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10살이 되니까 벌써 컸다고
할머니 말이라고는 콧등으로도 안 듣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 엄마네 집으로 드디어 들어갔다.
도대체가 내가 살던 송림동은 아직도 옛날 그 모습 그대로 촌동네로
밤이 늦어도 들어갈 생각들을 안 하고 뛰어 놀고들 있으니
저녁을 먹을 때도 할머니가 나가서 끌고 들어 와서 멕여야 하고
먹어도 아이들 노는 소리에 후딱 먹어 치우고는 나가 버리니 문제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더 더군다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기를 끔찍히 예뻐하는 줄 빤히 아니 매사에 땡깡만 늘었다.
결국 지운이의 화려한 자유시대는 끝나고
엄마 아래에서의 수난시대가 시작되었다.
학원을 뺑뺑이 돌리고 저녁이면 엄마의 까다로운 점검을 꼼짝없이 받아야 하는 지운이의 말이
"나 아무래도 전교에서 1등만 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한숨을 폭폭 쉰다.
그래도 성격이 적극적이라
반장 선거에 자진해서 나가 남자 아이랑 최종적으로 결선에서 붙었는데 안타깝게도 1표 차로 떨어졌다나.
낙심해서 들어 오는 지운이에게 짝꿍이 "자운아 걱정마, 2학기에는 내가 너 꼭 찍어줄께"
라고 하길래 분해서 "너 나한테 뒤질랜드 할래" 하며 쏘아 붙었다고 쫑알대는 지운이.....
이런 자칭 귀여움으로 승부한다던 지운이가 가 버렸으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여간 서운해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토요일에는 송림동에 와서 하룻밤을 자고 간다.
학교가 끝나면 부리나케 아빠를 졸라 도착해서는 초인종도 자기가 누르며 들어 가서는 크게 소리를 지른다
"할머니 피로 회복제 지운이 왔어요" 한다.
누가 가르친 적도 없건만 약사인 엄마의 영향 때문인지
박카스에 자기를 빗대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일주일간의 이야기를 쫑알쫑알 쉬지도 않고 해댄다.
"할머니, 우리 소풍 가는데, 엄마가 할머니처럼 김밥을 맛있게 싸지 못 하잖아.
그래서 내가 힘들게 싸려고 걱정하지 말고 사서 줘도 돼. 그랬지 뭐야"
하면서 할머니 비위를 짝짝 맞추는 지운이.
중3짜리 자기 오빠가 "글쎄 바람이 났잖아, 할머니"하면서 일러 바친다.
전체 조회가 있어 운동장에 모였는데 중2짜리 예쁜 소녀가 다가오더니
"달팽이를 갖고 싶은데 무서워서 그러니 오빠가 잡아줄래" 하며 혀 짧은 소리로 예쁘게 부탁을 해서
그 날 공부도 재끼고 달팽이를 잡아 소녀에게 건넨 사건을 집에 와서 엄마에게 보고를 한 것이
두고두고 동생에게 놀림감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엄마에게 혼났지. 공부는 안 하고 딴짓 했다고....
그 말을 듣던 할머니가 "그럼 지운이는 달팽이 갖고 싶으면 네가 잡겠네" 했더니
고개를 잘래잘래 흔드며 "나도 남자 친구에게 당연히 얘기 해야지" 하며 앙큼을 떤다.
할아버지는 한술을 더 떠 지운이 공부방을 그대로 두라고 했으니
편지며 상장이며 사진등을 떼어 내면 아이가 실망할까 봐 여서이다.
이렇게 자칭 "피로 회복제" 라는 지운이를 보면서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라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우리 지운이 처럼 누군가에게 피로 회복제 같은 역활을 하면서 산 적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항상 나만 사랑해 달라고
항상 나만 알아 달라고 떼를 쓰며 살아 왔구나 하는 회한이 든다
이후로도 누가 나를 보고 피로 회복제 같은 존재라고 느끼는 사람도 없을테고.....
우리 엄마 맨날 나에게 말했지
얼마나 팔자가 드셀려고 그렇게 눈물이 많으냐고.
울보공주
울리지 말라고
늘 걱정이던 우리 엄마
딸의 앞날이 보여서 그랬을까?
그 때 벌써.
엄마의 마음으로.
엄마는 오늘도 힘들다.
자식이 힘들까
세월을 견디지 못 할까 보아서.....
나는 오늘도 조카딸 지운이에게 감사한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8명의 골고루 속 썩이는 자식들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는
그런 한 많은 우리 엄마의 피로를 자식들 대신해 싹 풀어 주고 있으니 말이다.
산학이 드디어 등장했네. 기쁘다.
8남매 키우시느라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다 잘 자라서 저렇게 귀여운 손주의 재롱을 선사한 너희는 효녀이고
어머닌 정말 다복하신 거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길......
재롱둥이 지운이의 사진도 한 번 찾아 봐.
지운이 엄마가 와서 댓글로 사진 올려도 재미있겠다.
그렇지, 승숙아,
산학인 가끔 글로 날 울린단다.
엄마들 마음이야, 여자로의 삶을 생각하면, 모든 딸이 다 안스럽지.
가녀린 산학이이니 더 더욱 그렇지 않겠니.
영주가 너무 애 쓰는데
부족한 글이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올린 것 알고들 있겠지?
승숙이도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댓글 까지 달아 주고........
고마워.
그리고 보고싶은 순희야
종업 후 한번도 보지는 못 했지만
가끔씩 네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너는 상상해 못 했을거야.
학창 시절,
매사에 어리버리한 나를 많이 가르쳐 주었지
특히 너희 집 가는 길
도서관 돌길을 지날 때
내가 그랬지 "생리를 하는데 아래가 쓸려 아파서 잘 걷지를 못 하겠다" 했더니
"이렇게 걸어봐"하면서 바둑판 돌길을 엇박자로 뛰면서 춤 추듯이 걸었잖니?
기억이 나니?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산학 후배님
반가운 이름 보고 잠깐 들어왔어요
지난번 홍성 용봉산 산행 때
후배님의 깍뜻한 선배 예우에
어찌나 황송하고 쑥스러웠는지... 고마워요
제고 5회 부인들 모임에서의 산학이...
사리 분별의 명확함
잔잔한 미소
대중을 압도하는 글
신비스런 카리스마까지 느껴지는 고고함
이런 후배님의 기는 보는 이에게
훌륭한 피로 회복제가 되고도 남겠죠?
오늘 네가 올린 글, 서로에게 어찌해야 편안할 수 있을지 다시금 생각케 한다.
이번 주말 청풍명월에서 만나 그간의 회포를 풀 수 있기를 바래.
함께 못가는 순희야! 네 마음도 그곳에 풀어주마.
영자야, 반가워.
예쁜 아기 때문에 꼼짝도 못 한다며......
저번 정희 엄마 빈소에 부부동반으로 함께 왔다며
정희가 많이 고마워 하드라.
좀 정리가 되면 일일이 전화 넣는다고 했는데, 그 말도 못 전했네.
미안해.
토요일에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으네
아기 사진도 가지고 오렴.
외할머니 닮았으면 인물이 대단하겠다.
예쁜 조카 지운이의 이야기 보담 짧은 너의 이야기가 가슴에 더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