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회숙 누님께 드리는 서신(書信) 1

  누님! 참으로 오랜만이죠?
그러니까 40여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렸네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마도 제가 중2 시절 어느 날 하굣길에 제 어깨를 툭 치며 저를 불러 세우고,

“너 요즘 동생 얘기를 들으니 단테의 신곡(神曲)을 끼고 다닌다며?
그런 책 아직 너에게는 무리야, 좀 편한 책을 읽어, 그리고 되도록 공부나 열심히 해.”
라고 따뜻한 충고의 말씀을 해 주시던 누님의 모습이...

   누가 가분수 아니랄까 머리통만 유난히 크고 그때쯤 겉멋이 잔뜩 들어 단테,
쇼펜하우어 등 의 두껍고 난해한 책을 읽으며 까불대던 저에게 그 후에도 누님은 몇 번인가
세상을 보는 넓고 깊은 지혜와 밝은 눈을 인도해 주셨지요.

   저는 인천 중을 나와 제고 11기에 입학하여 다니다가 중간에
서울로 전학을 가는 바람에 연결고리가 희미해지다 보니 뭔가 서먹하고 뜨악한 기분에
더욱 옛 친구들을 거의 못 만나는 가운데 이렇게 나이 먹고 말았습니다.

   절친했던 친구, 용이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서양인처럼 눈과 코가 크고
시원한 이마에 멋진 카리스마가 풍기던 친구가 그리웠고 누님이 얼마나 애통했을까
하는 마음에 저도 억울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누님을 늘 대단한 여자, 아니 여자를 떠나
대단한 사람으로 기억하며 자주 입에 올립니다. 흔히 누님을 일러 인일의 자랑이라 하지만
저는 카리스마 넘치는 누님은 인일을 넘어서 대한의 자랑이라 생각합니다.

     만나서 서로 손을 잡고 체온을 느끼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40 여년의 공백을 채울 Inputs를 이렇게 서신으로 먼저 드리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 같아
당분간은 계속 서신으로 보고 싶은 마음을 대신하겠습니다.
마침 저도 편지형식으로 대부분의 글을 친구 등에게 띄우는 만큼 저의 이런 저런 단면과
소식이 담겨 있는 글들을 몇 차례 더 옮겨 드리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