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20 년 전 필자의 모친이 남긴 유언은 무슨 일이 있어도 땅은 팔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우리 한민족에게는 땅이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서 어렵지 않게 이해 할 수가 있듯이, 땅은 우리 조상들의 염원이자 限이 맺힌 존재였었다. 초등학교 시절 필자는 외 할아버지를 따라서 그 넓은 논을 자주 다녔다. 그는 논의 물꼬를 조절하면서 “이것이 다 내 땀이 배어 있는 땅이니 네가 이다음에 크더라도 물을 잘 주고 잘 지켜야 한다” 고 일갈(一喝)하시곤 했다. 아마도 꼭 같은 말씀을 모친에게도 했을 것이기에 그것은 외갓집에서 내려오는 신조 같은 것이었다.
모친이 떠나 신 후 네 남매가 그 땅을 팔아서 우선 급한 불부터 꺼보자는 제안이 수년간에 걸쳐 있었지만 필자가 최종 결정권자인 장남이었기에 우선 반대를 했다. 조상들의 땀과 얼이 배어있는 그 공간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 넓은 토지가 있는 충남 아산의 땅값은 현재 금 싸라기 땅으로 둔갑을 해버렸다. 90년대 초반에 땅 값이 조금씩 값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폭등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확실한 생각은 그 땅을 그냥 남겨두고 싶다는 것이다. 필자의 피 속에는 조상의 땅에 대한 恨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땅에 대한 사상은 한민족이라면 공통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토지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정신은 어디서 나왔을 까?” 하고 거듭 곰 씹어 보지만 역시 “땅은 조선 시대 호족들이 하급계층을 지배하는 힘의 원천이었다”는 역사에 연유하고 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땅과 권력의 함수관계를 조선시대 18세기 후반의 22대 正祖 王에서 흥미롭게 찾을 수 있었다.
正祖의 죽음의 원인이 미궁에 빠진 채로 200 여 년이 넘게 내려왔던 한국 역사에 중대한 획을 긋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 이라는 소설의 발표였다. 대학원 학생 시절 도쿄 古 書店에 들려 한국 역사에 관한 자료를 찾던 그는 우연히 정조의 죽음에 대한 음모를 담고 있는 古 書冊을 발견하였다. 세월에 밀려 빛이 바랜 그 서적에 담긴 그 역사의 족적을 ‘이인화’는 곧바로 졸업논문으로 옮겼고, 또한 후일 소설로 옮겨 사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업적으로 인해 그는 얼마 후 이화여대 교수로 초빙이 되었다.
<正祖의 토지 개혁 전략>
한국인의 땅에 대한 집착은 때만 되면 찾아 오는 철새처럼 부동산 투기 광풍으로 변했다. 이러한 땅 투기 바람은 중동에서 달러가 들어오던 7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끝없이 지속되어왔다. 부동산 투기의 역사를 짚어 본다면 양반이 주도권을 잡던 조선시대 때부터 시작되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고관대작 층이나 양반들은 조상들로부터 상속받은 땅 외에 각종 부정부패나 뇌물 등을 통하여 기하급수적으로 땅을 불려갔다. 지금도 남아 있는 벼슬을 지낸 이들의 古宅 들은 그 당시 경제를 감안할 때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호화 주택임에 틀림이 없다. 그 같은 저택과 그들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시 富의 상징인 땅이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했었다.
이 같은 양반들의 부조리를 인지하고 개혁을 꿈꾸었던 王들이 있었다. 음해와 중상모략으로 제거된 후 王에서 君으로 강등된 연산군이나 광해군이 그런 개혁을 시도했던 王이 있었다는 사실이 요즘 학계에서 거론되고 있다. “세도를 휘 두르던 양반 계급에서 소유한 토지를 정부가 몰수하거나 개혁하려고 하면 거꾸로 양반세력들이 王을 교묘하게 감쪽같이 제거시켰다” 는 파워게임 說이다. 임금이라는 시호마저 안 내려진 비운의 왕들은 그렇게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개혁의지는 역사 연구에서 그간 잘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正祖의 역사는 그들에 비해서 좀 자세히 연구가 이루어 편이다.
正祖시대에 이르러서는 이들이 소유한 땅이 왕실보다도 10배 이상이 되었다. 왕의 통치가 신하들 및 지방호족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혀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경복궁만 빼고 신하들이 한양과 그 외곽 토지를 거의 소유하고 있는 실정을 개탄한 正祖는 신도시 개발을 꿈꾸었다. 그것은 還都로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자는 개혁이었다. 그 일환으로 "수원성"을 축조하는 획기적인 개발 청사진을 우선 만들었다. 탐욕에 찬 신하들의 힘을 빼고 왕실재정의 역전을 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될 한양 땅 주인들의 집요한 방해 공작으로 결국 실패하였고, 그것이 왕의 독살과 연관이 있다는 개연성이 이인화가 찾은 고서 자료에 일부 나와 있다.
