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조가비의 꿈>
1)산을 찾는 이들
사위(四圍)가
시커먼 장막에 가리어진 한밤중,
아직 來日이 기지개를 켜기도 한참 전(前)에
혼자 버스에 몸을 싣고 긴 시간 내달아
산을 찾아와 새벽안개를 뚫고
수도 없는 외로운 땀방울 산에 흩뿌리고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정상(頂上)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을 가슴 가득 삼키며
한숨 같은 일상(日常)을 털어버리는 이들...
그들 중에는 고독을 그렇게 짓씹고,
짓이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그저 산이 좋아,
거짓 없는 이야기 들려주는
맑고 청량(淸凉)한
어머니와 같은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이들도 있으리라.
그도 저도 아니면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나왔고
산은 늘 거기 있으니....
2)바다를 찾아가는 나
산을 타기엔 터무니없기에 나는
언제부터인가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해지면
혼자 시도 때도 없이 무작정 차를 몰고
강원도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어느 산기슭을 찾거나 해변의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마주보고 파도와 말 없는 대화하곤 한다.
그럴 때는 우리나라가 작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불쑥 그렇게 출발해놓고 가다가
거리가 멀다보면 애초에 일었던 그 기분이
슬며시 퇴색(退色)해버릴 수도 있을 거고
그러면
계속 갈 수도,
그만 돌아올 수도 없을 텐데...
기껏해야 2~3시간이면
처음 그 기분이 채 사그라지기 전에
푸른 동해바다를 마주할 수 있는
작은 우리나라가 좋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난
<소한민국만세(小韓民國萬歲)>라는 글도 썼었지.
3)카페 '고독'
오늘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하 답답해서
오랜만에 바다를 찾아 나섰다.
중간에 잠시 국수로 간단히 요기하고
커피로 띵한 머리를 깨우는 등 시간을 굴려가며
카페 '고독'에 도착하니 10시가 채 안 됐다.
문이 아직 잠겨 있다.
하필 오늘 휴무일인가?
카페 뒤로 돌아간다.
거기 텃밭에 그녀가 삽질을 하며
이마에 송알송알 구슬땀 심고 있었다.
“어! 일찍 출발하셨나 봐요.”
“네.”
“원래 11시쯤에 문 열어요.”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다행히 크게 경관(景觀)이
변하지도, 상(傷)하지도 않았다.
4)하얀 조가비와의 대화
탁자 쟁반에
조가비와 소라가 한 움큼!
하얀 조가비 하나 손에 들고
꿈꾸듯 아련한 추억에 잠긴다.
작년 이맘때
카페에는 그날따라 제법 여남은 명 되는
남녀 손님들이
몇 테이블에 나누어 앉아있었지.
스피커에서는 뉴 에이지 음악인
Liewellyn의
Queen of the Moon이 뱉어내는
하프소리가 온몸을 감싸듯 울려 퍼지고 있다.
잠시 후 이번에는 다소 밝고 경쾌한
댄스음악이 뒤를 잇는다.
그 때 저 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이들 중
두 여인이
floor에 나와 스텝을 밟는다.
춤추는 모습들이 경박하지 않고
참 예쁘고 격조가 있다.
많지도 않은 손님들이지만 누구 하나
이런 돌발적인 사태에 눈 곱쳐 뜨지 않고
순수(純粹)하게 즐기는 눈으로 본다.
춤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박수, 나도 가벼운 박수...
그들도 가볍게 목례를 하곤 자리로 가 앉는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와 스페인의 경기실황방송을 보느라고
들어간 어느 카페에서
우리나라가 이기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알지도 못하는 이들과 하이파이브 하던
그런 코드가 오늘 여기에서도 자연스럽다.
여기 저기 탁자에는
와인 부딪치는 소리 맑게 울린다.
5)개여울
나는 잠시 후 와인을 반 쯤 남겨둔 채
저 아래 모래사장으로 내려간다.
거기에는 아까 테이블에 앉아 있던
또 다른 두 여인이
머플러 날리며 모래사장을 거닐고 있다.
머플러가 날라 가버릴 듯 제법 선선한 날씨지만
그들은 아랑곳 않고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다.
그중 한 여인이 모래사장 위 바위무덤에 앉더니
방금 전 주운 하얀 조가비를 뺨에 비비며
춤추는 잔물결에 발을 담근 채
저 앞 수평선을 응시하고 있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 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이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나지막이 여인이 부르는 노래
그것은 <개여울>이었다.
