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여고시절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걸스카웃 단원이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걸 증명해주는
빛바랜 흑백사진 한장이 증거품 1호이고
기억을 살려서 45년전으로 되돌아가 회상해 보니
단장 선 생님은 무용선생님이셨던 이 종예 선 생님이셨었고
송도에가서 걸스카웃 행사도하고 천막야영도 한 기억이 나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이외에 다른 기억은 딱히 나질 않는군요.
후배들도 쭈욱 이어서 걸 스카웃 단원들이 있었는지
그것도 모르겠구요.
선후배 교류가 있던 기억도 안나고
걸 스카웃을 하면서 다른 행사는 또 무엇을 했을가
이사진에 같이 있는 가까운 친구들도 한결같이 특별한 기억을 간직한것이
없더라구요.
초록색 치마에 흰부라우스에 삼각으로 만들어 걸친 초록색 걸스카웃수건
후배들 중에 걸스카웃단원인 동문들이 있었는지
그러면 한번 이곳에 기억력이 쇠퇴해진 선배언니들에게 소개좀 해주시길
우리2기들 45년전 사진이랍니다.
아! 참 손가락셋 겹쳐들고 걸스카웃선서 하던 생각이 납니다.
(뒷줄 왼편에서 세번째가 저랍니다.....ㅎㅎㅎㅎㅎ....)

2008.07.12 22:37:53
어마나~
"엄마가 어릴적에"라는 전시장에서 본듯한 흑백사진!ㅎㅎ
45년이면 거의 반세기 지났는데.. 모두들 예뿌시고 세련된 여학생이네요~
오늘, 선배님 만나 너무 따뜻했어요~~~
단양버스에서 들었던 대단하신 가창력의 매력적인 목소리도
다시 들을 수 있어 영광이구요~~ㅎㅎ
"엄마가 어릴적에"라는 전시장에서 본듯한 흑백사진!ㅎㅎ
45년이면 거의 반세기 지났는데.. 모두들 예뿌시고 세련된 여학생이네요~
오늘, 선배님 만나 너무 따뜻했어요~~~
단양버스에서 들었던 대단하신 가창력의 매력적인 목소리도
다시 들을 수 있어 영광이구요~~ㅎㅎ
2008.07.12 23:39:40
참 귀한 사진이네요.
저도 국민 학교에서부텨 브라우니 걸스카웃 활동하면서
서울모임에 갔던일, 송도 캠프하던일 다 생각나는데
인일여고에서는 유니폼이 초록이였다는거 밖에?
생각나는게 없는거 보면 아마 고등학교에서는 하지않았나봅니다
사진이 아직은 색갈이 바래지 않은 것 처럼 보이는데요
acid free ( 종이에 바래는 역활을하는 산을 뺀) 앨범이나
봉투안에 보관하세요.
날이 지날 수록 소중한 사진입니다.
2008.07.13 15:32:48
영주 위원장~
대접 융숭하게 받아 고마웠어요.
진지한 대화도 뿌듯했고 냉철한 사고와 부드러운 친화력도
후배지만 배울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르고있던 그간에 어려움 알고보니 할말을 잃기도 했었네요.
우리가 겉으로 알고있는 사실이 왜곡되어 알려지는것이
얼마나 큰일을 그르치게
만들 수도 있는가.....
큰일을 맡은 사람이 가질 큰 덕목중 제일중요한일은
자기책임의 한계를 분명하게 알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것이란걸
어제 다시금 되새겨보는 날이었지요
돌아오는길 앞이 안보이도록 퍼부어대는 비속을 달려오면서도
걱정보다는 희망이 보이는 기분좋은시간의 여운으로
잘 돌아왔읍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비용까지 그렇게 출혈을 해서 어떻게 하지요.
대접 융숭하게 받아 고마웠어요.
진지한 대화도 뿌듯했고 냉철한 사고와 부드러운 친화력도
후배지만 배울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르고있던 그간에 어려움 알고보니 할말을 잃기도 했었네요.
우리가 겉으로 알고있는 사실이 왜곡되어 알려지는것이
얼마나 큰일을 그르치게
만들 수도 있는가.....
큰일을 맡은 사람이 가질 큰 덕목중 제일중요한일은
자기책임의 한계를 분명하게 알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것이란걸
어제 다시금 되새겨보는 날이었지요
돌아오는길 앞이 안보이도록 퍼부어대는 비속을 달려오면서도
걱정보다는 희망이 보이는 기분좋은시간의 여운으로
잘 돌아왔읍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비용까지 그렇게 출혈을 해서 어떻게 하지요.
