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학교에 가니  학생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어쩐 일이냐고 물으니 베네수엘라 장교 루이스가 어젯밤에 수술을 했단다.
루이스는 아주 활달하고 유쾌한 성격의 건강한 사람인데 갑자기 무슨 수술?
그러고 보니 루이스의 아내, 결석 한번 하지 않는 모범생 아나가 보이지 않는다.
어제 나랑 같이 점심식사를 할 때만 해도 아무 일이 없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교실에서는 다들 < 카더라 통신 >처럼 추측성 이야기만 오갈 뿐 아무도 정확한 이야기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급히 행정실로 가서 행정장교에게 자초지종을 물어 보았다.

사연인즉.

근 한달 전부터 루이스는 배가 살살 아팠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위 내시경, 장 내시경, 복부 초음파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약을 처방해 주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의사가 준 약을 먹으니 신통하게 배 아픈 것이 가라앉았는데.
엊그제 루이스 생일파티를 마치고 난 후부터 다시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고 과식을 한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이틀을 견디다가
어제 낮부터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게 되어 조퇴를 하고 혼자서 병원을 찾아갔다.
마침 어제 낮에는 아내들의 점심 모임이 있어서 집에 아무도 없었다.

휴대폰도 집에 두고 간 바람에 연락도 안 되는 남편을 찾아 나선 아나가
이리저리 온 동네를 다 찾아 헤맨 끝에 가까스로 루이스를 찾은 것은 병원 응급실이었다.

배를 움켜쥐고 뒹굴며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고 있는 남편을 보고 아나는 너무 놀랐다.
황급히 학교로 연락을 해서 행정장교와 군무원이 달려 오고
그제야 위 내시경과 복부 초음파 검사를 했다.

검사상 소견은 아무 이상이 없는데 배가 아프다고 아우성이니
혹시 맹장염이 아닌가 하고 의사가 보았는데
글쎄... 맹장이 곪을대로 곪아서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단다.
황급히 배에 작은 구멍 세개를 뜷고 복강경으로 맹장 수술을 한 것이 밤 10시.
그나마 맹장이 터져서 복막염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오늘부터 장교들 졸업 시험도 있고
다음 주엔 줄줄이 답사 여행과 졸업 여행 스케쥴이 짜여 있는데
이렇게 덜컥 병원에 눕게 되니 루이스는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런 것이 인생인 모양이다.
너무 바빠서 언제 아플 짬도 없고, 죽을 새는 더더욱 없는 것 같아도
덜컥 질고에 발목을 잡히게 되면 모든 바쁜 것을 다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인가 보다.


병문안을 가서 보니 하룻밤 새에 아나의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
환자인 루이스는 말할 것도 없고....
나를 보고 아나가 반기며 눈물을 글썽거린다.
너무 경황이 없어서 내게 연락도 못 했다며 되레 미안해 하는 그녀가 너무도 안쓰러워 한참을 안아주었다.



<밤 새 안녕>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다.
왜 우리 조상들이 < 밤 새 안녕하셨습니까? > 하고 인사를 했는지 그 연유도 알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