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머리털 깎이느니 내 목을 잘라라는 건 자존심인가 용기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다.
과연 그 당시의 헤어 스타일이 목숨과 바꿀 정도로 중요했을까라는 점과 함께
두고두고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병자호란 이후 중국 청나라에서 수백 년간 강요해 온 "변발(중국 영화에서 자주 보는, 앞머리를 싹 밀어 버린 헤어 스타일)"도 끝까지 거부하고 우리의 "상투" 문화를 성공적으로 고수했던 우리 민족인데...
어찌 서양의 새로운 오랑캐의 헤어 스타일을 이토록 쉽게 받아 들일 수 있단 말인가? 무조건 결사적으로 반대하다 보면 헤어 스타일 정도는 옛날 청나라 만주족 오랑캐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금 강요하다 말겠지...
아니아니, 이번에는 임금님도 솔선수범해서 먼저 상투를 잘라 버린 것을 보면 그 때보다 더 지독한 놈들 같애. 아마도 내 목을 잘라라 정도는 외쳐야 저들이 물러 설 거야.... 그래서 최익현의 상소문 속에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어도 이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 갔다.
당시에 우리 나라 사람들의 "상투" 헤어 스타일에 대한 애착심은 대단히 강했던 것 같다. 중국 명나라 한족(漢族)이 청나라 만주족 오랑캐에게 망해 버린 이상, 우리 조선이라도 옛 전통을 유지해야 체면이 설 것 아닌가?
"그래야 망하고 없는 명나라 한족의 전통과 영광을 우리 조선이 계승했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 아닌가?"
중국 한족 측에서 볼 때에는 자기네들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만주족이나, 중국 성현들 가르침을 아직도 잘 따르고 있다면서 정통파 중국인 행세를 하고 싶어 하는 조선족이나.... 사실은 다 같은 동이족이요 오랑캐로 보일텐데....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소중화(小中華) 사상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한심한 것이었다. 중국 청나라를 이길 만한 아무 것도 없으면서 입으로만 "북벌! 북벌!" 외치는 것과 함께 대표적인 "바보 짓"이었다.
그 똑똑한 광해군을 몰아 내고 인조 임금이 들어 선 이후 세계 정세가 어떻게 돌아 가는지는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오로지 국내 정치 정권 유지에만 신경을 쓰면서 외쳐 댄 "북벌정책"이었으니, 이야말로 매일매일 이불 뒤집어 쓰고 이불 속에서만 "청나라 오랑캐 나쁜놈 ! 나와라! 한 판 붙자!" 외치면서 꼭꼭 숨어 있는 것과 같았다.
이러한 엄청난 비밀을 눈치챈 연암 박지원은 그의 소설 "허생전"에서 당시의 정권을 여지없이 비웃는다. "같은 오랑캐 주제에 청나라를 오랑캐라 하는 것도 우습고, 개뿔도 없으면서 맨날 청나라 오랑캐를 치러가자고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라면서 허생이 바보 이완 대장을 죽인다며 칼을 찾으러 나가는 장면이 마지막 장면인데...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그 때 칼 찾으러 간 허생이 아직도 안 돌아 왔다고 한다.
그거야 어찌 되었든 간에, 청나라 입장에서 볼 때에 말로만 북벌을 외치고 실상은 전쟁을 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조선은 전혀 경계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청나라에서 내린 결론은 "그래, 너희 조선은 머리카락을 만주 스타일로 하든지 조선 스타일로 하든지, 까짓거 마음대로 해라"였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이를 "상투의 승리, 전통의 승리, 정의의 승리"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버티면 "상투"가 승리할 것 같아서 아예 처음부터 "내 목을 잘라라"는 식으로 강하게 나온 것이었다. "그러면 옛날 청나라 만주족처럼 그러다가 말겠지.." 하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어찌 보면, 이것 저것 다 빼앗긴 조선에서 "상투"는 마지막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우선 상투가 없으면 당장 서양 오랑캐, 일본 쪽발이와 같은 야만인이 되는 것 같고...
또 상투가 없으면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없어져서 어딜 가든 어른 대접을 못 받고...
거기에다가 상투를 못하게 되어 있는 노비 종놈과도 전혀 구분이 안 되니...
정말 큰일은 큰일이었다.
조선의 마지막 왕비 민씨가 칼 맞아 죽은 기념 사업으로
친일파인지 개화파인지 김홍집 총리대신의 주도로 여러 가지 시책이 발표가 되었는데....
