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지난 날 어느 歲밑에 친구 K와 
미시령 백담사의 한 순두부 집을 다녀와서
쓴 글로 한국의 피아프로 가슴 속 깊이 각인된 
한 후배에 관한 글과 
그에 대한 친구들의 덧붙이는 말입니다. 

다음: 

친구들! 
오늘 술은 냄새도 맡지 않았는데, 
이 늦은 밤, 
무척이나 마음이 허허롭다. 
그저 서러운 그리움으로 가슴 시리다. 
흘러간 화려한 세월에 대한 향수일까? 
마치 광야에 홀로 버려진 막막한 심정이다. 
문득 
며칠 전 예상치 못하고 찾았던, 
백담사에 사는 피아프(작은 새) 가  
물안개처럼 뿌옇게 떠오른다. 
백담사를 다녀온 그날 내 일기장에 
써 날린 글을 덧붙인다.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힘내라. 
안녕. 
011-Bohemian

 제목: <백담사의 작은 새>

나 자신도 항상 실감하지만 
종교라는 문제를 떠나서 
분명 사주팔자라는 것이 있지 싶다. 
어제 예정에 없이 백담사까지 흘러 가 
그곳에서 영혼이 풍요로워져 왔다. 
그러나 그 풍요로움은 
뭔가 섬뜩한 풍요로움이다. 
아! 神은 참 난해(難解)하면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림을 자주 그린다. 

[백담사의 겨울 밤] 

1.숫자세기
  
21,... 22,... 그러나 오늘도 
역시 숫자를 세다가 놓쳤다. 
근육을 찢으며 박혀오는 주사바늘의 느낌,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나는 이를 악물고 숫자를 센다. 
오늘이 열 번째 맞는 주사다. 
몇 년 전에 교통사고로 인해 다친
목의 디스크 치료를 위해 주사를 맞으면서  
마음속으로 그렇게 세는 것이다. 
대충 평소에 30 방 정도 맞았던 기억으로 
숫자를 세며 그 아픔을 이겨내지만 
오늘도 역시 아픔을 참느라 용을 쓰다 보니 
세던 숫자를 놓친다. 

물리치료까지 모두 마치고 의료보험도 안 되는 
비싼 치료비를 치르고 병원 문을 나서니 
한층 얇아진 지갑에 답답한 짜증이 난다. 
하늘은 저렇게나 맑기만 한데 
이렇게 시간과 돈을 
허무하게 쏟고 있는 내가 보기 싫다. 

친구라도 불러 어디론가 
바람으로 샤워하고 싶다. 
최소한 셋이면 둘은 서로 대작(對酌)을 하고 
한 명은 운전을 하니 좋을 것 같아 
열심히 휴대폰 품을 팔아보았지만 
결국 하릴없이 K와 둘이 출발한다. 

2.날라 가버린 겨울바다 

둘이서 이런 저런 목적지를 조합(組合)하다가 
동해의 겨울바다를 만나러 가는 것으로 합의, 
중부고속도로로 가다가 턴해서 
팔당을 지나 홍천 가는 코스로 올라섰다. 
하지만 늘 어느 방향으로 
튀어 오를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k의 죽 끓듯 한 변덕을 익히 아는 나는 
애초에 이 합의에 대해 
절대적인 기대는 하지 않았다. 

가는 도중 역시나 K의 主 특기대로 
예정에 없이 불쑥, 
홍천에서 버섯을 재배하는 
고교 동창 집에 가자는 
줄기찬 고집을 꺾고 한계령으로 접어든다. 
그러나 
“일단 한계령으로 넘어가 바다를 보며 
생선 매운탕이나 먹고 커피로 입가심하고 
나중 돌아올 때는 미시령으로 틀어 
백담사 순두부 집에나 들르자” 고 
순두부 집을 들먹인 것이 내 실수였다. 

K의  돌발적이지만, 이번만은 
확실한 미끼를 물고 세차게 흔들어대는 
힘 좋은 다랑어와 같은 
만만치 않은 떡 고집에 
한계령길이 한참이나 깊어진 곳에서
車머리를 돌려 
백담사 순두부집을 찾아들었다. 
마침 우리가 찾는 주인은 
부부동반으로 아침에 볼일 차 
서울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고 
<신남>쯤 왔으니 
한 시간 후면 도착된다는 얘기다. 
이쯤에서 겨울바다여행은 
날라 가 버린 것이지만 
이것이 K와의 동반여행이 늘 안겨주는 
非 예측성 풍요(豊饒)로움이라 여기고 
기다리는 동안 소주로 잠시 워밍업을 한다.    

