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나는 안치환이 부르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를 무척 좋아한다.
3년전 KBS에 근무하는 우리의 솜사탕 같은 친구가 초등학교 친구들을 초대한
'열린 음악회'의Opening-Song도 바로 이 노래였었다.
아무리 화려한 건물이라도, 그 곳에 사는(근무하는) 사람들보다 아름다우랴!
아무리 화려한 꽃이라도, 사람들보다 향기로우랴!
Hard-ware도 중요하지만, Software가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우람한 건강 육체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생각과 정신이 우리의 삶을 더욱 진실 되고,
행복하게 한다.
잘생긴 얼짱도 중요하지만, 친절하고, 겸손하고, 진솔한 태도와 미소를 띄어 주는
친구들의 얼굴이 나의 가슴속에 있어 청국장 맛이 더욱 그리워진다.
우리 인일 7회와 동기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동창회를 위해 태어났다" 할 정도로
창영, 제고, 서강대 등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친구입니다.
제고의 길영희 선생님 추모 사업회의 사무국장으로 봉사하고 있지요.
수줍은 친구인데
창영 친구들의 강권에 못 이겨 들어 왔네요.
여학교에 남학생이 들어 오기가 힘든데......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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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동성당 외부전경 |
미사 |
사제 서품식 |
주교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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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내 정면 가까이 |
성당내 2층정면 |
성당내 정면넓게 |
성당내 중앙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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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내 왼쪽 |
데레사상 |
바오로상 |
성당내 오른쪽 |
석만후배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지금 경례와 통화후 알았네요
그렇게 만났어도 종교이야기는 금기로 해서 그런지............
우리 인일홈피에 들어와 글을 올리는일이 조심스럽고 어렵다고
하셨다니 그건 그럴거라 짐작되네요.
나 자신도 우리인일홈피에 글을 올린지 시간이 좀 경과 되었어도
모두가 어울리는 자유게시판엔 조심스럽기도 하거든요.
그저 개인적으로 가까운 동문들과 어울리는 방에서 어울리는건 좀 부담이
덜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외부인들과 교류하고 잘 지내는 동문들이 좋아보이기도 하답니다.
모처럼 어려운 발걸음 한 석만후배 사람냄새나는 좋은글
거기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천주교 교회 사진이 있으니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고 반갑기도 하고 합니다.
난 백년도 넘은 구교집안 사람이지요.
초등학교도 박문초등학교를 다녔고 선대에 그러니까 답동성당
4대 신부님이신 드뇌(E.Deneux)에우제니오
(재임기간 : 1904.4 ~ 1937.6 ) 신부님 우리식으론 전신부님이셨다고 하네요.
친정쪽으로 큰댁에 큰할아버님이 답동성당 개축시 성당 건축에
일익을 담당하셨다고 하지요. 친정할아버님은 전 신부님 밑에서 공부를
하시고 기거도 하시고 일제시대에 일본순사를 두들겨 주시고는 성당에서
피해 계시기도 하셨다네요. 이러저러 답동성당과는 끊을 수 없는
관계의 역사가 있지요. 5대 임 종국 바오로 신부님계셨을때 초등학교를 다녔고
6대 버크 장요한 신부님 시절까지는 성당 다니는일이 일상이었지요.
그리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지만 그건 생략하기로 하구요.
알기론 명동성당 보다는 일년일찍 지어졌다고 하고 약현 성당보다는,
6년뒤에 1897년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어려 초등시절 엄격한 교리 공부를하고 항상 기도로 수업을 시작하고
종례시간도 기도로 끝나던 나무걸상에 장궤하고 모두 합창하듯
기도하던 시절이 아스라히 생각나는군요.
바오로 수녀원에 수녀님들 그중에서도 담임이셨던 수녀선생님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답니다.
50년전 이야기 이지요.
답동성당도 287호 사적지이기도 한 역사적인 성당건축물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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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까지 올려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뛰어나와 환영해 주시는 선배님의 마음에
윤석만은 또 얼마나 기분 좋아할까요?
인일 홈페이지는 몇 분 선배님들의 노고로
늘 활기차다는 것을 알겠어요.
바쁘다는 이유로 댓글도 성의 있게 못 다는데
선배님들은 온 정성으로 글과 음악을 남겨주시니
너무 감사하지요.
윤석만, 기분 좋은 일이 있었던 거 같네.
밤 늦은 시간인데도 친구들 잊지 않고 찾아주니 고마워.
덕분에 선배님의 얘기도 듣고 음악도 들으니 참 좋다.
영주언니!
금곡동 창영동창 이상매(이상해) 동생 상옥이예요.
지난가을 행사때 강화 호원산방에서 뵈니 여전히 아름다우시던데
요즘은 동창회일 적극 앞장서서 하시니 감솨요.
우리친정 어머니는 영주언니 어머니 얘기 많이 하셔요.