아마존 덩치에 걸맞지 않게
‘정미조’가
마치 커다란 망토를
천천히 우아한 동작으로 걸치는 것과 같은,
곱게만 불러 조금은 답답했던
바로 그 창법(唱法)으로
나지막하지만 또렷이 부른다.
지를 때 지르고 꺾을 때 꺾는
요즘 리메이크한 가수 ‘적우(赤雨)’스타일의
시원한 창법과는 다른,
그래서 이럴 땐
더욱 조용히 부를 수 있는 안성맞춤의 분위기다.
그런데
여인은 갑자기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낀다.
그렇게 여인은 밀려왔다 밀려가는
흐르는 바닷물에 아마도
그녀의
지우고 싶은 기억,
쓰디쓴 회한,
아픈 추억을 씻어내고 있나보다.
1년 전 그들의 옛 그림자를 좇아
계단을 따라 해변으로 내려 가보려 하니
당시에도 많이 삭았었던 철(鐵) 계단이
이 번 해일(海溢)로 인해
철저히 구겨져 철거됐고
마침 오늘은 '사리' 날이라
더욱 가까이 들어온 바닷물이
그들이 앉아
생각을, 추억을, 고민을, 슬픔을
바닷물에 흘려보내던 바위무덤을 덮고 있다.
낭만(?) 추억(?) 그런 것을 찾아오진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나를
조여 오는듯한 일상(日常)에서
잠시 도망쳐 나왔을 뿐이다.
그리고 생각을 좀 더 정리하고 싶었다.
6)바이킹 부부(夫婦)
190cm가 훌쩍 넘는 바이킹 거한(巨漢)!
그는 1980年代에 설악산의 한 산장(山莊)에서
산장지기를 했고 그 오랜 수고를 기려
많은 지기(知己)들이 십시일반 추렴(出斂)하여
카페 ‘고독’을 차려주었단다.
그가 그 큰손으로
커피를 찻잔에 받쳐 들고 나올 때
커피 잔은 한낱 간장종지에 불과했다.
나는 몇 년간 그저 조용히 다녔다.
그러다 한 이 삼 년은 못 가고 어느 해 가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웬 부인이
혼자서 조금은 손에 익지 않은
서빙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
그리고 그 이듬해에도...그 부인만 홀로...
" 그 덩치 큰 남자 분 어디 가셨어요?"
"아, 남편 말씀이군요, 그 분 ... ...!"
아! 그때서야... !
“바깥 분 가셨어요? 어쩌다!
아직 그럴 나이도 아닌 듯싶고
보기엔 황소라도
한 주먹에 때려잡을 만큼 기골이 장대하시던데...”
“네 재작년에 갑자기 며칠 앓다가 그냥 가버렸어요.”
나는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지 못한다.
그녀의 가족상황도 마찬가지고...
다만 수년 전 내가 다닐 때는 앞에 너른 공터가
한가로이 여러 대의 차량을 품에 안고도 여유롭더니
어느 핸가 바로 코앞에 바짝 붙여
‘레퀴엠’이란 조금은 무거운 이름표를 단
카페 하나가 새로이 혹처럼 붙었다.
땅주인인 이장(里長)이
더 많은 액수를 제시하는 새 사람에게 팔았단다.
이쪽에서 오래 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자기에게
선처(善處)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했지만...
여기서도 슬프지만 냉정한 경제원칙을 보게 된다.
‘레퀴엠’이 식사 종류는 더 다양하지만,
아니 ‘고독’은 이젠 그나마 과거 몇 가지 내놓던
식사메뉴마저 없어지고
커피와 와인만 있지만
나는 ‘고독’에 내 몸을 들어앉힌다.
<‘고독’은 방해받지 않는
평온한 시간과 마음의 평정이 피어날 수 있는
신선한 기운이 있습니다.> 라는 아포리즘이 없어도...
‘오향숙’ 여사!
아마도 그녀는 우리네 나이또래거나
아님 좀 아래일 것이고
젊어서는 그래도
꽤 괜찮은 얼굴의 여인이었으리라.
하지만 지금 그녀는
승복(僧服)같은 먹물 빛 바지를 입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온통 백발이다.
당장 호구지책(糊口之策)에
안팎으로 바쁜 모습이다.
더군다나 왼쪽 치아가 하나 빠져
검은 실루엣을 크게 드리워도
아랑곳하지 않거나
어쩌면 신경 쓸 형편이 안 되는,
여하튼 지금은
여자이기를 짐짓
유보(留保)할 수밖에 없는 이다.
“금방 안 가실 거죠?
