃었어요.
그리고 야로센코도 그렇고 우리가 올렸던 중요화가들 외에
남은 러시아 이동파화가들 그림들이 여러곳 찾아다녀도
드물더라구요 ....이 진숙.....이 쓴 러시아 미술사에도 그렇구요
이 저자도 다년간 러시아에서 공부하면서 수집한 참고 서적은
우리로서는 러시아어엔 문맹이나 다름없으니
참고서적은 주욱 나열해 놓았어도 그림의 떡일 거구요.
참 이 러시아미술사는 저자가 문학을 한 사람이라서
딱딱하지않고 좋아요.
어떻게 구해 보내줄가요. 필요하면 말해주어요.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이랍니다.
혜경이 말대로 우리가 흔히 새장속에 새를 그린 그림을 보기도했는데
이 그림은 완전히 상황이 반대이죠.
이 죄수호송열차가 떠나면 비들기들은 날아갈텐데 어느곳이라도
자유롭게말이지요.
[두건을 쓴 창백한 젊은 여인과 비들기에게 모이를 주는 아기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성모 마리아아 아기 예수를 그린 옛그림을 연상시킨다.]
그렇게 설명한것을 읽으니 하긴 그럴듯 합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기독교 신앙이 돋보이는 종교문학인것을
감안 한다면 야로센코가 그림으로 연출한 시대의 연극의 한장면일 수도 있겠네요.
내용에 천사 미하일에게 가난한 주인공 구두두선쟁이가 하나밖에 없는
다 떨어진 외투를 주고 집으로 데려와 돌봐준것처럼
인간 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답은 바로 '사랑 '
비록 유형지의 앞날의 삶이 불투명할지라도 그 삶도 살아가야할
삶 이므로....................
어느 블로그에선 이 그림하나로 거의 단편수준의 글을 올리기도
해서 재미있게 보긴했는데.......너무 자세하면
스스로의 주관적인 그림 해석이 손상될것같아 옮기지 않았읍니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사회상에 표현들이
화가들에 의해서 그려진 그림 한작품 한 작품에서도
읽을 수가 있지요.
우리나라 에서 전시되었던 간딘스키와러시아 거장전에 왔다는
페로프에 그림 한 작품도 올려봅니다.
|
예술감독을 해도 너끈하게 잘할거예요.
야로센코나 몇몇 이동파 화가들이 물론 러시아 민중들에게
다가가려고 만든 화가 집단이지만 특히 더 하부층의 고단한 삶의
편에 서서 우리마음을 흔들어주는 작품들을 그렸네요.
레핀이 볼가강의 예선인부들의 고단한 삶의 노동장면을 리얼하게
그린것과 같이 말이지요.
큰 우물이라고 모든 동네사람들이 물을 길어다 썼지요.
그리곤 언제 수도가 생겼는지 그건 기억이 잘 안나네요
물지게로 어른들이 길어다 큰 드럼통, 엄청큰 독에다 길어다 붓는걸
본 기억이 어렴프시 납니다.
수도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19세기 러시아에서도 그것도 겨울에
도시의 가난한 어린아이들이 썰매에 물을 싣고 힘겹게 끌고 가는 이그림
혜경이 올려준 어린아이 한명 한명의 디테일화는 대따 크게 잘 보입니다.
앞니가 깨진 소년의 모습 있는 힘을 다해 앞을 향해 가는 모습들
연약한 어린아이들이지만 혜경이 말대로 있는힘을 다하느라 목을
길게 느리고 있고 소녀도 나름대로 주어진 일에 열중하고 있네요.
이 트로이카는 러시아를 이끌고 나가는 희망을 보여주는 상징인듯합니다.
비록 힘들지만 미래를 향해 열심히 희망을 갖고 나가는 러시아의
앞날을 보여주는듯하지요.
이제 더 자세히 보니 뒤에 어른이 사력을 다해서 밀고있네요.
겨울이라 물통을 실은 썰매엔 쏟아진 물이 얼어있고
그냥 이런 그림은 그냥 보이는데로 보는것이 좋을듯도 합니다.