서양식 태양력도 실시한다 하고
호적에서 신분 표시도 삭제한다 하고
신분의 상징인 상투와 망건도 폐지한다 하니
당시 조선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했던 노비 종놈 쌍놈들은 정말 살판이 났다.
물론 양반 어르신네들은 정말 죽고도 싶었겠지만,,,
---신체발부는 수지부모이니, 불감훼상이 효지시야니라.
모든 신체와 모든 털까지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니, 감히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니라
어쩌고 하는 것도 사실은 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상투를 올릴 때 상투를 말아서 올려 놓는 부분인 머리 꼭대기, 즉 정수리 부분은 완전히 밀어 버려 거의 반대머리 수준이 되어야 상투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상투 헤어 스타일을 하든 않든 머리털을 깎아 내야 하는 것은 어차피 마찬가지였다.
쉽게 말하면 머리를 서양식으로 깎아라 하는 이 단발령(斷髮令)은.....
머리를 깎느냐, 안 깎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양반으로서의, 어른으로서의 위신과 자존심을 유지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번 단발령은 그 때와 좀 많이 달랐다. 임금님부터 먼저 마리를 깎아 버렸다. 청나라 만주족 오랑캐들보다 이번의 서양, 일본 연합 오랑캐가 더 세긴 센 모양이다.
이 단발령이 공포된 것은
<서유견문>의 저자였던 당시 내무대신 유길준의 강요로 고종 임금, 왕세자, 흥선대원군 등 세 사람이 임시 이발사 농상공부대신 정병하에 의해서 상투가 잘려져 나간 다음날인 1895년 11월 15일이었고
전국적으로 시행된 것은 그 이틀 뒤인 1896년 1월 1일이었다.
내무대신 유길준은 일반백성들을 대상으로, 군부대신 어윤중은 군인들을 대상으로 국한문 혼용으로 된 칙령을 각각 발표하였다.
내무대신 유길준이 지난 4월에 일본 동경의 출판사에서 펴낸 <서유견문>이란 책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자기의 한문실력도 부족하고... " 어쩌고 하면서 국한문 혼용의 필요성을 역설하더니... 어느 사이엔가 국가의 정식 공문도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 있었다.
일본 동경에서 출간된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신호탄이 되어 우리 나라는 세종대왕 사망 이후 처음으로 우리 한글이 정식 글자 대우를 받았고, 일본은 여세를 몰아서 조선사람들의 한글 사용을 거의 강요 수준으로 적극 권장하여....
일본에서 무제한 만들어 준 한글 활자를 가지고 각종 한글 신문, 한글 잡지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세종 한글 창제 이후 처음으로 한글 시대를 활짝 열어 준 일본에 대해서 감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고민이다.
사실 일본은 한글이 이뻐서 한글 시대를 열어 준 것은 아니고, 어찌하든 조선 사람들이 한문을 덜 쓰게 해서 중국과의 사이를 최대한 멀리 하게 해야 할 필요도 있고, 한문만 갖고 노는 조선의 기존 양반들의 콧대를 좀 꺾어 놓을 필요도 있고 해서 한글 시대를 열어 준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조선 역사 오천 년에 처음으로 우리 글자 한글을 공식적인 글자로 쓸 수 있게 해 두었으니 우리 나라 유사 이래 가장 큰 사건이라면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한글 시대의 개막은 조선 사회 전체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수천 년간 눌려 지내던 중인 이하 모든 백성들은 정말 좋은 세상을 만났다고 했다. 조선 백성의 절반이 넘는 여자들과 평민들에게만큼은 일본의 인기가 상한가로 마구 올라갔다.
이로부터 약 45년 뒤인 1940년에 일본어만 사용하고 조선 말, 조선 글은 사용하지 말라는 조치가 발표되긴 했지만 한번 불붙은 한글의 인기는 그 누구도 누그러뜨릴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약 5년만에 일본은 물러났고 한글시대는 그냥 다시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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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잠깐!
저 위의 내용 중에 이상한 것이 있는데...
11월 15일의 이틀 뒤가 어떻게 1월 1일이 될 수 있냐고요?
아-- 역시!
주의력이 예리하시군요...
그건 말입니다...
앞의 날짜는 그 때까지 사용해 오던 음력 달력의 날짜였고
뒤의 날짜는 우리 나라 최초의 양력 달력 날짜이기 때문입니다.
