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밭 졸업, 컴퓨터 입학

 

 

  

부끄러운 일이지만 벌써 7년이나 되어 버렸다. 

그때 뉴저지에 사시던 엄마는 75세였는데,

내가 컴퓨터로 글쓰기가 재미있다고 전화로 자랑했더니

부러워 하시는 것이었다.

나도 컴퓨터 빨리 배웠으면..”

“넷? 정말 배우고 싶으세요? ”나는 가방끈이 짧으신 늙으신 엄마가 그런 반응을 보이시리라고는 기대 밖이었다. 우리 세대에도 안 배우고 컴맹으로 살려고 버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엄마는 막내 동생 컴퓨터를 놓아주기로 했었는데 해주고 이사해 버렸다고 섭섭하다고 까지 하셨다.

얼마나 배우고 싶으면 그런 소리를 하시는가 하고

내가 해드릴께요하였었다.

그런데 소리만 치고 부끄럽게도 아직도 말을 실천 하지 못하였다.

멀리 살고 있다는 핑게가 될지 모른다만

아이들이 달라면 며칠이 못되어 해주곤 했었었는데

이런 불효가 어디 있겠는가.

부모님에게 얻는 것은 쉽고, 돌려 드리는 것은 수천배로 힘이 든다.

 

사실은 매해 점점 커지는 채소밭이야 바쁘시게 사시니까

시간도 없을테지 하며 양심에 걸린 채로 지나쳤던 것이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두분 다리가 불편해져서

16 년이나 경작하던 채소밭 농사를 이번 봄부터 그만 두시게 되었다.

한약 찌꺼기까지 얻어다 어린 아이들 돌보듯 하신

기름진 채소밭이 너무나 아깝지만

이제는 더이상 도저히 일할 기력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진작부터 팔십 노인네들에게 힘에 겨운 것을 알아서 고만하시라고 말씀드려 왔으니 그만 하시는 것은 쌍수로 환영할 일이었다.

여름 철에는 채소를 다듬느라 세시까지 잠을 주무실때가 많다고 하시니 그게 어디 사람이 할일인가? 수고비나 재료비도 안 나오는 일을 그리 몹시하시다니...

자손들 마다 이제는 고만 하시라고 주문을 외워 드렸는데,

이렇게 몸이 불편하시니 손을 들고 것이다.

 

그런데 부지런한 노인네들이  심심해서 어떻게 지내실 것인지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엄마는 새벽기도를 빼놓지 않으셨었는데 그것도 다리가 그러니 운전하시는 장로님에게 미안해서 다니신다고 한다.

겨우 주일예배와 노인 아파트 아래층 출입 정도만 간신히 하신다고

 

 

 며칠 후 시카고에 들러 손자 두돐 생일을 보고

부모님도 만나 뵈러 뉴저지에 가기로 했다. 애처로이 늙어 가시는 두분을 자주 못 뵈는 것이 항상 죄송하고... 항상 하다마는 전화로야 얼마나 짧은가 말이다.   

무슨 선물을 드릴 하고 궁리하는데

그때 약속한 컴퓨터 생각이 다시 나는 것이었다.

약속만 하고 지킨 멀쩡한 딸을 어찌 생각하셨을까

 

부모님 근방에 사는 큰 올캐에게 이야기 했더니 일언지하에 반대이다.

노인네가 눈도 나쁘고 이제 배워서 무얼 하실 꺼며

이제는 성경책이나 읽고 지내시는 것이 나으냐는 말이었다.

딴은 그말도 옳다. 조용히 기도하며 성경 읽으면서 경건히 지내시는 분위기에 컴퓨터는 위협이 아닐까..

신앙생활에도 이게 제일 방해물인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엄마에게 전화해 결과 그게 아니었다.

엄마는 아직도 진심으로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하시는 것이었다.

누가 우리 엄마의 배움의 열 말릴 수가 있을까

우리 엄마는 십리 길을 할아버지 등에 업혀 국민학교를 다니셨다고 한다.

나이 많은 사람들 틈에 공부했는데 뛰어나게 총명하여 선생들이

서울로 상급학교에 진학하라고 야단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당시 시골의 외갓집에서는 아들들은 서울로 보내 주면서 딸들은 보내주려 하지 않았었다. 

마침 그리도 아껴주시던 엄마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엄마도 어찌 공부했을 텐데.. 그랬으면 누가 아는가, 시대를 깨치는  필요한 인물이 되셨을지도

 

그 좌절의 안타까움 때문인지 시골에서도 우리들 7 남매를 아들 따지지 않고 가르치셨다. 어떤 때는 빚에 쫄려 됫박 쌀로 연명할 때도 있었으나 모든 상황들을 겪으면서도 절대로 포기 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엄마 덕이다.  

평생 엄마는 배우는 것에 목말라 하신다. 책도 열심히 읽으신다. 연세에 셈도 빠르고 교회의 여전도 회장도 지내면서 목사님의 오른 팔이 되어드렸던 것도 얼마 전이었다.

노인들에게 어려운 시민권 시험에 만점으로 단번에 붙기도 하셨다.

아버지께서  운전 면허 시험에 두번이나 떨어지자

시험문제를 들고 따라 다니며 공부를 시켜서 80점으로 붙게 만든 적도 있었다고 자랑도 하신다.

노인쎈터에서 자문위원으로 해마다 감사장도 받아 오시기도 하고

노인대학에서 영어 공부를 잘해서 제일 높은 클래스에서 공부하신다고 들었다.

비록 입은 못 떼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엄마가 이런 정신으로 살고 있는 것을 아는 딸로서 어찌 올캐의 반대 의견을 수용할 수 있으랴게다가 우리 엄마는 눈도 나쁘시다. 82 세에 돋보기도 쓰고 책을 읽으실 때가 많다. 아, 나도 만약 오래도록 산다면 엄마처럼 배우는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고 살수 있을까?

 

엄마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세째 남동생에게 전화했더니

엄마가 정말 하고 싶으시대?” 하면서 의아해 했다.

진작 알았으면 자기가 해드렸다나 뭐래나컴퓨터가 없이 많으니 얼마든지 한대 갖다 드릴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걸 진작 알았으면 내가 가만있지 않았을텐데. 그런데 실은 컴퓨터가 문제가 아니라 매달 내는 인터넷 요금이 노인들께는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채소농사로 얻던 조그만 수입원까지 없어지니 더 빠뜻해지신다는데

매달 수수료를 내기가 벅차실 것이 분명하. 그래서 컴퓨터를 사지 않는 대신 수수료를  내가 해결하기로 했다.

 

아들만 있고 없는 사람은 얼마나 불쌍하냐?” 하며

여동생에게 전화해서 내가 가기 전에 인터넷을 연결하도록 부탁을 했더니 효녀딸 여동생은 즉석으로 알아보고 이제 이틀후면 된다고 연락을  주었다.

덕분에 이번에는 말만으로 끝나지 않고 약속을 이루어 드리게 될 것이다.

7년만에! 정말 너무한 딸이다 나는.

 

채소농사를 졸업하고 컴퓨터에 입학하시는 우리 엄마우리 아버지..

머리가 점점 좋아져서 치매도 예방하고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지내실 것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이제는 컴퓨터로 우리와 교신하며 글도 읽으시면서 즐거워 하실 것이다.. 컴퓨터로 오히려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싸이트들도 소개할 것이다. 일주일 후... 컴퓨터를 배우며 어린애 같이 좋아하실 엄마를 많이 보고 싶다.(200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