서로 통화도 하시고 인천에 오시면 만나 시기도 한다고.........
언니동생중에 창영58회 남학생이 있는것 같은데 이름은 몰라요.
토요일 뵙고 다시 인사 드릴께요.
윤석만님!
나와 우리 아들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 아주 좋아해요.
노래를 직접부르기는 너무 어려워 노래방 가면 그중 젊고 노래 잘 하는 그 누구에게든 꼭 신청해서 듣지요.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지요. 생명이 있는 그 모든 것은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건강한 육체도 중요하고 건강한 생각,건강한 정신, HARD-WARE , SOFT-WAREA
모두 균형있게 가꾸어 나가야 되겠지요.
아, 내 생각이 맞았구나.
상매 동생일 거라는 생각에 처음부터 계속 사진 들여다보곤 했거든.
어제도 친정엄마 내려오시라고 해서 사진 보여주면서
'상매 동생 맞지?' 했는데 엄만 잘 안 보이시는지 그런 거 같다고만 하셨어.
세상에, 진작 아는 척 좀 하지.
내가 물어볼까 하다가 11기 방이 아직 낯설어서 못 그랬어.
상매는 어디에 살까? 건강하지?
6월 21일 창영 총동창회 총회가 있는데 그 때 우리 기수가 많이 갈 거야.
상매를 그 때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네.
년전에는 상옥이 올케하고도 몇 번 메일 오간적이 있었는데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 거야.
내 바로 아래 동생 영희랑 같은 동기던데. 그러니까 9회겠네.
그리고 우리 남자 동생 이름은 창훈이야. 김창훈.
아, 반갑다. 이래저래 다 얽혀있지?
테마여행에서 반갑게 만나자.
언니 얘기도 들어야지. 그날.
김은희선배님,
올려 주신 영혼을 울리는 노래에 깊어 가는 밤의 경건함을 느끼게 합니다.
바쁘신 중에도 관심과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선배님, 언제 부터인가 밤 늦게 귀가하여도 제일 먼저 샤워를 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인일 창을 여는 것이 하루 일과중
마지막 단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김선배님의 푸근함이 묻어 나는 글이 있고, 코흘리게 시절의 친구들이 뛰어 노는 작은 마당이 있기에 그 글을 보고
잠이 들면 아름다운 꿈을 기대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입니다.
늘 웃음을 안고 사시는 선배님의 모습을 항상 기억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하~~!!
도산학선생님, 쑥스럽게 내민 손을 살포시 잡아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처음에는 무척 망설이고 망설였으나, 지원군이 계시니 제 낯도 많이 두꺼워졌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김영주위원장님,
열심히 게시판 지킴이를 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자주는 등교를 못하지만 가끔은 문안 글을 올리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건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상옥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의견에 동의를 하여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늘 향기를 품어 주시는 분이라 사료 됩니다.
행복하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향기를 전해 주세요.
감사 드립니다.
석만후배와 같은 초등동창생들의 화기애애한 우정을 보고는
유년의 시절을 카톨릭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초기엔 남녀공학이라서 장면 박사도 다닌 학교라지만
우리때엔 여학생만 다니고 그것도 단촐하게 전학년 한반씩이었지요.
조촐해서 식구들처럼 6년을 한반에서 얼굴 마주한 동기라서
친한 동기친구들은 그집 식구서부터 집안살림 살이까지 꿰뚫고 있었지요.
그 대신 동기동창생들 수가 많고 남학생 친구도 있는 타학교 친구들을 보면
한편 부럽기도 했었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우리집 바깥양반도 육십중반이 넘은 나이에
학교 강의시간도 뜸해지고 은퇴할 시기도 가까워서 그런지
이곳 고향학교 초등동창생들과도 어울려 소풍갈 생각도 하기도 하고 하네요
고향이란 참으로 사람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식처인가합니다.
그래서 더욱 어릴때 친구들이 순수하고 편안한 고향이기도 하구요.
어제는 석양이 어느때보다 붉어 집에서 마주대하고있는 동산 하늘이
붉게 물들어 집안을 거닐다 담가에 찔레꽃과 함께
부지런히 찍어 보았네요.
찔레꽃 하면 ......항상 흘러간 오래전 유행가 "찔레꽃 붉게 피는......."
하는 구절이 생각나는데.......찔레꽃은 희답니다. 향기도 부드럽고 ,
선배님, 언제 자유게시판에 글 올리실 때 이 사진 첨부해 주세요.
메인 페이지 정 가운데 딱 띄우고 싶답니다.
찔레꽃이 내 손에 딱 잡힐듯 해요.
앞에 사진보다 석양이 더 뚜렷한 사진도 있지요.
석양아래 저 창고가 없고 동산만 보이면 금상첨화인데....... 아쉽지요.
십년전에 우리집쪽으론 논밭만 있고 동산도 이쁘고 한적하기 그지없어서
오히려 한삼년 인적이 끊기면 문득 외롭기도 했었지요.