1895년 11월 17일부터 12월 31일까지는 우리 나라 모든 역사기록에서 그 날짜가 영원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1896년 1월 1일이 갖는 의미는...
황제의 나라만이 쓸 수 있는 연호 건양(建陽)을 처음으로 사용한 날이고...
--- 대조선제국 건양 1년 1월 1일....
서양식 태양력을 처음 사용한 날이고
"상투 잘라내고. 허전하면 앞으로는 모자 쓰고 다녀."라는 단발령이 처음으로 시행된 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무서운 대원군을 비롯하여 고종 임금, 왕세자까지 <왕족 3대>의 상투를 무엄하게 잘라 버린 정병하의 운명은 그 후 어찌 되었을까?
평생 로봇 임금 고종을 움직였던 리모콘의 주인이 흥선대원군에서 왕비 민씨로, 왕비 민씨에서 김홍집 내각으로 바뀌었었는데, 상투 잘라낸지 불과 두 달만에 "아관파천"으로 베베르 러시아 공사관과 이범진, 이완용으로 옮아 간다. 고종은 평생 동안 다른 사람이 들고 있는 리모콘에 의해서만 움직여진 임금이었다.
---- 임금이 되어라 하면 임금이 되고. 이모 민씨와 결혼하라 하면 결혼하고, 아빠가 이리해라, 부인이 저리하라 해도 네네 그러지요, 머리 깎아라 하면 깎고, 황제가 되어라 하면 황제가 되고... 정말정말 착한 로봇이었지요
리모콘이 러시아 쪽으로 옮겨 가자 김홍집 친일파 내각은 순식간에 역적이 된다. 김홍집, 어윤중과 함께 정병하는 결국 맞아 죽는다, 정병하를 처단한 사람은 친러시아파 이완용의 심복 부하였다.
---그리고 고종 상투 자르라고 강요한 역적 유길준은 일본으로 도망 갔다가 몇 년 뒤 역적 해제되어 다시 돌아 와서 편안히 잘 지내다가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까지 했었다. 또한 유길준의 조카 유진오는 일제시대 때에는 "김강사와 T교수" 같은 소설을 써내고 그러더니 나중에는 법학을 공부하고 와서 1948년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을 거의 혼자서 다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고려대학교 총장도 했다가 대통령 후보로도 나왔다가... 어쨌든 유길준과 유진오는 유(兪)씨네 집안의 큰 인물이었다.
그 좁아 터진 러시아 공사관의 방 한 칸에 숨어서도 임금 노릇을 계속하고 있었으니 실로 대단한 고종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때 같이 지냈던 이범진은 나중에 헤이그 밀사로 가는 이위종의 아버지가 되고, 같이 지냈던 이완용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에게 스카우트되어 "의지의 친일파"로 변신한다
나중에 다시 친일파가 득세하자 고종임금. 아니 황제이든가.. 그를 움직이는 리모콘 주인이 또 바뀌는데, 잠깐 주춤하였던 "머리 깎기" 운동도 다시 강화된다. 사람의 기존 관념이란 것이 실로 무서운 것이어서, 범죄자들에게 "머리깎을래, 감옥 갈래?"라고 물으면 일제히 감옥을 택했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존심을 팍팍 건드리며 경찰서의 고문 방법의 하나로까지 사용되었던 "머리 깎기" 단발령은 짧은 남자 머리가 신사의 대명사로 굳어지면서 전설 속에 묻혀 버리고 마나 했는데...
1960, 70년대 영국의 보컬 그룹 "비틀즈"와 히피족의 장발이 세계적인 선풍으로 번져 버렸고, 당시 기성세대들은 장발 단속을 청소년 지도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그러나 110년이 지난 지금 단발령이 다시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였다.
같은 국가기관끼리 머리카락에 대한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인권위원회에서는 장발단속이야말로 인권침해가 아닐 수 없다 하고
교육공무원들은 장발단속이야말로 학생생활지도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어린 학생들은 이렇게 어른들끼리 싸우는 꼴을 보는 게 재미있는지
계속 머리를 기르고 거리를 활보한다.
옛날처럼 민족의 자존심, 양반의 자존심 때문에 머리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어른들끼리 싸움 하는 꼬라지를 감상하려고 머리를 기르는 것 같다.
애들이 보는 기성세대는 정말 재밌는 세상이다.
