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우편을 쓴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이 번이 9 번이니 제대할 즈음에 몇 번쯤 될까?
    초보군인 엄마 티를 벗어나 이제는 나도 적응이 많이 되는 것 같다.

    4월에 100일 휴가, 5월에 두 번의 특박, 8월에 보름휴가, 10월에 면회, 11월에 특박
    1년이 지나면서 세어보니 특박을 비롯한 만남이 잦은 것같지만
    신병 훈련과 지난 2-4 월에는 정말 까마득했었다, 2년을 기다린다는 것이.

    벨트를 맨 국방색 모직 반코트를 입고 필승을 외치며 현관을 들어서는 녀석은
    이 반코트는 육군은 없고 해병대만 입는 것이라고 찐드기(녀석의 어릴 때 별명) 특유의 미소를 짓는다.
    갑자기 어미는 장난끼가 발동하여
    " 얘~ 그 반코트는 꼭 판문점에 본 북한 군인들 옷 같다 얘~"
    그 말을 듣고 히~~~~~~죽~~~~~웃는 녀석.

    공부는 형보다 뒤지지만 이래도 저래도 허~ 미소를 짓는 그녀석 특유의 성품을 나는 사랑한다.

    4박 5일 중에 가장 달콤하고 포근한 첫날 밤,
    군기 빠져 가장 편안한 자세로 할머니와 텔레비전을 보는 녀석에게
    나는 또 장난끼가 발동한다.
    " 얘~ 너 그렇게 군기가 빠져서,.쯧쯧.
    우리가 어떻게 너를 믿고 두 다리를 펴고 잠을 잘수 있겠니?
    어떻게 대한민국의 국방을 믿겠냐 말이다 "
    히~~~~~~ 죽 ~~~~ 또 웃는 녀석

    집 안의 이거저거 봐준다고 제법 남정내 티를 내는 녀석이 듬직한 것은 3일을 못넘겼다.
    "야~ 이거 좀 해주라........ 너는 집에 와서 이것도 안 고쳐주니? "
    로 시작하는 잔소리가 시작되자 이따가요 이따가요 연발이다.
    밉지않게 들리는 이따가요를 연발하는가 싶더니 아뿔싸 며칠이 휙 지나가 버린다.

    오빠가 왔다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기숙사에서 집에 온 여동생과 함께 외식을 나갔다.
    자동차 뒷자석에서 연신 투닥대고 싸우는 폼이 어릴 때 싸우던 폼과 똑같다.
    어릴 때 3아이를 뒤에 태우고 나들이를 가면 전쟁이었다
    꼴밤 때리고 숨고, 맞은 녀석은 울고,
    자리가 좁다고 여동생이 투정하면 일부러 더 여동생을 코너로 몰고
    엄마는 차내 평정을  위해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내가 가운데 앉아서 평정을 하지 않으면 아비가 운전하는데 지장이 있을 정도였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때의 그 모습으로 장난어린 투닥거림이 그리 싫지 않은 것은
    금쪽같은 내 새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점을 가면서
    " 얘~~ 저 밤바다를  좀 보렴  ..근사하지 않니? " 그렇게 말하는 어미에게
    " 엄마는!! 저는요 매일같이 불빛도 없은 동해의 푸른 바다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요 "
    갑자기 지능 떨어지는 어미의 질문이 너무도 어리석었음을 자책한다.

    어떤 경우에도 히~~ 죽~~ 웃는 그 녀석의 내면엔,
    여동생과 어릴 때의 그 모습으로 자동차의 뒷자리에서 투닥대는 녀석의 내면엔
    가족을 떠나 선택의 자유조차 없이 동해바다를 바라다 보아야만 하는 젊은이의 외로움이 짙게 스며져있는 것이다.
    그 외로움은 눈치없는 어미의 뒷통수를 계속 맴돌았다.

    귀대 전 날이 되자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북한군 군복같은 국방색 모직코트가 추위를 막아주겠지만
    추위보다 더 차가운 헤어짐을 막아줄 수없는 무능력한 나는 매몰찰 수밖에 없었다.

    " 얘~ 빨랑가서 대한민국 지켜. 엄마 좀 맘 놓고 자게, 알았니 이일병??"
    쌩뚱맞게 맘에도 없는 말을 내뱉는다
    히~~~~~~죽~~~~~~~ 또  웃는 녀석

    어둠 속으로 새벽같이 떠나는 뒷모습이 작아지는 듯하더니
    다시 커다랗게 클로즈업되면서 외친다

    "엄마~ 저, 12월 1일에 상병되요
    지금은 그래서 상병진이예요 "

    이번엔 내가 힘없이 웃는다
    히~~~~~ 죽~~~~~~~


이상병진이 지키는 포항의 양포 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