저위에 야로센코도 1880년대에 초기 좌파 진영의 진보적인
젊은 학생들을 그렸다고 합니다.
유명인사도 아니고 재력도 없는 학생들이니 물론 무보수 였겠지요.
그러나 야로센코는 열정과 패기로 새로운 사회건설을 위해서
젊은 학생들을 그렸고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이
화가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공산혁명 실현될 수 없는 실패한 혁명이지만 인간이 꿈 꿀 수 있는
그러나 실현될 수 없는 유토피아의 달콤한 꿈일 뿐이지요만...................
실은 읽고있는 책에 야로센코에 올려진 '그네 에서'나
'청강생'은 저위에 그림하곤 다른 분위기에 밝은 그림이라
그걸 올려보았으면 했는데..........복사나 다운을 못받게 해놓았네요.
이야기 꺼리도 무궁무진하구
음악두 좋구.....
야로센코의 그림 보면서
저두 쇠창살과 비둘기 보며
극명한 대비를 시킨 작가의 마음을 읽었어요
천진무구한 어린이 손은 쇠창살 밖으로 나와 있더라구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유에 대한 갈구를 작가 나름대루 표현한게 아닌가 하구여......
그리구 페로프의 트로이카 디테일한 그림보며
전 솔직히 눈물이 나왔어요.
그 그림 음이 하고 있을때 라라의 테마곡이 흐르면서
가슴을 후비는것 있지요.
저 어린것의 그렁그렁 한 눈물 맺친 눈망울을 보며
앞으로 짊어지고 갈 삶의 무게와 그네들의 인생을 생각하구.....
그러면서도 그아이들이 겪으며 생길 삶의 면역이나 저항력이
앞으로의 펼쳐질 고난의 인생길도 잘 헤쳐 나갈것이라는.....
그리구 서로 나눌 가족애도 그 무엇가도 바꿀수없는 큰 자산이라는것을.......
좋은 그림과 글보며
오늘도 행복한 아침입니다.

확실히 늙긴 늙었네요.....인정하지 않을수 없어요...ㅎㅎㅎㅎㅎ...
안경을 쓰고 좀 진하게 쓰면 오타가 안나는데
좀 귀찮아서 엷게 쓰면 다시 한번 읽으면서도 지나치게 되는군요.
금욕적.......금옥이 아니라 ....금욕이요.
금욕 [禁慾] [명사] 욕구나 욕망을 억제하고 금함.
내일 좀 바빠서 들락거리며 쓰니 더 그러네요.
그래도 내가 좋아서 하는일이니 어떤 시간보다 더 즐겁지요....ㅎㅎㅎㅎㅎ...
그리고 비가 온뒤끝이라서 그런지 우리집이 헤경이도 알다시피
동네랑 좀 떨어져 있어서 배선관계도 길게 들어와있고 해선지
인터넷이 이어졌다 끊겼다 해서 뭘좀 하다 판치고 하네요.
오늘은 특히 더 ...그래서 전원을 켰다 다시 껐다 이러고 있읍니다요..ㅎㅎㅎㅎ...
돌아와 '악령'을 쓰고 있었다.
깍지낀 두 손을 무릎에 얹은 도스토에프스키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그러고보니 시선을 어느 한곳으로 두고있지 않군요.
사형을 면하고[1849년 봄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좌되어 다른 서클 회원과 함께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총살 직전 황제의 특사로 징역형으로 감형됨 만4년 유형생활을 함]
이제 이념투쟁을 거부하고 인간의 심연에 감추어져 있는 선과 악의 대립에
주목하면서, 정신적인 영역에서 러시아의 구원을 찾는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구원의 희망은 희박하다. 그의 소설에서는 악에 대한
묘사는 풍부하고 다채롭다.
그러나 그가 구체적인 대안으로 제시한 인물들[미성년의 므이슈킨 백작 카라마죠프 가의 형제들의
셋째 아들 알렉세이]은 유령처럼 실체가 없고 유약하다.