아이들은 싸우지 말라면서 어른들은 어디서든지 막 싸운다.
9시 뉴스는 무엇보다 재미있는 어른들의 "난중일기"이며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코미디와 개그의 연속물이다.
9시뉴스야말로 21세기 최고의 문학작품이 아닐 수 없다.
아-- 아이들에게 뉴스를 못 보게 말려야 하나 어쩌나-- 고민이다.
뉴스도 뉴스지만, 아이들 두발 문제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국가인권위원회 위원님들은 집에 애들도 없나?
아마 그 분들 집에 애가 있다면 인권을 최대한 존중하여 애들 싫어하는 김치는 안 먹이고 매일매일 피자나 치킨만 먹일 것 같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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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인권의식 수준은 세계적인 흐름과는 좀 색다른 방향이라
UN에서 전세계 국가들이 모두 북한의 인권을 문제 삼을 때 우리나라만 기권을 했었지요..
그리고 국내 모든 국가기관과 공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인권 차원에서 학력제한을 철폐하라고 강력 권고하여 경쟁률을 100 대 1 이상으로 만들어 놓고서는 정작 인권위원회의 직원을 채용할 때에는 급수별로 대졸, 전문대졸, 고졸 이상으로 철저히 제한을 두는, 좀 특이한 취향도 지니고 있지요.
그런... 좀 독특한 취향의 인권의식을 가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사항이니 그 결정은 당연히 훌륭한 결정이었겠지요...
그 덕분에 우리나라 남자 고등학교 중 몇 개는 학생들 머리가 너무 길어져서 여자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꿔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높으신 분들이 학생들의 두발지도까지 관여하니 앞으로는 선생님들의 업무도 훨씬 경감될 것 같고..
우리나라는 역시 좋은 나라 !
정말 새 역사를 창조해 가는 대한민국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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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참 인기 절정인 삼식이와 삼순이 연속극에서
주인공들의 머리를 싸악 잘라 버리면 학생들이 따라 할까요?
누구든지 방송국 전화번호 알면 방송국에 전화 좀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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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문학박사 황재순(인일 8회 동급 /제물포고등학교 교감)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다.
과연 그 당시의 헤어 스타일이 목숨과 바꿀 정도로 중요했을까라는 점과 함께
두고두고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병자호란 이후 중국 청나라에서 수백 년간 강요해 온 "변발(중국 영화에서 자주 보는, 앞머리를 싹 밀어 버린 헤어 스타일)"도 끝까지 거부하고 우리의 "상투" 문화를 성공적으로 고수했던 우리 민족인데...
어찌 서양의 새로운 오랑캐의 헤어 스타일을 이토록 쉽게 받아 들일 수 있단 말인가? 무조건 결사적으로 반대하다 보면 헤어 스타일 정도는 옛날 청나라 만주족 오랑캐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금 강요하다 말겠지...
아니아니, 이번에는 임금님도 솔선수범해서 먼저 상투를 잘라 버린 것을 보면 그 때보다 더 지독한 놈들 같애. 아마도 내 목을 잘라라 정도는 외쳐야 저들이 물러 설 거야.... 그래서 최익현의 상소문 속에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어도 이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 갔다.
당시에 우리 나라 사람들의 "상투" 헤어 스타일에 대한 애착심은 대단히 강했던 것 같다. 중국 명나라 한족(漢族)이 청나라 만주족 오랑캐에게 망해 버린 이상, 우리 조선이라도 옛 전통을 유지해야 체면이 설 것 아닌가?
"그래야 망하고 없는 명나라 한족의 전통과 영광을 우리 조선이 계승했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 아닌가?"
중국 한족 측에서 볼 때에는 자기네들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만주족이나, 중국 성현들 가르침을 아직도 잘 따르고 있다면서 정통파 중국인 행세를 하고 싶어 하는 조선족이나.... 사실은 다 같은 동이족이요 오랑캐로 보일텐데....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소중화(小中華) 사상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한심한 것이었다. 중국 청나라를 이길 만한 아무 것도 없으면서 입으로만 "북벌! 북벌!" 외치는 것과 함께 대표적인 "바보 짓"이었다.