還都가 불가하다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명목상으로 행정도시를 새로이 건설하자는 계획을 밀어 부쳤다. 실상 正祖가 꿈 꾸어 오던 청사진하고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강남의 13평 아파트 한 채 값이 월급쟁이가 평생을 모아도 구입이 용이하지 않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러한 정책에는 이해가 되는 구석이 있다. 正祖가 만일 그 당시 還都에 성공하였더라면 역사는 크게 달리 쓰여졌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이 정책의 추이가 주목된다.
正祖를 노무현에 비유한다면 당시 땅의 주인인 양반들을 누구와 비유할 수 있는가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강남에 토지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환도가 못 마땅하다. OECD국가 중 빈부차가 가장 심한 나라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이 결과에 대해서 아마추어들을 데리고 정치를 시험한 노정권의 무능함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사건건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나누어 싸움을 붙였던 전투 자세는 대선 때부터 그가 즐겨 말하던 국민통합에 배치되는 사안이었다. 노 대통령이 正祖와 같은 불운을 겪지 않고 임기 종료 전까지 서울 강남에 몰려 있는 富를 전국으로 나눌 수 있는 치적 만이라도 남기고 청와대를 떠나기를 바란다.
모친이 떠나 신 후 네 남매가 그 땅을 팔아서 우선 급한 불부터 꺼보자는 제안이 수년간에 걸쳐 있었지만 필자가 최종 결정권자인 장남이었기에 우선 반대를 했다. 조상들의 땀과 얼이 배어있는 그 공간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 넓은 토지가 있는 충남 아산의 땅값은 현재 금 싸라기 땅으로 둔갑을 해버렸다. 90년대 초반에 땅 값이 조금씩 값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폭등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확실한 생각은 그 땅을 그냥 남겨두고 싶다는 것이다. 필자의 피 속에는 조상의 땅에 대한 恨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땅에 대한 사상은 한민족이라면 공통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토지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정신은 어디서 나왔을 까?” 하고 거듭 곰 씹어 보지만 역시 “땅은 조선 시대 호족들이 하급계층을 지배하는 힘의 원천이었다”는 역사에 연유하고 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땅과 권력의 함수관계를 조선시대 18세기 후반의 22대 正祖 王에서 흥미롭게 찾을 수 있었다.
正祖의 죽음의 원인이 미궁에 빠진 채로 200 여 년이 넘게 내려왔던 한국 역사에 중대한 획을 긋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 이라는 소설의 발표였다. 대학원 학생 시절 도쿄 古 書店에 들려 한국 역사에 관한 자료를 찾던 그는 우연히 정조의 죽음에 대한 음모를 담고 있는 古 書冊을 발견하였다. 세월에 밀려 빛이 바랜 그 서적에 담긴 그 역사의 족적을 ‘이인화’는 곧바로 졸업논문으로 옮겼고, 또한 후일 소설로 옮겨 사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업적으로 인해 그는 얼마 후 이화여대 교수로 초빙이 되었다.
<正祖의 토지 개혁 전략>
한국인의 땅에 대한 집착은 때만 되면 찾아 오는 철새처럼 부동산 투기 광풍으로 변했다. 이러한 땅 투기 바람은 중동에서 달러가 들어오던 7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끝없이 지속되어왔다. 부동산 투기의 역사를 짚어 본다면 양반이 주도권을 잡던 조선시대 때부터 시작되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고관대작 층이나 양반들은 조상들로부터 상속받은 땅 외에 각종 부정부패나 뇌물 등을 통하여 기하급수적으로 땅을 불려갔다. 지금도 남아 있는 벼슬을 지낸 이들의 古宅 들은 그 당시 경제를 감안할 때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호화 주택임에 틀림이 없다. 그 같은 저택과 그들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시 富의 상징인 땅이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했었다.
이 같은 양반들의 부조리를 인지하고 개혁을 꿈꾸었던 王들이 있었다. 음해와 중상모략으로 제거된 후 王에서 君으로 강등된 연산군이나 광해군이 그런 개혁을 시도했던 王이 있었다는 사실이 요즘 학계에서 거론되고 있다. “세도를 휘 두르던 양반 계급에서 소유한 토지를 정부가 몰수하거나 개혁하려고 하면 거꾸로 양반세력들이 王을 교묘하게 감쪽같이 제거시켰다” 는 파워게임 說이다. 임금이라는 시호마저 안 내려진 비운의 왕들은 그렇게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개혁의지는 역사 연구에서 그간 잘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正祖의 역사는 그들에 비해서 좀 자세히 연구가 이루어 편이다.