카라마죠프 가의 형제들은 특히 더 알려져서
이 작품은 영화로도 상영되었었는데 율부리너와 마리아셀 이 주연한 영화로도 나왔었고
소설이 하도 유명해서 문학소녀시절에 대부분 탐독하지않았을가싶다.
이 초상화에서 갈색과 어두운 올리브그린 색의 조합은 그의 금옥적이면서
깊은 내면의 분투를 표현하는데 적절하게 사용되었다.
이 초상화는 1872년 트레티야코프의 주문으로 그려졌다
트레티야코프는 당시 존경받는 문인들의 모습이 최고 작가들의 그림으로
남겨지기를 원했다고한다.
그 소망은 이루어져서 도스토에프스키에 관한 수천편의 논문보다도
가장 집약적이고 분명하게 그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미술사를 집필한
저자도 이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러시아에서 받은걸로 알고있다]
그러고 보니 이보다 더 한 페로프에대한 극찬이 있겠는가도 싶다.
그의 모스크바에 있는 동상도 페로프에 그림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도 하고............
러시아 미술사에 중요한 인물들인 화가들이라고 하니 보람이 있는 일입니다.
바실리 페로프도 러시아의 시대적인 상황에서 절대로 빠져서는 안될 화가이고
러시아 시대상황에 요구에 충실한 화가였으며 러시아 회화사의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화가라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회화에서 '비판적 리얼리즘' 이라는 복잡한 원칙을 정립하는 데
전거가 되는 이가 바로 페로프랍니다.
그는 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나 아버지 성을 물려받지 못한 태생이었다고 합니다.
우리 조선시대에 양반의 적자가 아닌 서자들의 서름이 얼핏 생각나기도합니다.
'페로프란 이름은 고향의 미술학교에 다니던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라고하고
'페로'는 러시아어로 펜을 의미하니 그의 재능이 무엇인지 알만하지요.
그도 이 별명이 좋아서 평생 이름으로 사용했다합니다.
그는 풍속화 '마을의 예배' 로 아카데미 금메달을 받고 외국 유학 특전을 받았다고 합니다.
같은 해에 그린 '마을의 부활전 행진'운 성직자를 조롱 한다는 이유로 출품을 취소당했는데
부뢀절 행진이 시작되었는데 아직도 술에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성직자가
교회문을 나서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랍니다.
이사건때문에 '페로프가 이탈리아로 유학 가기전에 솔로배치[유명한 유배지]섬으로
떠나려고 했나보다'라고 사람들이 수근거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비판적 리얼리즘의 효시라고 합니다.
이왕지사 혜경이 페로프의 그림에 끌려하니 우선 재미있는 이야기가 곁들인
그림을 올려놓고 또 도스또에프스키 초상화의 이야기도 끌어와 보렵니다.
마을의 예배..........1861년.....아카데미에서 금상을탄 작품.......

Easter Procession in a Village. 1861
그러게요 저때만해도 페로프는 해학적인 그림을 그렸는데
러시아 사회의 사회현실이 웃을 수 있기만 할 때가 아닌때라서
그가 사회 저변에 있는 인간군상들에게 향한 애뜻함을
그리기 시작한거같고 상으로 간 유학길도
대부준 이탈리아로 가는데 페로프는 프랑스로 갔답니다.
1860년대는 혜경이도 알다시피 미술의 중심지가 불란서 파리 였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였잖아요.
마네가 풀밭 위에서의 식사, 올랭피아 로 새로운 미술 인상주의를
준비하고 있던 시기로 파리는 역동적이고 활발한 기운이 넘칠때였지요.
그러나 페로프는 이것이 신선하지않고 그림 그리는 기술의
측면에서는 눈에 띄는 진척이 있었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창조 할 수 없었다 고 했답니다.
그래서 유학도 중도 포기하고 러시아로 돌아왔답니다.
돌아와서 1865년에 완성한 '마지막 여행'은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랍니다.