그 똑똑한 광해군을 몰아 내고 인조 임금이 들어 선 이후 세계 정세가 어떻게 돌아 가는지는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오로지 국내 정치 정권 유지에만 신경을 쓰면서 외쳐 댄 "북벌정책"이었으니, 이야말로 매일매일 이불 뒤집어 쓰고 이불 속에서만 "청나라 오랑캐 나쁜놈 ! 나와라! 한 판 붙자!" 외치면서 꼭꼭 숨어 있는 것과 같았다.
이러한 엄청난 비밀을 눈치챈 연암 박지원은 그의 소설 "허생전"에서 당시의 정권을 여지없이 비웃는다. "같은 오랑캐 주제에 청나라를 오랑캐라 하는 것도 우습고, 개뿔도 없으면서 맨날 청나라 오랑캐를 치러가자고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라면서 허생이 바보 이완 대장을 죽인다며 칼을 찾으러 나가는 장면이 마지막 장면인데...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그 때 칼 찾으러 간 허생이 아직도 안 돌아 왔다고 한다.
그거야 어찌 되었든 간에, 청나라 입장에서 볼 때에 말로만 북벌을 외치고 실상은 전쟁을 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조선은 전혀 경계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청나라에서 내린 결론은 "그래, 너희 조선은 머리카락을 만주 스타일로 하든지 조선 스타일로 하든지, 까짓거 마음대로 해라"였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이를 "상투의 승리, 전통의 승리, 정의의 승리"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버티면 "상투"가 승리할 것 같아서 아예 처음부터 "내 목을 잘라라"는 식으로 강하게 나온 것이었다. "그러면 옛날 청나라 만주족처럼 그러다가 말겠지.." 하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어찌 보면, 이것 저것 다 빼앗긴 조선에서 "상투"는 마지막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우선 상투가 없으면 당장 서양 오랑캐, 일본 쪽발이와 같은 야만인이 되는 것 같고...
또 상투가 없으면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없어져서 어딜 가든 어른 대접을 못 받고...
거기에다가 상투를 못하게 되어 있는 노비 종놈과도 전혀 구분이 안 되니...
정말 큰일은 큰일이었다.
조선의 마지막 왕비 민씨가 칼 맞아 죽은 기념 사업으로
친일파인지 개화파인지 김홍집 총리대신의 주도로 여러 가지 시책이 발표가 되었는데....
서양식 태양력도 실시한다 하고
호적에서 신분 표시도 삭제한다 하고
신분의 상징인 상투와 망건도 폐지한다 하니
당시 조선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했던 노비 종놈 쌍놈들은 정말 살판이 났다.
물론 양반 어르신네들은 정말 죽고도 싶었겠지만,,,
---신체발부는 수지부모이니, 불감훼상이 효지시야니라.
모든 신체와 모든 털까지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니, 감히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니라
어쩌고 하는 것도 사실은 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상투를 올릴 때 상투를 말아서 올려 놓는 부분인 머리 꼭대기, 즉 정수리 부분은 완전히 밀어 버려 거의 반대머리 수준이 되어야 상투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상투 헤어 스타일을 하든 않든 머리털을 깎아 내야 하는 것은 어차피 마찬가지였다.
쉽게 말하면 머리를 서양식으로 깎아라 하는 이 단발령(斷髮令)은.....
머리를 깎느냐, 안 깎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양반으로서의, 어른으로서의 위신과 자존심을 유지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번 단발령은 그 때와 좀 많이 달랐다. 임금님부터 먼저 마리를 깎아 버렸다. 청나라 만주족 오랑캐들보다 이번의 서양, 일본 연합 오랑캐가 더 세긴 센 모양이다.
이 단발령이 공포된 것은
<서유견문>의 저자였던 당시 내무대신 유길준의 강요로 고종 임금, 왕세자, 흥선대원군 등 세 사람이 임시 이발사 농상공부대신 정병하에 의해서 상투가 잘려져 나간 다음날인 1895년 11월 15일이었고
전국적으로 시행된 것은 그 이틀 뒤인 1896년 1월 1일이었다.
내무대신 유길준은 일반백성들을 대상으로, 군부대신 어윤중은 군인들을 대상으로 국한문 혼용으로 된 칙령을 각각 발표하였다.
내무대신 유길준이 지난 4월에 일본 동경의 출판사에서 펴낸 <서유견문>이란 책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자기의 한문실력도 부족하고... " 어쩌고 하면서 국한문 혼용의 필요성을 역설하더니... 어느 사이엔가 국가의 정식 공문도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 있었다.
