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한숨 6
副題 : <晩秋에 듣는 에디트 피아프>
많지 않은 LP판이,
그것도 전부 사람의 어깨를 짓누르는 노래만으로 가득했다.
사랑의 노래이되 슬픔, 절망, 고독이
절절이 묻어 나오는 침울한 안개와 같은
그런 노래와 경음악, 트럼펫 연주곡 일색이었다.
거기에 피아프가 있었고
사랑의 찬가, `장밋빛 인생, 등
타이틀은 그럴 듯하지만
그것은 작은 새의 처절한 절규였다.
피아프는 독(毒)이었다.
누나는
특히 피아프를 종일 턴테이블에 올려 세웠다.
나는 그런 누나가 조바심 나도록 걱정됐다.
인생의 쓴맛을 처절히 겪은 피아프이기에
그가 뱉어내는 노래는
이루지 못한 완벽한 사랑과
행복한 인생에 대한 몸부림이요 비원이었다.
음악이라는 것이 편식(偏食)을 할 때
그것은 마약보다 무서울 수 있다.
동생과 나는 음모(陰謀)를 꾸몄다.
우선 첫 단계로 우리는 누나에게
명랑하고 따뜻한 음악이 담긴 디스크를 선물했다.
그러나 누나는
무겁게 젖은 자기의 음악에만 빠져 있었다.
그렇게 1~2 년이 지나 드디어 기회가 왔다.
우리는 누나의 턴테이블을
자연스러운 실수를 가장해 망가뜨려 버린 것이다.
그리고 누나는 어느 날
갖고 있는 디스크를 내게 전부 주었다.
나는 그것을 모두 깨뜨려버리고...
그렇게 피아프는 내게 너무 진하게 다가왔었고
그래서 긴 세월 기피(忌避)인물이 돼 버렸다.
당시 이혼으로 상처 입은 누나가
그 후에도 밖에서 계속 피아프와
밀회를 했는지까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20년 전(前) 어느 술집에서
아가씨가 부른 노래가 멜로디는 단순하지만
가슴에 무척 진하게 와 닿았다.
제목을 물어보니 `남의 속도 모르고` 이란다.
그러나 그 아가씨는 그 노래를
선배 마담에게 주워들었다며
그 이상은 알 길이 없었다.
한번 듣고 겨우 앞의 한 소절만
내 입에서 뱅뱅 돌 뿐 그렇게 잊고 지냈다.
어느 날 무심코 듣고 있던 라디오에서
그 멜로디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아무 前 後 소개도 없는 경음악이라
“아니 그 노래가 샹송이었었나?”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 노래가 피아프의 노래였었다.
피아프의 오랜 연인(戀人)인 친구 K가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후
내가 들었던 한국번안노래는
작고한 가수 나애심 님이
부른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원곡 자체는
Damia 라는 가수가 먼저 불렀는지
피아프가 먼저 불렀는지 잘 모르겠다.
국내에서도 나애심, 이외에 배호와 은희가
부른 번안노래가 있는데
내 기호로는
나애심이 부른 노래가 더 와 닿는다.)
마침 이즈음
피아프의 전기소설이 번역되어 나오면서
간단한 책 소개 기사가
도하(都下) 몇 신문에 기재된 바
그 중 두 개 정도를
짜깁기하여 그 내용을 아래에 쓴다.
이 글을 읽으면 제우(諸友)들은
내가 왜 여태껏
피아프를 피해 다녔는지 약간은 짐작이 가리라.
그녀의 간단한 전기를 함께 싣는다.
다음:
예술가들의 인생은 순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아무리 창조적 기질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순탄한 인생을 살 경우
훌륭한 예술가가 되기는 힘들다고 한다.
가족사의 불행 같은
개인적인 아픔이나 전쟁 등
시대적 아픔이
예술의 자양분이 되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이 같은 예술과 아픔의 인과관계 등은
20세기 최고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경우에서도 확인된다.
유명한 전기 작가 실뱅 레네가 쓴
에디트 피아프,를 보면
가슴 가장 밑바닥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가녀리면서도 무겁고 슬픈 듯 하면서도
경건한 그녀의 목소리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이해가 된다.
피아프는 1915년
곡예사인 남자와 길거리 여가수 사이에서
하룻밤 즐거움의 대가로 태어났다.
그녀는 부모의 외면 속에 술주정뱅이 외할머니,
매음굴을 운영하는 친할머니 집을 전전했으며
각막염으로 몇 년 동안 맹인 생활을 하기도 했다.
17 살 되던 해에
상품배달원 남자를 만나 동거했지만
남자는 어린 딸아이를 남기고
다른 여자에게 가 버렸다.
어느 날 딸이 죽고
피아프는
딸 시신을 처리하는 데 드는 돈 10 프랑을
마련하기 위해 남자를 유혹해야 했다.
앙상하고 작은 몸을 떨며
자신의 부모가 그렇게 살았듯
노래 몇 곡에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으로 살아가던 피아프는
카바레 사장 루이 르플레의 눈에 띄어
카바레 무대에 서게 되고
작은 새라는 뜻의
`피아프, 라는 이름도 사장이 지어준다.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피아프는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라도 하듯 많은 남자를 만났다.
신장이 147 cm 의 초(超)단신인
작은 여인 피아프는 남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샹송의 여왕, 피아프는 언제나 사랑을 꿈꿨다.
하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위 연인들은 단지
피아프의 명성을 이용하거나,
피아프에 기대어 편안한 한 때를 보내려는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보잘것없는 부두 노동자였던 이브 몽탕과
작은 카바레를 전전하던 조르주 무스타키 등이
그녀의 보살핌에 힘입어
당대 최고 가수로 발돋움했다.
진심으로 서로 사랑했던 상대인 마르셀이
비행기 사고로 죽으면서 피아프는 비탄에 빠진다.
“빨리 보고 싶다”는 자신의 성화 때문에
배대신 비행기를 탔던 게 화근이었다.
그 아픔을 자양분으로 직접 가사를 쓰고 부른
`사랑의 찬가, 이브 몽탕과의 사랑이 빚어낸
장밋빛 인생, 등 피아프의 노래를 들으면
영혼의 상처를 입어본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인생에 대한 처절함을 느끼게 된다.
빛나는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한 무대 위의 피아프,
그리고 평생 절망과 고독 속에서
완벽한 사랑을 찾아 헤맨 피아프는
그 후 병마와 남자 사이를 방황하다가
결국 48 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예술은 철저한 대가를 요구한다, 는 말이 있다.
재능과 영감을 준 대신
다른 걸 빼앗아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에디트 피아프가 부른 영혼의 노래들은 남았다.
역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