참 요즈음엔 이말이 그렇게 썩 마음에 드는 표현이 아니지만
그시절 러시아엔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이해가 되어서지만
페로프는 파리에 부르조아들의 행복한 도새생활을 그리는
인상주의가 마음에 당연히 들지않았을거라 짐작이 되긴합니다.
부르조아니 프롤레탈리아니 하는 단어는 이데올로기에
강한 표현과 느낌을 주는 때문입니다.
분단국가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지만서도..........그러네요.
여튼 돌아와서 러시아의 가난한 프롤레타리아,
농촌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가부장적 세계의 붕괴를 의미하는
마지막 여행이란 역설적인 제목은 지상에서 떠나는 마지막 여행
즉 죽음의 여행 묘지로가는 여행을 뜻합니다.
<어린 여자 아이는 관을 부여잡고 있고, 아직 이별을 준비하지 못한것이다.
분명히 관속에는 아이들의 아버지가 누워 있고 어린아이 둘 딸린
젊은 엄마의 등만큼이나 말 등도 구부러져 보인다.
버팀목인 남편이 없는 삶을 이제 어떻게 살아 가야 할것인가?
더구나 엎친데 덮친격으로 어린 아들의 얼굴엔 병색이 완연해 보인다.
겨울의 해는 벌써 길게 노을로 번지고있다.
해가 지기전에 묘지에 도착할 수가 있을가 언땅에 남편을 묻고 돌아설
수는 있을가 아무도 함께 해 주지 않는 이 장례식 풍경은
그들이 살아 내야 할 삶의 풍경이다.
바라만 보아도 암울하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장면이다.
해학적인 웃음을 담은 페로프의 조밀한 화면과는 달리 페로프의
화면 구성은 좀 더 단순하고 주제애 집중하는 힘이 생겼다.>
가난하고 소외받은 자들에 대한 연민과 그들에게 눈물을 강요하는
불의한 세상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여서
올려 봅니다.
몇몇 사람들 거기가서 감동을 받고 인생을 확 바꾸는 계기를
삼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엄동설한에 동사할것 같은 추위에도 한시간 이상 기다리면서 관람시간을
기다리게 되곤 했답니다.
러시아에서 가지고왔다는 화집은 딸이 가져간것같고
각 박물관 미술관 소개책자 화집은 어제 우리집양반이 찾아주었어요
자기 서가에 꽃혀 있었나 보더라구요.
오늘 아침에 우리 손주 백일상 잡혀주고 사진 몇장 찍어주고
염천이라 저녁나절에 집뜰에 나가 사진 몇장 더 찍어주고
식구손님 몇명은 우리집양반이 밖에서 대접해 드린다고 해서
아주 가볍게 하루를 넘길것 같아서 기분이 좋답니다.....ㅎㅎㅎㅎㅎ...
그저 일 안하게 되면 좋은 그런 나이가 되었어요.
정말 러시아 극심한 빈부의 차이로 공산혁명까지 일어난 나라이지만
자기들 문화유산은 잘 지켰고 지켜가고있으니 대단하지요.
한국어로 된 화집이라서 읽을 수도 있고 너무 화려해서 눈을 뗄수가 없네요.
남대문 안가본사람이 가본 사람보다 더 아는체 한다는 소리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실감하고 있어요....ㅎㅎㅎㅎㅎ......
그러나 이리 미리 정보를 다 알고 가보면 모든것이 더 반가울거 같고
아깝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올것같답니다.
저위에 올린 새 잡는 노인의 풀피리로 새소리 나게 하면서
유인하는 장면이 긴장감과 함께 .........살그머니......
아이는 눈이라도 깜박이면 안될거같아 쳐다보는 순간도 조심스러워 보이죠.
현장감이 함께 느껴지네요.
참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슈 발물관은
300만점이 넘는 양의 미술품 컬렉션이 석기시대부터
20세기 현대 미술품 까지 있답니다.........어~휴......그저 입이 안다물어지죠........
레오 나르도 다빈치의 베누아의 성모 리타의 성모는
하늘이 두쪽이 나도 보아야 한다는군요........하늘이 두쪽이 난다.....ㅎㅎㅎㅎㅎㅎ.....