일본 동경에서 출간된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신호탄이 되어 우리 나라는 세종대왕 사망 이후 처음으로 우리 한글이 정식 글자 대우를 받았고, 일본은 여세를 몰아서 조선사람들의 한글 사용을 거의 강요 수준으로 적극 권장하여....
일본에서 무제한 만들어 준 한글 활자를 가지고 각종 한글 신문, 한글 잡지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세종 한글 창제 이후 처음으로 한글 시대를 활짝 열어 준 일본에 대해서 감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고민이다.
사실 일본은 한글이 이뻐서 한글 시대를 열어 준 것은 아니고, 어찌하든 조선 사람들이 한문을 덜 쓰게 해서 중국과의 사이를 최대한 멀리 하게 해야 할 필요도 있고, 한문만 갖고 노는 조선의 기존 양반들의 콧대를 좀 꺾어 놓을 필요도 있고 해서 한글 시대를 열어 준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조선 역사 오천 년에 처음으로 우리 글자 한글을 공식적인 글자로 쓸 수 있게 해 두었으니 우리 나라 유사 이래 가장 큰 사건이라면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한글 시대의 개막은 조선 사회 전체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수천 년간 눌려 지내던 중인 이하 모든 백성들은 정말 좋은 세상을 만났다고 했다. 조선 백성의 절반이 넘는 여자들과 평민들에게만큼은 일본의 인기가 상한가로 마구 올라갔다.
이로부터 약 45년 뒤인 1940년에 일본어만 사용하고 조선 말, 조선 글은 사용하지 말라는 조치가 발표되긴 했지만 한번 불붙은 한글의 인기는 그 누구도 누그러뜨릴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약 5년만에 일본은 물러났고 한글시대는 그냥 다시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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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잠깐!
저 위의 내용 중에 이상한 것이 있는데...
11월 15일의 이틀 뒤가 어떻게 1월 1일이 될 수 있냐고요?
아-- 역시!
주의력이 예리하시군요...
그건 말입니다...
앞의 날짜는 그 때까지 사용해 오던 음력 달력의 날짜였고
뒤의 날짜는 우리 나라 최초의 양력 달력 날짜이기 때문입니다.
1895년 11월 17일부터 12월 31일까지는 우리 나라 모든 역사기록에서 그 날짜가 영원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1896년 1월 1일이 갖는 의미는...
황제의 나라만이 쓸 수 있는 연호 건양(建陽)을 처음으로 사용한 날이고...
--- 대조선제국 건양 1년 1월 1일....
서양식 태양력을 처음 사용한 날이고
"상투 잘라내고. 허전하면 앞으로는 모자 쓰고 다녀."라는 단발령이 처음으로 시행된 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무서운 대원군을 비롯하여 고종 임금, 왕세자까지 <왕족 3대>의 상투를 무엄하게 잘라 버린 정병하의 운명은 그 후 어찌 되었을까?
평생 로봇 임금 고종을 움직였던 리모콘의 주인이 흥선대원군에서 왕비 민씨로, 왕비 민씨에서 김홍집 내각으로 바뀌었었는데, 상투 잘라낸지 불과 두 달만에 "아관파천"으로 베베르 러시아 공사관과 이범진, 이완용으로 옮아 간다. 고종은 평생 동안 다른 사람이 들고 있는 리모콘에 의해서만 움직여진 임금이었다.
---- 임금이 되어라 하면 임금이 되고. 이모 민씨와 결혼하라 하면 결혼하고, 아빠가 이리해라, 부인이 저리하라 해도 네네 그러지요, 머리 깎아라 하면 깎고, 황제가 되어라 하면 황제가 되고... 정말정말 착한 로봇이었지요
리모콘이 러시아 쪽으로 옮겨 가자 김홍집 친일파 내각은 순식간에 역적이 된다. 김홍집, 어윤중과 함께 정병하는 결국 맞아 죽는다, 정병하를 처단한 사람은 친러시아파 이완용의 심복 부하였다.
---그리고 고종 상투 자르라고 강요한 역적 유길준은 일본으로 도망 갔다가 몇 년 뒤 역적 해제되어 다시 돌아 와서 편안히 잘 지내다가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까지 했었다. 또한 유길준의 조카 유진오는 일제시대 때에는 "김강사와 T교수" 같은 소설을 써내고 그러더니 나중에는 법학을 공부하고 와서 1948년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을 거의 혼자서 다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고려대학교 총장도 했다가 대통령 후보로도 나왔다가... 어쨌든 유길준과 유진오는 유(兪)씨네 집안의 큰 인물이었다.