2008.07.13 15:40:55
영희 후배~
어제 반가웠어요.
후배들에게 기를 받으니 내가 더 영광이지요...ㅎㅎㅎㅎㅎ....
적극적이고 명석한 생활태도 보기 좋아서
선배들이 한 수 배웠을거라 생각합니다.
인조견 우리친구가 미국사시는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이곳서 사가지고도 갔었지요.
어제 반가웠어요.
후배들에게 기를 받으니 내가 더 영광이지요...ㅎㅎㅎㅎㅎ....
적극적이고 명석한 생활태도 보기 좋아서
선배들이 한 수 배웠을거라 생각합니다.
인조견 우리친구가 미국사시는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이곳서 사가지고도 갔었지요.
2008.07.13 15:45:25
혜경이 한테는
질문이 또 생겼네요...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아주 오래되기도 했지만
바닷물에 젖어서 노랗게 변한 흑백사진
다시 복원 할 수는 없을까요
밑에 사진을 올려볼게요
그리고 어제 선민이한테 물어보니 걸스카웃이 우리학년만 활동하고
후배들은 연결이 안되었나보더라구요.
손주크면 할머니 사진 잘 보관해 달라고 해야겠어요.
질문이 또 생겼네요...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아주 오래되기도 했지만
바닷물에 젖어서 노랗게 변한 흑백사진
다시 복원 할 수는 없을까요
밑에 사진을 올려볼게요
그리고 어제 선민이한테 물어보니 걸스카웃이 우리학년만 활동하고
후배들은 연결이 안되었나보더라구요.
손주크면 할머니 사진 잘 보관해 달라고 해야겠어요.
2008.07.13 15:47:46
70년전 사진입니다.
육이오사변때 배를 한척빌려 피난가는데
목적지에 닿아 배가 침수되어 짐들이 바닷물에 잠겨
사진도 바닷물에 젖어버렸었답니다.
그때 창졸지간에도 버리지않고 잘 말려둔걸 이제까지
내가 보존해 왔지요.
개인적으론 친정어머니 친정고모님의
20대초반에 귀한 모습을 볼수 있어 그립고 가슴이 싸아 하답니다.
아래 두분은 친정아버지 20대 모습이시고
어린이는 한분밖에 안계시는 친정큰오라버니신데
이 사진 찍은 무렵이 오라버니 여섯살이라고
친정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신 기억이 어렴프시 납니다.
이 오라버니가 지금 76세시지요.
일찌기 서양문물을 받아드린 친정은 다른집안보다
빨리 개화된 집이었나봅니다.
시누 올케 지간에 손목시계를 처음 구입한 기념으로 사진을 찍으셨답니다.
오라버니는 일찌기 17세 약관도 안된 나이에 랭보평으로
문학에 발을 들여놓고 29세에
이번에 돌아가신 소설가 박 경리 선생님과 현대문학 평론부분의
문학상을 받았었지요.
인천지역에선 문화계에 원로이신데 시작은 주목을 받고 했지만
후반기엔 동생인 내가 보기에도 큰 평론집이 없지 않았나싶네요
끊임없이 문학지에 작품평론을 싣고는 하셨고 후배 양성엔
힘을 썼지요. 동문중에도 오라버니 강의를 들은 친구나 후배도
있어서 가끔 이야기거리가 되기도 했었답니다.


육이오사변때 배를 한척빌려 피난가는데
목적지에 닿아 배가 침수되어 짐들이 바닷물에 잠겨
사진도 바닷물에 젖어버렸었답니다.
그때 창졸지간에도 버리지않고 잘 말려둔걸 이제까지
내가 보존해 왔지요.
개인적으론 친정어머니 친정고모님의
20대초반에 귀한 모습을 볼수 있어 그립고 가슴이 싸아 하답니다.
아래 두분은 친정아버지 20대 모습이시고
어린이는 한분밖에 안계시는 친정큰오라버니신데
이 사진 찍은 무렵이 오라버니 여섯살이라고
친정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신 기억이 어렴프시 납니다.
이 오라버니가 지금 76세시지요.
일찌기 서양문물을 받아드린 친정은 다른집안보다
빨리 개화된 집이었나봅니다.
시누 올케 지간에 손목시계를 처음 구입한 기념으로 사진을 찍으셨답니다.