3.인간만세  

(그녀는 연대 음대 71학번으로 첼로를 전공했다. 
독주회도 여러 번 했던 재원(才媛)이다. 
아버지는 교장선생님이고 
시동생은 3명이 서울의대 재직 중이다. 
남편은 카오디오 회사를 크게 운영하고 
아들만 셋을 놓고 
그렇게 알콩달콩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93년? 인가 
남편회사가 재기불능의 큰 부도로 
거덜이 나면서 수중에 달랑 50만원 지니고 
야반도주(夜半逃走) 비슷하게 
이곳 백담사 어귀까지 흘러 들어왔다. 
마침 남편이 젊었을 때 산을 타던 산악인이라
자주 이곳 설악산을 찾으며 당시 절에 상당기간 
묵을 때마다 어깨너머로 
스님의 순두부 만드는 비법을 
눈여겨보았던 것을 밑천으로 이곳 백담사에서 
순두부 집을 최초로 세(貰)를 내어 개업하여 
나름대로 성공했다. 

어느 날 동네 어린 소녀가 비명횡사했을 때 
그녀는 첼로로 진혼곡(鎭魂曲)을 연주해준다.)

뭐 대충 이런 내용으로 KBS의 인간만세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송할 때 
오지랖 넓은, 우리의 K 
방송을 듣다 말고 방송국에 
전화를 했다는 얘기다. 

“나도 거기 가서 살고 싶은 사람인데 
어딘지 한번 찾아가고 싶다” 고 . 
그리고 곧바로 우리의 K는 
백담사 순두부 집을 찾아가 
그 정서(情緖)가득한 풍부한 입심과 
운수사 와불(臥佛)을 쏙 빼닮은 긴 얼굴에, 
처연한 우수의 물기 어린,
깊게 가라앉은 눈을 앞세워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누었고 
거기서 하루 유숙(留宿)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 
가족들과 함께 방문하기도 했단다. 

“내가 서울로 떠나올 때 
그녀가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을 해 주었어” 라 말하며 K의 눈빛은 
무척이나 그윽해진다. 

그렇게 10 여 년 전의 
그 정경을 그리며 술잔을 기울일 때 
이미 벌써 K의 어깨는  
형편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4.작은 새 

한 시간이 좀 지나 그들 부부(夫婦)가 도착했다. 
그런데 ! ! ! 
남편은 왼쪽 발을 거의 끌듯이 심하게 절고 있었다. 
나중 보니 왼쪽 팔도 전혀 못쓰고 있었다. 
'95년인가 ’96년인가 풍(風)을 맞았다는 얘기다. 
잠시 후 아내도  
합석(合席)해서 우리는 함께 식사하며 
10 여 년의 공백(空白)을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 ! ! 

그녀는 오른 손에 
검은 망사 장갑을 끼고 있었다. 
오른 손이 엄지만 남고 손가락이 
모두 완전히 잘려졌다 한다! 
아니 첼로 연주하는 사람이 
손가락이 모두 잘리다니... ! 

남편이 풍을 맞고 
몇 년 동안 무지 힘들었단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장애자가 되고 난 후 부부(夫婦) 간에 
사소한 일로도 오해와 불신, 의심, 자학 등 
“너 다른 사람 만나 떠나라” 식으로 
툭하면 삐지는 일 등으로... 

그러다 최근에 이번에는 부인이 다시 
메주 빠는 기계에 손이 말려 그리되자 
이제는 오히려 서로 이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는 얘기... 

당시 그녀는 
그대로 기절한 채 병원에 실려 갔고 
바로 뒤이어 시어머니가 
잘려진 손가락을 수습해 가져와 
봉합수술을 했으나 실패, 
지금은 손등만 남은 상태란다. 

“처음에는 하느님을 원망도 하고 
당신(하느님) 도대체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냐고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기도 많이 했죠. 

그런데 신부님이 내게 
“너는 도대체 무엇을 잃었냐? 
손? 그것이 애초에 네 것이었냐? 
하느님 것인데 
남보다 좀 일찍 가져가셨을 뿐이다.” 
라는 말씀에 수긍하고 나서부터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럴수록 더욱 남을 도우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사랑은 나를 잊는 것 아니겠어요? 
(ego를 버리는 것) 

큰 아들은 연대 경제과를 졸업 후 다시 
音大를 들어가겠다고 하고 
둘째는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했고 
막내는 아직 중 3 학년이란다.