그 좁아 터진 러시아 공사관의 방 한 칸에 숨어서도 임금 노릇을 계속하고 있었으니 실로 대단한 고종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때 같이 지냈던 이범진은 나중에 헤이그 밀사로 가는 이위종의 아버지가 되고, 같이 지냈던 이완용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에게 스카우트되어 "의지의 친일파"로 변신한다
나중에 다시 친일파가 득세하자 고종임금. 아니 황제이든가.. 그를 움직이는 리모콘 주인이 또 바뀌는데, 잠깐 주춤하였던 "머리 깎기" 운동도 다시 강화된다. 사람의 기존 관념이란 것이 실로 무서운 것이어서, 범죄자들에게 "머리깎을래, 감옥 갈래?"라고 물으면 일제히 감옥을 택했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존심을 팍팍 건드리며 경찰서의 고문 방법의 하나로까지 사용되었던 "머리 깎기" 단발령은 짧은 남자 머리가 신사의 대명사로 굳어지면서 전설 속에 묻혀 버리고 마나 했는데...
1960, 70년대 영국의 보컬 그룹 "비틀즈"와 히피족의 장발이 세계적인 선풍으로 번져 버렸고, 당시 기성세대들은 장발 단속을 청소년 지도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그러나 110년이 지난 지금 단발령이 다시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였다.
같은 국가기관끼리 머리카락에 대한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인권위원회에서는 장발단속이야말로 인권침해가 아닐 수 없다 하고
교육공무원들은 장발단속이야말로 학생생활지도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어린 학생들은 이렇게 어른들끼리 싸우는 꼴을 보는 게 재미있는지
계속 머리를 기르고 거리를 활보한다.
옛날처럼 민족의 자존심, 양반의 자존심 때문에 머리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어른들끼리 싸움 하는 꼬라지를 감상하려고 머리를 기르는 것 같다.
애들이 보는 기성세대는 정말 재밌는 세상이다.
아이들은 싸우지 말라면서 어른들은 어디서든지 막 싸운다.
9시 뉴스는 무엇보다 재미있는 어른들의 "난중일기"이며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코미디와 개그의 연속물이다.
9시뉴스야말로 21세기 최고의 문학작품이 아닐 수 없다.
아-- 아이들에게 뉴스를 못 보게 말려야 하나 어쩌나-- 고민이다.
뉴스도 뉴스지만, 아이들 두발 문제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국가인권위원회 위원님들은 집에 애들도 없나?
아마 그 분들 집에 애가 있다면 인권을 최대한 존중하여 애들 싫어하는 김치는 안 먹이고 매일매일 피자나 치킨만 먹일 것 같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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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인권의식 수준은 세계적인 흐름과는 좀 색다른 방향이라
UN에서 전세계 국가들이 모두 북한의 인권을 문제 삼을 때 우리나라만 기권을 했었지요..
그리고 국내 모든 국가기관과 공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인권 차원에서 학력제한을 철폐하라고 강력 권고하여 경쟁률을 100 대 1 이상으로 만들어 놓고서는 정작 인권위원회의 직원을 채용할 때에는 급수별로 대졸, 전문대졸, 고졸 이상으로 철저히 제한을 두는, 좀 특이한 취향도 지니고 있지요.
그런... 좀 독특한 취향의 인권의식을 가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사항이니 그 결정은 당연히 훌륭한 결정이었겠지요...
그 덕분에 우리나라 남자 고등학교 중 몇 개는 학생들 머리가 너무 길어져서 여자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꿔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높으신 분들이 학생들의 두발지도까지 관여하니 앞으로는 선생님들의 업무도 훨씬 경감될 것 같고..
우리나라는 역시 좋은 나라 !
정말 새 역사를 창조해 가는 대한민국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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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참 인기 절정인 삼식이와 삼순이 연속극에서
주인공들의 머리를 싸악 잘라 버리면 학생들이 따라 할까요?
누구든지 방송국 전화번호 알면 방송국에 전화 좀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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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문학박사 황재순(인일 8회 동급 /제물포고등학교 교감)
비 공식 루트로 정보를 입수해 알려드렸었는데 그 정보가 틀렸었군요
11회 쯤 된다고 했었는데
8회에 해당되시는군요