이곳에 젖어갈만하니.......도로가 생기고나서 마당에 나서면 차소음도 많아지고
빙둘러서 아늑했던 동산들도 가려지네요.
자리를 조금씩 바꾸어서 찍기도하고 석양은 금새 사라지니 연속으로 찍었는데
몇장 못 건졌네요.
디지털이라도 좀더 연습하고 기능도 숙지해서 제대로 찍어야 할가봐요.

영주후배 이 사진 배경으로
미국에있는 오십년지기 친구와 찍은사진 합성해서 올려보았네요.
옛날 사진관에서 해주던 작업을 요즘엔 포토샵으로 하네요...ㅎㅎㅎ...
아직은 초보지만 나도 조금씩 혼자 해보려고 합니다.
맨발로 뛰어나와 반깁니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들어와 겸손하게 글을 올리시니 참 존경심이 우러나네요.
우리집안은 6대째 장로교 집안이지요.
난 성당건물이 참 장엄해 보이고 클래식해 보여서 좋아요.
요즘 현대식으로 건축한 교회를 보면 좀 경건미가 부족한 것 같더라구요.
약현성당이 제일 오래 된 성당이었군요.
참 아름답네요.
은희언니도 집안대대가 천주교 신자이시군요~~~
답동성당은 저도 여러번 가 봤지요.
음악선생님 유정희선생님께서 답동성당에 다니셨고 그 교회에서 쏠로이스트셨지요?
답동성당 건물을 보니 마음이 뭉클하니 향수가 느껴지네요~~~
다시한번
윤석만님!!
두 손 들어 환영합니다.
종종 들어오셔서 좋은 글 좋은 음악 올려주세요.
은희언니가 올려주신 보첼리의 노래 잘 듣고 갑니다.
김은희선배님,
이옥녀선배님하고 함께 찍으셨군요.
참으로 다정하신 모습입니다.
사실, 저는 두분의 성함을 작년에야 알았답니다.
작년에 강화도에 가신 사진을 보고 '아~하~~, 성함이 이렇구나.' 하고 말입니다.
옥순이도 매번 '김포언니' 라고 부르니, 저도 그렇게 알고만 있었지요.
남자들은 이렇게 덤벙댈주나 알았지, 자세한 면이 없어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답니다.
두분의 끈끈하고 솜사탕 같은 우정이 부럽기도하고 존경스럽습니다.
두분의 우정이 대대손손 이어지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춘자선배님,
이 村夫를 반갑게 맞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남자가 여학교에 등교한다는 것이 조금은 두렵고 낯이 뜨거운 일이나
저는 초등학교의 박하사탕 같은 친구들이 많이 있어 이렇게 철판을 깔고
등교를 하였습니다.
등교를 하다보니 일년에 한,두번쯤 뵐 수 있는 김은희선배님도 만날 수 있고,
온라인 상에서나마 안부를 물을 수 있으니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 일인가요..??
김춘자선배님도 초면이지만 반갑게 맞아 주셔서 제가 많은 힘을 얻은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더 감사를 드립니다.
초면에 사진으로 뵙지만, 그 연세가 거짓말처럼 젊으십니다.
혹시 젊게 사시는 특별한 비결이 있으신지요..??
있으시면 알려 주세요.
인일에서 창영 초등 친구들이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보기 좋아 저도
이제는 인일 홈 페이지를 보지 않고는 잠이 안 올 정도로 골수 메니아가 되었습니다.
김선배님도 많이 격려하여 주시어, 인일동문들이 항상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의 장이 되도록 도와 주세요.
저도 변방에 있지만 봉사하는 친구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드리며,
인일의 게시판이 동문 상호간의 친목을 다지는 장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약현성당, 1892년 완공, 중림동(서울)
<작품설명>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랑스인 코스트(Coste, 1842-1896) 신부가 설계·감독한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조 성당이다. 좌우 열주에 의해 세 개의 긴 공간으로 뚜렷이 구별되는 삼랑식(三廊式) 평면 구성은 오랫동안 한국 성당 건축의 모델이 되어 왔다. 화재로 반소된 이후 2000년에 원형대로 완전하게 복원하였다. 국가 지정 문화재(사적 252호)로 보호되고 있다.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김정신 스테파노 교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약현성당(藥峴聖堂)
현재는 중림동 성당으로도 불리우는 약현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조선후기인 1891년(고종 28년)에 세워졌다. 현재 사적 제25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규모는 건평 120평으로 벽돌구조로 이루어져있다. 건물의 평면은 길이 32m, 폭 12m의 직사각형이며, 1905년에 높이 22m의 첨탑을 세워 종을 달았다. 삼연식(三緣式), 리브1)몰딩2)의 천장으로 구성되는 고딕계통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약현성당은 한마디로 아담하면서도 번잡스러운 장식이 없는 장중한 건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