正祖시대에 이르러서는 이들이 소유한 땅이 왕실보다도 10배 이상이 되었다. 왕의 통치가 신하들 및 지방호족들에게는 씨알도 안 먹혀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경복궁만 빼고 신하들이 한양과 그 외곽 토지를 거의 소유하고 있는 실정을 개탄한 正祖는 신도시 개발을 꿈꾸었다. 그것은 還都로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자는 개혁이었다. 그 일환으로 "수원성"을 축조하는 획기적인 개발 청사진을 우선 만들었다. 탐욕에 찬 신하들의 힘을 빼고 왕실재정의 역전을 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될 한양 땅 주인들의 집요한 방해 공작으로 결국 실패하였고, 그것이 왕의 독살과 연관이 있다는 개연성이 이인화가 찾은 고서 자료에 일부 나와 있다.
還都가 불가하다는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명목상으로 행정도시를 새로이 건설하자는 계획을 밀어 부쳤다. 실상 正祖가 꿈 꾸어 오던 청사진하고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강남의 13평 아파트 한 채 값이 월급쟁이가 평생을 모아도 구입이 용이하지 않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러한 정책에는 이해가 되는 구석이 있다. 正祖가 만일 그 당시 還都에 성공하였더라면 역사는 크게 달리 쓰여졌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이 정책의 추이가 주목된다.
正祖를 노무현에 비유한다면 당시 땅의 주인인 양반들을 누구와 비유할 수 있는가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강남에 토지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환도가 못 마땅하다. OECD국가 중 빈부차가 가장 심한 나라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이 결과에 대해서 아마추어들을 데리고 정치를 시험한 노정권의 무능함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사건건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나누어 싸움을 붙였던 전투 자세는 대선 때부터 그가 즐겨 말하던 국민통합에 배치되는 사안이었다. 노 대통령이 正祖와 같은 불운을 겪지 않고 임기 종료 전까지 서울 강남에 몰려 있는 富를 전국으로 나눌 수 있는 치적 만이라도 남기고 청와대를 떠나기를 바란다.
2006.02.25 05:58:31
강명희씨 오랜만에 안부 인사 드립니다.
남기고 간 흔적은 안 남겼지만 가끔 강명희 동문의
컬럼을 잘 읽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 라스베가스 신문에서 컬럼을 격주로 쓰고 있습니다.
미국에 대한 소재 보다는 아무래도 조국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시사적인 글이 주를 이루지만 그래도 동문들이 읽기에 부담이 없는
글을 선택하여 저희 제고 동문사이트와 이곳에 올리곤 합니다.
이곳에 있는 한인 교포분들도 땅에 대한 맺힌 한이 있는지... 자리가
좀 잡힐 때가 되면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한 정서 때문에 인구대비 높은 부동산 브로커들의 사업이 번창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땅에 대한 한국인들의 남다른 애정이 가끔은 집착으로
변형되기도 하지만, 한번쯤은 짚고 넘어갈 사안이라서 쓴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남기고 간 흔적은 안 남겼지만 가끔 강명희 동문의
컬럼을 잘 읽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 라스베가스 신문에서 컬럼을 격주로 쓰고 있습니다.
미국에 대한 소재 보다는 아무래도 조국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시사적인 글이 주를 이루지만 그래도 동문들이 읽기에 부담이 없는
글을 선택하여 저희 제고 동문사이트와 이곳에 올리곤 합니다.
이곳에 있는 한인 교포분들도 땅에 대한 맺힌 한이 있는지... 자리가
좀 잡힐 때가 되면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한 정서 때문에 인구대비 높은 부동산 브로커들의 사업이 번창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땅에 대한 한국인들의 남다른 애정이 가끔은 집착으로
변형되기도 하지만, 한번쯤은 짚고 넘어갈 사안이라서 쓴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6.02.25 10:39:45
이훈주님!
정조와 노무현을 비교 분석한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외국에 사시면서도 국내 정세에 밝으시고 날카로운 지적은
저희만 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조에서 朝는 祖(할아비 조) 가
이이화는 이인화의 오타인 것 같습니다.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정조와 노무현을 비교 분석한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외국에 사시면서도 국내 정세에 밝으시고 날카로운 지적은
저희만 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조에서 朝는 祖(할아비 조) 가
이이화는 이인화의 오타인 것 같습니다.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2006.02.25 11:02:01
아차 심각한 오타가 있었군요...
사실 이 글은 다음주 신문에 실릴 컬럼이었는데
사전에 오타가 발견되어서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제고 사이트와 이 곳에 번갈아 가면서 글을
올리고 싶은데 인일 동문들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네요...
사실 이 글은 다음주 신문에 실릴 컬럼이었는데
사전에 오타가 발견되어서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제고 사이트와 이 곳에 번갈아 가면서 글을
올리고 싶은데 인일 동문들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네요...
역사는 자꾸 되풀이 된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환도를 기대했습니다.
길도 포화 생태가 되면 반드시 새길이 생깁니다.
도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정조와 노무현의 비교가 재미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