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을 피워서 다섯시간 달려 도착한 연말의 포항
      바닷바람이 그리 춥지 않는 날씨임에도 옷 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낯선 도시, 낯선 풍경
      그리고 잠시 후의 헤어짐 때문에 더 추웠으리라.

      뜨거운 김이 나는 점심을 둘이 머리 맞대고 먹으면서
      일한다는 핑계로 저 혼자 밥 차려 먹게하던 일들이 생각나 제대로 넘어가지를 않았다.

      연병장에 체격 건장한 청년들이 모여있었다.
      나는 마중 나온 가족들 맨 앞줄까지 비집고 들어갔다.
      갑자기 뒷줄에 모자 쓰고 검은 잠바를 입은 청년하나가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았다
      내 아들이다.

      아들의 눈에 잘 띄라고
      발꿈치를 높이 세우고, 오른팔을 높이 들어
      아주 힘차게. 높이. 오래도록 흔들어 주었다.
      아들은 엄마를 금방 발견하고 저도 힘껏 한번 손을 흔들더니
      이내 줄을 서서 멀리 훈련소 병영 안쪽으로 멀어져 갔다.
      내 살점 하나가 그렇게 청년들 틈에 휩쓸려 나를 떠나갔다.

      내 감정을 나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눈가가 축축해 지는 내 모습을 내 스스로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디카만 손에 들고 여기저기 찍어대었다.

      하루 이틀..
      어리벙벙하다가 상관에게 얻어맞지나 않을까?
      낯선 친구들 틈에서 새 친구 빨리 사귀어야할텐데
      잠이 많던 녀석이 밤에 보초 선다고 추위에 떨면서 따뜻한 집 생각이 많이 날텐데
      줄을 삐뚤삐뚤 잘 못 서서  저 혼자만 기합 받을지도 몰라.
      익숙해질 때까지는  집 생각이 많이 날 텐데.
      초코파이가 얼마나 먹고 싶을까.
      아침에 우유에다가 콘프레이크 타서 먹고  싶을텐데...
      병신같이 여자친구 하나 만들어 놓고 가지 못하다니..

      어이~이 일병 잘 다녀와~
      큰소리 뻥뻥치던 남편도 술잔을 기울이며 말없이 아비마음을 삭히고 있었다.

      그렇게 노심초사한 마음이 조금씩 희석되어지던
      어제 1월 5일

      하얀 사각 편지봉투가 도착했다
      내 아들 글씨로 주소가 쓰여진 편지였다

      큰 아들이 아직 군대는 가지 않았지만
      작년에 멀리 기숙사로 떠날 때도 울지 않았는데...
      아들녀석이 병영 안으로 멀어질 때도 눈물을 참았는데
      기어이 아들 글씨의 하얀 편지 한통 들고서
      뜯지도 못한 채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편지봉투를 열면서
      어버이날 학교에서 강제로 쓰게하여 보내왔던  
      " 어머니, 아버님 전상서" 라는 의례적인 내용이겠거니 했는데
      내 아들 글자는 이름 석자 뿐이고
      상관이 귀댁의 아들은 잘 적응하고 있으니 염려 말라는 내용의 복사된 안내편지였다

      또 한번 눈물을 쏟았다.
      편지지 앞에 내 아들 글씨만 어루만져보며 그렇게 궁상를 떨었다.

      "충성"거수경례로 첫 휴가 나오는 날을 기다려보며
      그래
      튼튼하고 씩씩한 사내가 될꺼야
      이일병이 될꺼야
      누구 아들인데..

      울지말자
      울지말자

      2004/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