 “화려한 조명이 나를 비추고 
청중석은 캄캄하고 
나만이 환하게 노출된 채 
홀로 어둠 속 수많은 청중을 
상대하던 연주인만큼 학교에서도 
청중을 제압할 수 있는
도도함 즉 어떤 카리스마를 
풍기도록 배웠던 제가 
여기 와서 도라지 캐고 순두부 짤 때도 
그런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 했지만 
손이 이렇게 된 후로 
더 많은 스트레스와 자기갈등, 
다짐의 과정이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나를 버리는 것을 
배우고 실천하면서 많이 극복하고 
이제 그 큰 깨달음과 사랑을 
나누어주려고 해요.” 하던 그녀 ! 

나는 한 영혼(靈魂)을 
보았고,  
만났고,  
부딪혔다.  

그러나 
그녀는 몹시 지쳐 보였고 핏기 없어 보였다. 
에디트 피아프처럼 무척이나 힘겨워하는 
한 마리 <작은 새>이었다. 

5.목이메인 첼로 

아! 그러나 눈물이 난다. 
우리들 각자 모두는 서로 
애써 밝은 듯한 표정으로 얘기하지만 
가슴속엔 눈물이 번진다. 

우리의 대화(對話)내내 
첼로가 내 가슴속에서 울고 있었다. 
비록 손가락이 없어 첼로는 연주할 수 없어도 
그 첼로소리는 내 영혼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6.불발(不發) H 상봉(相逢) 

옆방에 이부자리 준비해놓고 자고 가라 했지만 
나는 늘 아쉬울 때 떠나야 할 것 같았다. 
일면(一面) 정상적인 사고(思考)를 관장하는 
뇌세포중 상당부분이 풍으로 죽은 남편이 돌아와 
어떤 오해나 그 비슷한 감정을 가져서도 안 되기에 
나는 이미 축 늘어져버린 K를 부둥켜 일으키고  
애마(愛馬)를 깨웠다.(남편은 식사만 마치고 
진부령에 있는 영업소에 들렀다 오겠다며 먼저 자리를 비웠다.) 

미시령을 넘어  
해안선 7번 도로를 따라 흘러 가다가 
몰록 부산에 들러 H를 만나 
한잔 술을 나누려 했는데 
K가 또 예의 그 럭비공 변덕대로 
급히 말머리를 서울로 틀라고 하는 바람에 
H를 만나보려던 내 속셈은 
다시 불발이 되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녀의 지친 어깨와 검은 장갑손이, 
남편의 풍 맞은 반신(半身)이 
나를 계속 짓누르며 따라왔다. 

그것은 결코 그녀가 우리의 음식 값을 
받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친구들아 언제 우리 모두 함께  
소리 없는 
無연주 첼로 소나타를 들으러 백담사에 가자. 

餐霞堂 주인 午亭 씀  


덧붙이는 글 

보낸 이: C  

찬하당의 칠정(七情)이 몹시 출렁이었는가보다 
마치 어릴 때 본 영화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죽어서는 안 될 사랑하는 아내 캐서린이 
병원에서 출산 중 생명을 잃고 , 
병원 문을 밤비 속에 돌아서 나오는 
헨리 중위의 심정(心情)인 듯.... 

세상은 때때로 뒤돌아 보이는 미련과 
훅 스쳐가는 쓸쓸함이 있다 
모두 우리의 분투하는 후배 
고(高)여사의 행운을 빌어주자 


보낸 이: S  

횡설수설:   

이제 우리나이 쯤 되면 한해가 가고 
새해를 맞는다는 것도 뭐 그저 그런 것이 
아니겠나 싶은데 
그래도 德談한마디라도 하고 시작해야겠다고 
뜸 들이는 동안 역시 우리모임의 Two-Top인 
오정과 만정 합작으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같은 내 가슴을 두드리는데...... 
몇 남지도 않았을 것 같은 

우리 동시대의 마지막 romantist 들답게 
바람처럼 사건을 만들어 
이렇게 <백담사의 작은 새> 사연을 들려주니  
웃어야 옳으냐? 울어야 옳으냐? 

너무 Dry하게 살면서 분위기나 기분이란 것들이 
메말라버린 지 오래인데  
깔아 논 멍석 덕에 오랜만에 가슴 적시누나. 

Marianne_Faithfull_This_Little_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