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그리운 선생님
나의 고교시절 국사를 가르치시던 강 병 문 선생님이 계셨는데 일명 학생들 사이에
“미친개”개라는 별명을 가지신 분이었다.
학기 초 첫 시간에 들어오셔서 당신의 경남고교시절 한 여학생과 데이트하다 물에 빠진
사건을 들려주셨다.
어느 날 어여쁜 여학생과 낙동강 변을 거닐며 당시 다른 학생들이 그랬듯이 김소월의
시집을 들고 고상하게 낭송을 하며 강변에 매여 있는 나룻배를 타고 강으로 저어 나가셨는데
배가 낡아 구멍이 뚫려 물이 솟아오르기 시작 했다 한다.
그전까지 그 여유롭고 신사 같은 행동은 온데간데없고 “야! 이년아 빨리 물 퍼!!!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야! 신발짝으로 퍼”하며 데이트고 뭐고 허둥지둥 하였다 한다.
그 이후는 교육상 도저히 얘기 할 수 없다고 결말을 끝내 말해 주시지 않으셨다.
늘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학생들을 웃겨 수업을 항상 재밌게 하셨고 요점 정리하여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지도하셨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출석부를 옆구리에 차고
반장의 “차렷 경례”하는 인사도 안 받고 창밖을 내다보며 시 한 소절을 낭송하거나
법어 비슷한 말을 혼자 중얼거리곤 하셨다. 70년대 당시 고교야구가 상당히 인기가
있었는데 모교야구 라디오중계가 있는 날 학생들은 집에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가져와 수업시간에 몰래 듣곤 하였다. 이 사실을 알고 교감선생님이 아침에 각 반을 돌며
라디오를 회수하는 진풍경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곤 하였다. 그날도 국사시간인데 동대문구장에서
청룡기고교야구 인천고 대 경남고 게임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용케 라디오를 뺏기지 않고 중계를
듣던 한 학생이 수업도중 갑자기“홈런이다! 홈런!”하며 소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모교선수가
역전 홈런을 친 것이다. 이소리가 옆 반으로 퍼져나가 환호의 “홈런이다!” 소리로 학교가
떠나갈 듯하였다. 다른 선생님 같았으면 아마 그 학생을 상당히 혼냈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예 라디오를 교탁에 가져다 놓아 중계를 듣게 하면서 학생들과 같이 즐거워 하셨다.
그 후 선생님은 교감선생님한테 불려가 어떻게 되셨는지 모르겠다.
2학년 수학여행을 설악산으로 갔는데 한 학생이 여관 앞 가게에 세워져있던 자전거를 몰래 훔쳐 타는 것을
국사선생님이 뺏어 타다가 자전거주인에게 붙잡혀 오히려 도둑으로 몰려 파출소까지 끌려가 곤혹을
치르는 황당한 일을 당하시고도 그 학생을 보호하느라 당신이 다 뒤집어쓰고 나오셔서는 그저 호탕하게 웃으셨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 지겨운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잠이 많은 한 학생이 아예 체육복을 책상사이
통로에 깔고 자면서 코를 드르렁 거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국사선생님이 감독으로 남아 순찰을 돌다
이 광경을 목격하시고는 우리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시더니 갑자기 당신의 슬리퍼 한 짝을 벗어 정확히
던져 자는 그 학생의 복부를 맞힌 일이 벌어졌다. 깜짝 놀라 깬 그 녀석은 “누구야! 어느 놈이야!”
하며 전의를 불태우는데 선생님은 껄껄 웃으시며 “나다 이놈아!”하시며 그래 “더 자라 푹 자라” 하며 나가셨다.
그 광경에 아이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늘 학생들의 고충을 이해해 주고 거리를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시던 선생님은 실력도 출중하셔서 쪽 집게
선생님으로 통하였고 예비고사 국사과목 출제위원으로 선출되어 명성을 날리시던 강 병 문 선생님!
지금 어디 계신지요? 정말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좋은 글 올려주셔서,
<인고70 이성현> 님이 올리시는것 처럼 올리시면
성함을 올리면 어떠실까요?
죄송합니다....(: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