그리고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는 세상에 이토록 아름답고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붉은색이 있을가 한다네요.
그러니까 실제로 보면서 감동먹을 작품들만 골라보는 그런 스케줄을
미리 짜서 가봐야 한다는거죠
여튼지간에 하나 하나 찝어주는 소개 이거 굉장히 도움이 될듯해서
준비공부를 많이 해야겠어요.




정말 고마워요....오늘같은 염천에 여기는 정말 무척 더웠거든요
우리손주 백일되는 날 옛부터 의미를 두고 기념하는날이니
그냥 지나치면 섭섭할거고 그래 식구들만 단촐하게 보냈지요.
친구중에 아주 여성으로는 귀감이 될만한 친구가 있는데
그친구는 우리나라 옛복식 공부를 했거든요
자기 며느리 얻을때 옛방식대로 활옷도 만들어주고
물론 자기 한복은 다 손수 지어입고 손주 백일옷 돌옷도 만들어 입히고 하지요
그런데 그친구 아무소리 안하고 며칠전 우리산이 백일옷을 지어보냈더라구요
보내는 날 옷 부쳤노라고.......창졸간에 감격해서 말을 더듬고
인사라고 하긴 했는데....받아놓고 또 보고서는 많이 고마웠지요.
옛 우리 어머니세대에나 입어보았을 하얀 명주 바지 저고리 인데요
오늘 입히고 사진 찍어주었는데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답니다.
저위 축하 곰은 산이가 침대에 같이 누어 바라보는 곰돌이랑 비슷해요
가슴에 하트 글귀 복사해서 낭중에 보여줄거예요.
우리 손주 산이 흰 명주 바지 저고리 입은 모습입니다.
이방에서 팔불출이라고 흉보실거라도 .......할미는 좀 뻔뻔하거든요...ㅎㅎㅎㅎㅎ...


더듬는군요 여기는 15도 에 서늘한 여름을 보내는 오늘입니다
이동파 화가들을 너머뜨린 산이가 한껏 명주 바지 저고리를 입고 뽑내는군요 그사이 무척 컷군요
제가 산이를 40여일 되였을때 보았죠? 기념이 되는 그 옷은 잘 간직하셨다가 담에 산이가 아버지가 되면 그 아이에게
대 물림하면 넘 멋 있겠죠 ? 하기 위해선 꼭 아들을 낳아야할터인데 [미리부터] ㅎㅎㅎ
헌디 성님 올리신 노래를 들으면서 두두리니 6번에 고려인 3세 아니다 최가부른 " 마마"라는 노래가 흐르는군요
지는 몇년전 그 노래를 들으면서 그렇케 눈물이 났었어요 교포들에 애환이 서린 노래라서였겠죠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말입니다 어디서 그 아니다 박에 시디라던가 공연 비데오를 구했으면 좋겠어요
잘 들었어요 성님 사랑혀유~ 번번이 우리들에게 좋은것으로 즐겁게 해주시니까유 ~
혜경 공주 현경이 현석이 현주 보러 보스톤에 간다고 맘이 바쁘겠네
이내도한 늦둥이가 뉴욕 생활을 접고 오늘 두어주 휴가를 오기에 ~
그간 얼마나 한국말을 더 잊었는지?
충청도넘이 서울에가서 무었을 터득 했는지등등!
혹 가까이 생긴 여지 친구는 없는지? 말이다
어제 집 청소좀하고 갸 방에 시트 빨아서 정리좀 해 주었지
쬐께 설레이기도 하는구먼 그것이 자식이겠지 혜경공주 어이 짐 싸시게나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 갖게나 총총
오늘은 또 흐리고 비가와요
홈피도 들어와서 얼른 읽기만 하고 어제 불나게 올렸던
글밑에 댓글들 답도 못하고 좀 쉬었지요.
이제서야 기운내서 답을 씁니다.