오라버니는 일찌기 17세 약관도 안된 나이에 랭보평으로
문학에 발을 들여놓고 29세에
이번에 돌아가신 소설가 박 경리 선생님과 현대문학 평론부분의
문학상을 받았었지요.
인천지역에선 문화계에 원로이신데 시작은 주목을 받고 했지만
후반기엔 동생인 내가 보기에도 큰 평론집이 없지 않았나싶네요
끊임없이 문학지에 작품평론을 싣고는 하셨고 후배 양성엔
힘을 썼지요. 동문중에도 오라버니 강의를 들은 친구나 후배도
있어서 가끔 이야기거리가 되기도 했었답니다.


2008.07.13 20:16:42
영주후배~
말대로 싣고간 쌀 이십여가마니는 바닷물에 젖어서
피난지 동네분들과 나누어 잡수시고.......
다른것들도 거의 손상되었다네요.
사진은 그래도 건졌으니 아버님 청춘이 어떠하셨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역사를 뒤돌아 볼 수 있는 귀중한 선물이지요.
그리고 정답만 말했어요...ㅎㅎㅎㅎㅎ.......
앉아계시는 분이 내 친정어머니시고 박문초등 선배시기도 하셔요
고모님은 그시절에 숙명여고를 졸업하셨고
이화여전에 입학한해에 결혼을하셨다 아기가 없어 친정으로 돌아오셔서
오랜동안 혼자 사시면서 약국을 차리시고 약사일과 조산원을 하시고
인천청관에 중국인들의 아기는 모두 무료봉사로 받아주셨었지요
인천답동 성당에 신도회 회장을 십년넘게 하시고
내가 여중이학년때 바다가 어는 추운겨울에 그때도 중국인 아기 받으셨는데
난산이라 너무 애쓰시고 돌아오시다 쓸어지셔서 돌아가셨지요
지금 생각하면 오십대 초반 이셨을때니 너무 일찍 돌아가셨지요.
고모님에 관한 추억이 너무 많답니다
아버님은 지금 인천고등학교 전신인 인상을 졸업하시고 일찍 사업을 하셔서
초년에 큰 성공도 하시기도하고 격변기과 더불어 부침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사신 분이시지요.
모든 부모님들이 그러하신것처럼 말이지요.
순호야~
아버지 추억으로 말한다면 너처럼 아주 많지
너무 많아서 문학공부가 제대로 된사람이라면 책을써도 몇권은 써야혀.
말대로 싣고간 쌀 이십여가마니는 바닷물에 젖어서
피난지 동네분들과 나누어 잡수시고.......
다른것들도 거의 손상되었다네요.
사진은 그래도 건졌으니 아버님 청춘이 어떠하셨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역사를 뒤돌아 볼 수 있는 귀중한 선물이지요.
그리고 정답만 말했어요...ㅎㅎㅎㅎㅎ.......
앉아계시는 분이 내 친정어머니시고 박문초등 선배시기도 하셔요
고모님은 그시절에 숙명여고를 졸업하셨고
이화여전에 입학한해에 결혼을하셨다 아기가 없어 친정으로 돌아오셔서
오랜동안 혼자 사시면서 약국을 차리시고 약사일과 조산원을 하시고
인천청관에 중국인들의 아기는 모두 무료봉사로 받아주셨었지요
인천답동 성당에 신도회 회장을 십년넘게 하시고
내가 여중이학년때 바다가 어는 추운겨울에 그때도 중국인 아기 받으셨는데
난산이라 너무 애쓰시고 돌아오시다 쓸어지셔서 돌아가셨지요
지금 생각하면 오십대 초반 이셨을때니 너무 일찍 돌아가셨지요.
고모님에 관한 추억이 너무 많답니다
아버님은 지금 인천고등학교 전신인 인상을 졸업하시고 일찍 사업을 하셔서
초년에 큰 성공도 하시기도하고 격변기과 더불어 부침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사신 분이시지요.
모든 부모님들이 그러하신것처럼 말이지요.
순호야~
아버지 추억으로 말한다면 너처럼 아주 많지
너무 많아서 문학공부가 제대로 된사람이라면 책을써도 몇권은 써야혀.
확대경까지 동원해서 보니, 아, 선배님 맞네요.
소중한 자료가 되겠어요.
창영 대선배님 한 분 중에 최초의 사진을 많이 갖고 계신 분이 계셔요.
TV에도 나오셨는데. 김석배님이라고.
링크 걸어볼게요. 거기도 구경해 보세요.
http://blog.daum.net/sbkim314
나중엔 선배님 사진도 그런 값어치가 있게 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