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 한 잔 속에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오래 전에 인연을 맺었던 모 제약 그룹의 장 회장님이 떠 찻잔 속에 떠 오른다. 필자가 플로리다 대학에 재직하던 95년 봄에 그는 신약 개발 업무 차 대학을 방문하였고, 필자의 집에서 차 한 잔 마시기 ‘ 喫茶去’ 를 함께 즐긴 적이 있다. 나직이 틀어 놓은 판소리 가락에 심취하면서 당신의 인생관에 대해 일갈한다. “ 나는 사람을 한번 믿으면 끝까지 같이 갑니다” 약국으로 출발하여 대기업으로 성장한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며 자신 있게 꺼내는 그의 소신이었다.

필자에게 사업을 해보는 것이 어떠하겠냐는 당신의 생각을 넌지시 던진다. 교수직보다 사업이 필자의 적성에 더 맞는 것 같다고 조언하며 신약개발 회사 창업에 동참하라는 제안을 한다. 그 이튿날 공항으로 배웅하면서 그의 여행 가방이 너무 시대에 뒤지고 낡았음을 발견하고 내심 놀랐다. 명색이 그룹 社 회장인데 패션과 무관한 분홍색 빛깔이    어우러진 촌스러운 가방을 갖고 해외 출장을 온 것이다. 사연이 있음 직해서 연유를 여쭈어 보았다. “삽 십 년 전 신혼 여행갈 때 샀던 가방이라 하며 사람처럼 자기가 한번 좋아한 물건은 못 쓸 때까지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얼마 후 대학을 그만 두고 그를 따라서 한국으로 들어가 벤쳐 회사를 창업하게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그와의 남다른 인연이 시작되면서 필자는 장회장 그룹의 조직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생각보다 그 조직은 단단하였다. 자기 업무 분야에서 자긍심을 느끼는 간부들과 동화하는데 적지 않은 시련이 있었다. 그러던 중 그룹의 자금 담당 김모 이사가 필자에게 관심을 내보이며 접근을 하였다.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을 즐기는 편이었기에 그를 편한 동료처럼 생각하며 친분을 다져 나가던 중 하루는 그와 긴 시간 통음을 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 어색 할 정도로 머뭇거리던 그의 모습이 술 맛을 불편하게는 했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몇 순배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이야기를 어렵사리 꺼낸다. “ 현재 큰 자금이 내 수중에 있는데 그 돈을 이용하여 나의 힘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국회의원 10명을 키우겠다” . 느닷없는 그의 말에 취기가 확 깨는 듯 했다. 물론 그 돈은 그룹의 운영 자금이었다. 곳간을 맡고 있는 사람이 주인의 재화를 허락 없이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에 쓰겠다는 생각이 참으로 한심하여 그만 언쟁이 붙었고, 그 말을 발설하면 좋을 게 없다는 협박성 경고를 들으면서 술 판이 끝나고 말았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며칠 후 장회장께 그 사실을 告했지만 그를 너무 신임하고 있던 터 이라서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한편 김이사는 그날의 술 좌석에서 있었던 언쟁에 마음이 졸렸던지 이미 자기 방어 작업에 착수하고 있었다. 그 여파로 필자는 그 조직에서 서서히 왕따를 당하면서 그룹 식구들에게서 멀어져 갔다.

몇 달이 지나고 가을 초입에 접어들었을 즈음에서 회장 비서실이라며 긴급한 전화가 걸려와 달려 갔다. 초췌하고 넋이 나간 모습으로 필자를 기다리고 있던 장회장은 김이사가 228억을 횡령하여 내일 그룹 모두가 부도난다고 한다. 깊은 한 숨을 내 쉬며 좌절하고 있던 그분께 필자 또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돈을 잃어버렸다는 데서 오는 상심보다는 믿었던 사람에게서 당한 배신에 더 상처가 깊은 듯 했다. 좋은 날이 다시 있지 않겠느냐는 위로를 해드리고 그 방을 빠져 나왔다.

그 후 그 그룹은 법정 관리로 넘어가면서 경영권을 상실하여 많은 시련을 겪고 있었다.  장회장이 60이 훨씬 넘은 연세였기에 많은 사람은 재기가 불가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세월의 무게만큼 어깨가 많이 처져있던 그분의 마지막 모습은 그러한 예단을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예측은 빗나갔다. 몇 년이 안되어서 그 기업은 다시 일어 났다.  

오랜 기간 사업하면서 번뜩이는 지혜의 편린을 깨닫고 있었던 장회장은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야만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며 ‘재기’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사업가의 관성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나이와는 무관한 지극히 인간적인 집념이기도 하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장회장이 당시 가져야만 했던 고통의 시간들이 새삼 필자의 가슴을 파고든다.

......

지나왔던 삶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면 그간 수 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거듭해왔음을 발견한다. 자신이 걸었던 길이 유독 남들이 걸어 온 길보다 거칠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격정의 시간들로 꽉 차있었기에 그 이겨내기 힘든 고통이 주는 의미를 애써 좋게 해석하기 보다는 우선적으로 탈출구를 찾는 일에만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눈앞에 닥친 일에만 매달려 아둥바둥 살아오며 주위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기도 했다.

때만 되면 찾아오는 철새처럼 고난(苦難)은 주기적으로 어김 없이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체념(諦念) 과 재기라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나가면 그 격랑 같은 고난은 반드시 떠나간다는 사실이다. 넘어지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마음에 상흔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고난(苦難)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삶에 대한 자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그만큼 삶을 소중히 하며 사람을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을 포용할 때 느끼는 벅찬 가슴을 끓어 안으면서도 얼마나 더 고단한 길을 가야 하는지 겁이 난다. 왜냐하면 아직도 미숙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신다. 뼈 속까지 스며드는 고통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 가에 대한 지혜를 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인간을 사랑하는 여백을 만들어 준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고난은 바로 반드시 겪고 지나가야 할 훈련과정이다. 그래서 피하기 보다는 그 과정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지침이 필요하다.

45도를 넘나 드는 이 유난스런 더위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겠다. 비바람이 거칠게 다녀간 뒤 격렬하게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있는 골짜기가 그리워 진다. 그러한 개울물 소리에 몸과 마음을 맡겨버리면서 필자를 둘러싸고 있는 苦難들을 사랑하고자 다짐하는 가운데 이 지루한 라스베가스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라스베가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