실은 뉴질란드 아들한테 손주한테 보내주는거 우체국가서 부치고
엘시디 테레비 두대 보내는데 요즈음은 얇고 가벼워서
우체국에서 보내는것이 쉽고 편하더라구요.
혜경이 세남매들 보러 보스톤에 간다니까 .......에고 ...평생 짝사랑인 우리 자식들이
또 생각나서 또 주절거리게 되네요. 모든 동문들도 거의 그렇지않나 싶기도하구요
늙은 엄마가 아직도 뭘 챙겨주고 해야되는데 뭐 딱히 그래달라고는 안하지만
알면서 모른체 할 수 없는게 자식을 향한 부모 마음이더라구요.
그곳은 일차산업만 있고 모두 수입하는 나라여서 전자제품은 이곳이 질도좋고
값도 저렴하고 해서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요.
보스톤은 테네시에서 좀 많이 떨어져 있더라구요 오늘 지구본 들고와서 돌려보고
위치도 보고 했네요. 그래도 미국에서 보면 아주 먼거리는 아니니
다니기에는 수월하지싶기도 하네요.
우리아이들은 너무 거리가 먼곳에만 살아서 비행기 타기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남편때문에
만나보기가 어려웁지요.....한 일곱 여덟시간 걸리는곳이라면 좋을텐데...........
그대신 프라하에 있는 딸한테 가게되면 거기서 상트페테브르크와는
비행기로 한시간 거리라고 남편이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그쪽에서 한번 딸 앞장세워서 같이 가볼가 생각도 해봅니다.
동구쪽은 앞으로는 모르겠는데 도시도 좋지만 시골 이나 중소도시들이
아름답고 인심도 좋고 사람들도 좋고 하다네요.
딸아이가 지 공부가 어찌 전개되느냐에 달렸지만 속으로 이런 저런
계획을 짜 봅니다.
혜경이도 그 착하고 순수해 보이는 딸이랑 같이 여행다니는 모습
보기 좋아보였거든요.
모두 모이면 행복한 시간을 보내겠네요.
나도 11월달에 뉴질란드 가는 표 어제 사놓았답니다.
한 두어달 이상 있다 올 예정은 잡아놓았는데....다른일만 겹치지 않는다면 가보아야겠지요.
잘 다녀와요...........모두 건강하게 만나고 행복한 시간 누려야지요.
혜경공주 ! 박 성호씨 사모님 ! 아니타에 틀림이 없구먼
고마워 나도 이제 막 아니타 박에 대하여 검색도 해보고 하다가 별 눈에 띠는게 없어서
닫을까 하면서 지나치는데 금방 ! 올라 왔구먼 아니 지금 같은방에 있을지도 모르겠네
헌데 위에 아니타 박이 열창을 하면서 땀을 닦으며 우는것 도 좋은데 붙였던 속 눈섭을 띠는 장면은
따라 울었다가 웃어야 하는구나 그렇케 제작을 했겠지?
잘 들았어 총총
혜경공주!아니타 최로 해서 들었구먼 헌디 역시 귀에 익은 마마가 젤 가깝네 딴 노래들은 모다 쏘련어로 부르니
느낌이 덜하네 고마워! 참참 ! 오늘은 카나더 온타리오 최영희한테서 전화가 와서 교복 입은양 재갈 재갈!
한국을 가면 이경숙 윤 혜경 김 영분을 만나고 김순희는 후로리다를 서로 오고 가는 사이라는군
갸들은 주로 60번때이니까 대개는 키순위 근처에 아이들과 친하더군
특별한 아이들이 있긴 했었지 이 은자 센프란시스코 60번때와 여고간 5번때 이금제 그리고
세상 떠난 홍 인선[강산이 엄마] 중간정도에 최 혜순은 졸업생중 젤 커서 언젠가 동창회엔 둘이서 손붙들고 오는데 큰언니와
막내동생 같더니 에이구 인선이도 간지 만 3년이 넘었구나 그때 나를 얼마나 반가워 하던지 국제 전화도 가끔 했었는데
이동파 화가 방에다 딴야기하니 초치는것 아닌가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