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직항기가 2시간30분만에 내몽고 "호화호특"에 도착했다.
몽고라는 곳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때문에 우리 조상이 그쪽에서 왔다는 말에 실감이 나기도 했다.

가까운 거리에 비해 한없이 긴 입국 절차.
자국 비행기가 아니라서 까다롭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더 더군다나, 나를 비롯한 여자 2명이 여권 심사에서 걸렸다.

이유인즉 왜 이렇게 많은 나라를 여행했냐?이다.
30분이상을 붙들고 서투른 영어로 물어오는데 말이 통하지를 않는다.
우리 남편이 나는 더 많이 "스탬프"가 찍혔는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남자는 상관이 없단다.
가이드 말이 그냥 따지지 말고 놓아 두면 자기네 끼리 옥신 각신 하다가 해결이 된단다.
관리들이니까 이해해야 한다고,  겨우 통과가 되었다.

사막은 시원하고 상쾌하다.
그래서 예로 부터 이곳은 중국 귀족과 고관들의 휴양지인가 보다.
그 옛날 연암 박지원 선생도 사신으로 청나라 황제를 알현하러 북경에 갔다가,
황제가 이곳으로 휴가를 오는 바람에, 서둘러 따라와 그 생소한 모습을 그려낸 책이 "열하일기"이다.
"熱河"... 지금의 내몽고.
4000리 머나먼 길을 따라 열하까지 온 정조때의 사신 박지원...
내가 지금 그길을 따라 이곳에 왔다.
케이블카를 타고 사막에 도착하니 얼마나 바람이 시원한지...
천지 사방이 탁 트인 사막이 아름답다.
궤도 트럭을 타고 사막을 달리고, 난생 처음으로 낙타를 타고 신이 났다.
낙타는 얼마나 순하고 귀여운지...
또한 모래 썰매는 아찔하면서도 스릴이 만점이다.

다음 날은 대초원이다.
버쓰로 4시간쯤 달렸을까?
탁 트인 푸른 초원이 펼쳐졌다.
망망대해와도 같은 초록빛 초원속에 갖가지 야생화가 노랑색, 분홍색, 하양색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90여종의 야생화라니...
신이 만들어 놓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비가 온 뒤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하늘의 무지개.
그리고 밤하늘에 쏟아지는
은하수.
그 아래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타오르는 불길에 낭만을 꿈꾸어 보는  한 순간.
별빛도 불빛도 영원한 듯 불타고 있다.

양떼와 말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하얀 풍차가 천천히 돌고 있는 대초원,
그속에 하얀 몽고포가 무리지어 서 있다.
도착을 하자 몽골인들은 버스에서 내리는 여행객에게 술 한잔 공손히 따르고,
노래로 환영의 인사를 대신한다.
어느 곳에 가서 우리가 이런 극진한 환대를 받을 수 있을까?
팁이라는 것도 모르는지, 호텔방에 수고비를 놓고 나왔는데,
오후에 돌아가 보면  그 자리에 얌전히 그대로 있다.
낙타를 타고 있는 모습을 일일이 사진을 찍어 주는데도 수고비를 절대로 요구하지 않는다.
어쩌다 과자를 먹다, 옆에 몽고 소년이 있어 나누어 주면 고마와 쩔쩔 매며 얼굴까지 빨개진다.  
얼굴이며 마음 씀씀이가 순수 , 그 자체이다.

우리가 옛날에 다 잃어버린 순수함을 이들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몽고가 더 아름다운 것일까?

몽고의 아름다움 하면 "왕소군"을 언급 안 할 수가 없다.
"초선", "서시",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중 한명인 "왕소군".
다른 세명이 경국지색인 반면, 왕소군은 국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살다간 미인이라 해서 
지금도 중국 국민의 추앙을 받고 있다.

"이태백"등 역대의 시인들이 앞 다투어 노래했던 비운의 여인, 왕소군의 운명은 비극적이다.
궁녀로 발탁되어 궁에 들어왔으나, 화공의 농간에 의해, 황제의 눈에 들지 못하고
결국 흉노족의 왕에게 시집을 가게 된 왕소군.
그 날 떠나는 왕소군은 처음으로 황제를 알현하는데, 황제는 천하절색을 자기에게 천거하지
않은 화공의 농간에 불 같이 화를 내고 화공의 목을 벤다.

흉노왕을 달래려고 금은보화와 함께 바쳐진 왕소군은 아들을 하나 낳지만 곧 바로 왕이 죽는다.
남겨진 그녀는 유목민족의 풍습에 따라, 죽은 왕의 아들이 왕에 오르자 다시 그의 여자가 되어
딸 둘을 낳는다.  그러나 그 왕이 죽자 또 다시 손자가 왕에 오르고, 그의 여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왕소군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저주받은 운명을 결국은 자살로 마감한 비운의 여인, 왕소군의 묘에는,
사막임에도 그 자리에만 푸른 풀이 돋아났다고 해서 지금도 신격화되고 있다.
저주받은 운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끝내는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 왕소군.

미인박명이 이런 것인가 싶어 그녀의 묘앞에서 마음이 아팠다.
남편, 아들, 손자로 부양 책임이 이어지는 여자의 운명.
바로 이것이 우리의 호주제의 근원이라는 설명이 더욱 더 낯설다.

모든 면에서 우리 나라와 너무 비슷하다.
얼굴이 그렇고, 태어날 때 엉덩이에 푸른 반점도 몽고 반점아라고 하지 않는가?
양을 잡아 바베큐로 해서 내어 놓는데 먹기 전에, 그 양고기를 모셔 놓고
양의 영혼을 위로하고, 좋은 곳으로 환생하기를 기원하는 의식이 행해지는데
춤과 노래와 주문이, 그대로 우리의 제사 의식과 꼭 같다.

또한 "오보산"이라는 돌무덤이 있는데 바로 우리의 서낭당이다.
돌 하나를 조심스레 올려 놓고 그 주위를 돌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다는 민속 신앙.
아마도 우리 민족의 다혈질인 불같은 성질은 이런 유목 민족의 피가 흐르기 때문일까?

이번 내몽고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뿌리를 조금이나마 더듬어 보고 온 역사 기행으로,
행운이고 감동이어서 누구에게라도 한번은 꼭 가 보라고 감히 추천하고 싶은 곳이 되어 버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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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낙타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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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 원시부락 몽고포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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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사막의 동남단, 소리사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