저 집에 가서 식사 좀 하고 올게요.”
나는 조용히 뒤로 쓰러져 앉아
이즈음 나를 사로잡고 있는
머리 아픈 명제(命題)를 좇아 상념(想念)에 빠진다.
한참 후 탁자위에 놓인 시집(詩集)을
무심코 한두 장 읽어나가다가 이내 푹 빠진다.
집에서 나올 때나 별다르지 않게
마음이 개운해지지도,
상쾌해지지도 않았지만 어쩌랴!
일단은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도 나와야겠다.
방금 산 시집 5권을 싸들고
서울로 차머리를 돌린다.
낮부터 심상치 않던 먹장구름이
기어코 천둥과 함께 빗방울을 뿌리더니
나중엔 아예 터놓고
쏟아 붓는 그 길을 숨차게 돌아왔다.
우리네 정서(情緖)와도 맞아 떨어지는
Greece 음악이 참 가슴을 후벼 판다.
조립한 진공관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소리가
안에서도 밖에서도 내 몸을 감싸듯 안겨온다.
밖의 테라스에 있는, 벌집모양으로 만든
스피커소리도 묵직하며 여운(餘韻)이 있다.
안에 나팔모양의 스피커도 소리가 참 좋았었는데
남자가 없다보니 한 번 고장이 난 후
이제는 울음을 잃고 있다.
언제 스피커 전문가인 친구 H
자네 그것 좀 고쳐주게나.
바이킹 남편이 히말라야 고산들을 등반하면서
하나 둘 가져온 찻잔, 주전자 등 등
그들 부부(夫婦)의 많은 사연과 역사를 간직함직한
오밀조밀한 소도구들과 향긋한 커피 한 잔,
그리고 하늘과 맞닿은 바다가 병풍(屛風)처럼 드리워진
그 곳,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남애리 152-21 소재(所在)
Cafe ‘고독’은 분명
시인(詩人) K의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잉태(孕胎)해 줄 수 있을 터이다.
우리 언제 동행(同行)하자.
고독의 길 찾아서...
바닷물이 뒷걸음치는 ‘조금’ 때에 맞추어
모래사장과 바위더미가
더욱 그 모습을 드러낼 때
그 바위에 앉아 발 담고
출렁이는 파도의 잔물결에
우리 남자들의 가슴속도
씻어 내리며
회색빛 옛 추억들을 저 먼 바다로 띄어 보내자.
내게 시간이,
그리고 마음에
여유(餘裕)가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언제라도...
<소한민국만세(小韓民國萬歲)!>
텅 빈 내 가슴, 짭조름한 바다
그 거칠은 숨결에 찢어발겨 풀무질한다.
켜켜이 쌓인 진애(塵埃)의 꺼풀,
바다에 부딪혀 작열(灼熱)하는
은비늘 햇살이 벗겨낸다.
삼킬 듯 밀려 왔다간 속절없는 포말(泡沫)만 게워놓고
흔적(痕迹)도 없이 사라지는
끝없는 반복(反復)의 몸짓에 하나 된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다...
내 강산(江山)은 작아서 참으로 좋다.
바다를 向한 설레는 내 마음 시들지 않고
온전히 바다와 만날 수 있으니...
限도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광활(廣闊)한 美國의, 中國의, 대평원(大平原) 한가운데에서
나는 얼마나 왜소(矮小)한 감상(感傷)에 빠졌었는가?
하지만 불쑥 부르튼 흥분(興奮)된 마음,
변덕 끼어 들 틈도 없이
바다를 만날 수 있는
내 땅 소한민국은 날 행복(幸福)하게 한다.
해거름에 돌아 올 수 있는 우리나라 소한민국은 참 좋다.
또한 아스라이 펼쳐진 수평선(水平線)은
大國이냐 小國이냐의 분별(分別)을 놓게 해서 또 좋다.
내 귀는 소라껍데기
바다소리가 듣고 싶어 <장 꼭또>
인자(仁者) 요산(樂山)이요
지자(知者) 요수(樂水)다. 라는 분별(分別)을 놓자.
011-Bohemian 씀

하얀 조가비 / 박인희
고동을 불어본다
하얀조가비 먼 바다 물 소리가 다시 그리워
노을진 수평선에 돛단배 하나 루루루 하얀조가비 꽃빛 물든다
귓가에 대어본다 하얀조가비 옛친구 노래소리 다시 그리워
황혼의 모래밭에 그림자 한쌍 루루루 하얀조가비 꿈에 잠긴다
루루루 하얀조가비 꽃빛 물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